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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비 매거진 Dec 05. 2021

겨울다운 '겨울 풍경'을 보다

한계령 너머 주문진항, 사천의 해변, 묵호항까지
겨울 속으로

 
한계령 휴게소에서 눈 쌓인 산을 보았다. 억겁의 세월 육중하게 자리를 지키는 산맥의 능선이 은빛 갈기 휘날리며 내달리는 용마의 광휘로 비친다. 고개 넘어 오색을 지나 바다로 향한다. 바람마저 얼어버릴 것 같은 동해의 바닷가, 해변을 삼킬 것 같은 파도가 그대로 얼음조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들숨으로 들어온 서릿발 같은 공기가 몸속의 찌든 찌꺼기를 깎아 내는 것 같았다. 겨울 속으로 그렇게 빠져들었다.


눈 쌓인 한계령


한계령, 잊을 수 없는 수묵화


가을 단풍에 그윽했던 마음을 설경으로 씻는다. 한계령, 태백 준령 고개 중 한계령을 넘는 이유는 눈앞에 펼쳐지는 설경 때문이었다.


한계령에서 본 풍경. 눈 덮힌 산을 비집고 한계령이 굽이친다


억겁의 세월 육중하게 자리를 지키는 산맥의 능선이 은빛 갈기 휘날리며 내달리는 용마의 광휘로 비친다. 눈은 희고 산은 검었다. 색이 사라지고 흑백만 남은 풍경은 수묵화였다.

간혹 볼에 닿는 눈발이 현실계에 있음을 환기시켰다. 따듯한 차 한 잔 종이컵에 따른다. 손끝부터 온기가 퍼진다. 앞으로 가야할 동쪽을 바라봤다. 광활하게 펼쳐진 육중한 산들이 첩첩 겹친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이어지는 가는 선 하나, 한계령을 넘나드는 길이었다. 한계령을 밀고 올라온 찬바람에 정신이 아찔하다.

저 멀리 육중하게 굽이치며 달리는 바위 능선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 푸르름이 짙어 검푸른 빛이다.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는 옛날 같으면 나귀를 탄 어느 선비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계령에서 본 풍경. 눈 쌓인 산 겨울 풍경이 수묵화 같다


한계령 정상에서 내려가다 보면 필례약수로 빠지는 길이 오른쪽으로 나온다. 그 길로 조금만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한계령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아름다움과 버금가는 수묵화의 구도가 나온다.

산 능선과 뼈대만 남은 절벽, 나무들은 먹빛의 농담으로 그 이미지를 살린다. 색 없는 화선지 바탕 그 자체는 여백이 되어 수묵화를 완성시킨다. 그 곳에서 바라본 풍경이 그랬다.


한계령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주문진 항구, 그리고 사천해변의 밤


주문진항은 파장이었다. 주섬주섬 판을 걷는 아줌마도 있었고 끝까지 남아 떨이를 외치며 늦게 도착한 여행자를 반기는 젊은 총각도 눈에 띈다.

대구, 양미리, 오징어, 문어, 도치, 곰치, 소라, 골뱅이, 게… 살 사람을 기다리는 해산물 그 자체가 항구의 볼거리다.


주문진항 도루묵 구이


겨울 동해는 도루묵과 양미리가 대세다. 거기에 골뱅이까지 샀다. 도루묵과 양미리를 구워먹고 골뱅이를 삶았다. 빈 속이 따듯해진다. 배부르게 먹을 재료들은 아니었지만, 겨울 바다 앞에서 찬 소주를 곁들인 만찬이었다.


주문진항. 분주한 항구의 모습에서 활력을 찾는다


주문진항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리


어둠이 짙어지며 바람이 거세진다. 겨울 바다의 낭만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했다. 사천해변의 어느 집에 여장을 풀었다.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는 손길은 말없이 분주했다. 두툼한 목살에 굵은 소금을 뿌린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건 바람소리와 파도소리 뿐이었다. 새벽은 금세 찾아왔다.

사천해변의 일출


사천해변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천의 해변, 생명의 바다 앞에 서다


하루 중 가장 추운 때는 해 뜨기 직전이다. 잔잔했던 바람도 거세지고 새들도 날기 시작한다. 먼동이 터온다. 파도를 밀고 온 바람에 손이 시리다 못해 아리다. 살을 에는 바람이 새벽 겨울바다에 몰아친다. 구름 뒤에서 은근하게 빛이 퍼진다. 해가 얼굴을 내밀었는데 구름에 가린듯했다. 울긋불긋한 빛의 스펙트럼이 점점 하늘에 퍼지고 그 하늘에 새들이 날아다닌다. 조업이 끝난 어선은 항구로 돌아가고 조업을 나가는 배들은 바다의 일터로 질주한다. 꿈틀대는 생명력을 사천의 해변, 새벽 겨울에 보았다. 수평선 위로 올라온 해가 구름 위로 모습을 드러낼 때쯤 겨울 바다는 다시 잔잔해지고 공기도 온화해진다.

황태해장국과 섭국을 먹으며 한계령부터 사천 해변의 새벽까지 지나온 이야기를 복기했다. 어제 보다 더 어제가 재미있었다.



정동진을 지나 겨울바다를 달리다


쉬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가 해변에 상륙하면 바다는 사라지고 바람만 남는다. 바람은 여행자의 마음까지 흔든다. 정동진 바닷가에서 ‘겨울바다’ 다운 ‘겨울바다’를 보았다.


정동진 해변. 파도가 밀려온다. 장엄한 합주곡을 듣는 것 같다


정동진해수욕장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1994년 드라마 <모래시계>에 여주인공이 바닷가 간이역 소나무를 배경으로 서 있는 장면이 방송 되면서 정동진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해변 바로 옆에 플랫폼이 있고 플랫폼 한쪽에 ‘시비’와 ‘소나무’ 등이 있다. 바다 바로 옆 간이역 플랫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만이다.


심곡항~금진항 사이 바닷가 도로가 멋있다


정동진에서 남쪽으로 차를 달려 고개 하나를 넘으면 심곡리 심곡항이 나온다. 심곡리의 원래 이름은 ‘지필’이었다. 마을 모양이 종이와 붓이 놓인 형상이라고 해서 ‘지필(紙筆)’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원래 이름인 ‘지필’과 아무런 상관없는 ‘심곡’으로 바뀌었다.


심곡항이 유명한 것은 바닷가 도로 때문이다. 심곡항부터 금진항까지 이어지는 약 2km 해안도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가 길 중 하나다.


심곡항~금진항 사이 바닷가 도로


심곡항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심곡리


금진항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헌화로


심곡항을 벗어난 차는 바다 바로 옆 도로를 달린다. 파도가 높게 일면 포말이 차창에 흩뿌려진다. 바닷가 산굽이를 돌아가는 도로는 산 쪽으로 기울어졌다. 길 자체가 역동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길과 하나 되어 온몸으로 부서지는 파도를 맞이하고 싶다. 통쾌한 풍경에 상쾌해진 마음으로 금진항에 도착했다. 평범한 어촌 마을 금진항을 지나 남쪽으로 차를 달리면 강릉을 벗어나 동해 옥계해변을 만난다. 망상해변을 지나서 묵호항에 도착했다.


묵호항에서 맛 본 통오징어와 오징어회


묵호항

강원도 동해시 묵호진동


겨울 바다와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즐긴 뒤 도착한 묵호항이 이번 여행의 종착지였다. 주문진항에서 맛보지 못했던 오징어를 찾아 묵호항까지 왔다.


글·사진 장태동 트래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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