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대표 간식 로쿰의 '아피온'과 장미향 가득한 도시 '으스파르타'
만약 이번이 두 번째 터키 여행이라면 터키 아피온Afyon과 으스파르타Isparta를 추천한다.
아피온은 온천과 로쿰으로, 으스파르타는 장미로 유명하다.
두 도시 모두에서 오스만 제국 시대의 정취도 물씬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환대는 상상을 초월한다.
Afyon 아피온
달콤한 로쿰으로 기억되는 도시
로쿰Lokum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까, 모든 일들이 행복함을 향하는 듯 느껴졌다. ‘여행하는 삶을 살기를 잘했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이다’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다. 맛있는 음식에 내 눈이 저절로 스르륵 감기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배시시 번지는 그런 순간.
아피온 시내에 자리한 ‘미림 울루Mirim Oğlu는 1860년부터 로쿰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주인 알리가 시식해 보라며 집어 준 건 부드러운 치즈가 잔뜩 들어간 로쿰이었다. “카이막 로쿰이라고 하지. 이게 우리집에서 가장 맛있어.” 알리는 눈을 찡긋하며 가위로 로쿰을 썰어 주었다.
사실 이 도시를 찾은 건 온천 취재 때문이었다. 아피온은 터키 최대의 온천도시다. 땅 속에서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온천수가 끝도 없이 솟아난다. 인구 20만 명 정도의 중소 도시이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온천 시설을 갖춘 특급호텔이 무려 11개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온천 치료Thermal Therapy를 자랑하는 코카테페대학병원Kocatepe University Hospital도 이곳에 있다.
이스탄불을 거쳐 아피온에 도착해 짐을 풀기가 무섭게 호텔들을 하나씩 돌아보기 시작했다. 5년 연속 아피온 온천호텔 중 1위를 기록한 NG호텔NG Afyon Wellness & Convention을 비롯해, 아크로네스호텔Akrones Thermal Spa Convention, 익발호텔Ikbal Thermal Resort & Spa, 산디클리Sandikli Thermal Park Hotel, 마이호텔May Thermal Resort & Spa 등등 신발에 비닐을 씌우고 이들 호텔의 사우나 시설과 수영장, 마사지, 테라피 등 다양한 시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왜 이곳이 온천 치료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이 더 흘러 근육에 힘이 빠지고 관절이 거칠어지고 난 후, 그리고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거리를 쏘다니는 것보다 좋아질 때가 오면 분명 이곳 아피온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았다. 이 호텔 저 호텔을 떠돌며 온천을 즐기는 일도 나쁘지 않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도시에 머물며 온천탕만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호텔을 돌아보는 일정을 끝내고 남은 약간의 시간 동안 카메라를 들춰 메고 거리로 나섰다. 다리를 움직일 만큼의 기운은 남아 있었기에. 호텔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여길 또 언제 와 보겠어?’
하니페Hanife가 기꺼이 아피온의 가이드를 자처했다. 스물 세 살의 그녀는 아피온 문화센터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했다. “대장금을 아주 좋아해요.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는 그녀에게서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여기서도 BTS가 아주 인기가 많아요.”
오후의 거리는 한적했다. 사람들은 골목에 놓인 자그마한 테이블에서 모두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동양인을 많이 접하지 못했던 그들은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친절하게 웃어주었다. “아 유 꼬레?” 하고 물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가게 문 앞에 기대 있던 알리도 그랬다. “한국에서 왔어?” “응” “아피온은 처음이지?” “응” “들어와 봐,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로쿰을 먹게 해 줄게.”
알리가 건넨 로쿰 한 조각을 먹자마자, 왜 이걸 ‘터키시 딜라이트’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달콤한 로쿰은 입 속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지구 한 귀퉁이, 보석처럼 숨어 있는 이 가게가 축복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어느 날 터키의 구석진 거리에서 이유도 없이 로쿰과 나는 사랑에 빠졌다.
Isparta 으스파르타
향긋한 장미향으로 기억되는 도시
여행자가 가장 행운이라고 느낄 때는 찾아든 도시가 축제 중일 때다. 으스파르타는 때마침 장미축제 중이었다. 시청 앞 광장에는 전통복장을 한 남자들이 피리를 불고 북을 두드리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세르비아, 카자흐스탄 등 주변 국가에서 온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축제 행렬을 따라가다 멋진 콧수염을 가진 중년의 남자를 만났다. 옷걸이처럼 생긴 수염은 족히 30cm는 되어 보였다. “웰컴 투 으스파르타. 장미도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가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아 유 꼬레?” 그렇다고 답하자 지금까지 만났던 모든 터키 남자들이 그러했듯 그 역시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아피온에서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가면 닿는 으스파르타는 전 세계 장미수와 장미오일의 60%를 생산한다. 장미가 활짝 피는 5~6월이면 도시 전체가 장미향에 휩싸인다. 평균 해발이 800m 이상인 덕에 여름 평균기온이 30도를 넘지 않아 장미를 재배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으스파르타의 장미밭은 약 2만8,000ha에 달한다고 한다. 으스파르타의 장미는 이스마일 에펜디라는 사람이 1888년 불가리아에서 지팡이에 장미 씨앗을 몰래 들여오면서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시청 앞 광장에는 이스마일 에펜디Ismail Efendi의 동상이 서 있다.
아르드츨 쾨이위Ardıclı Koyu라는 마을에서 장미 수확을 체험해 볼 수 있었다. 해 뜨기 전,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좀 피곤한 일이었지만 기꺼이 참여하기로 했다.
장미밭은 체험을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손마다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장미꽃을 담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 딴 장미꽃은 모두 ‘로센스’라는 브랜드의 장미수와 장미오일로 만들어진다. 하루에 보내지는 장미 잎은 320톤 정도 된다고 한다. 장미 잎 4톤에서 1kg 정도의 오일이 추출된다고 하니 얼마나 강하게 농축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장미오일을 만들 수 있는 장미는 ‘로사 다마세나’라는 품종. 으스파르타는 세계 장미 관련 화장품의 65%를 생산한다.
“장미오일은 화장품 필수 원료인데, 장미오일을 넣으면 10시간 이상 향이 지속된답니다.” 로센스의 담당자는 장미통에 장미를 쏟아 부으며 말했다. “으스파르타에 미인이 많은 이유는 이 장미수로 세수를 하기 때문이죠.”
이른 아침부터 장미 따기 체험을 한 후 으스파르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시내에 자리한 ‘케바치 카디르Kebapcı Kadir’는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케밥집. 1851년부터 문을 열고 있다. 콧수염 아저씨가 이 집이 자기 단골이자 으스파르타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고 추천해 주었다. 모르는 지역을 여행할 때 현지인들의 충고와 조언을 들어야 하는 건 바람직한 여행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꼬치에 끼워진 채 커다란 화덕에서 구워져 나온 케밥은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했다. 우리나라에서 먹던 케밥보다는 오히려 약간은 심심한 맛이었는데, 토마토와 양파, 오이 등을 넣어 만든 샐러드인 초반 살라타Choban Salata와 함께 먹으니 풍미가 훨씬 더 살아났다.
아이란Ayran도 자꾸만 생각나는 음식이다. 요구르트에 물을 섞어 희석한 것인데 묽은 요구르트라고 보면 된다. 요구르트 맛 콩국이라고 할까. 시원한 주석잔에 나오는 이 음료로 맥주에 대한 아쉬움을 달랬다.
이왕 먹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 더 해 보자. 터키에서 뭘 먹었냐면, 아침으로 올리브와 치즈, 말린 무화과와 살구, 요구르트, 삶은 계란, 딱딱한 바게트를 먹었다. 점심으로는 삶은 계란과 요구르트, 딱딱한 빵, 치즈, 말린 무화과와 살구, 올리브를 먹었다.
눈치 챘겠지만, 접시 위에 놓인 음식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터키 여행 내내 치즈와 올리브, 요구르트, 딱딱한 빵, 삶은 계란을 먹었다는 것이다. 아, 맛이 없었다고 불평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나는 이토록 맛있는 올리브와 치즈, 말린 무화과와 살구, 요구르트를 먹어 본 적이 없었다.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식당에 내려갔을 때 나를 놀라게 한 건, 올리브가 무려 13가지 종류나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 놀라운 건 건너편 테이블에 놓인 11가지의 치즈, 그리고 그 옆에 놓인 9가지 종류의 요구르트와 과일잼. 사흘 동안 그 호텔에 묵었는데, 사흘째 아침에서야 나는 비로소 그것들을 다 맛볼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며 가장 짜증이 나는 순간 중 하나가 맛없는 음식을 먹을 때다. 특히 모르는 사람과 마주하는 형식적인 자리에서 ‘형식적인(모양만 갖춘 맛없는 요리)’ 코스 요리를 먹다 보면 여행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어 화가 날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터키에서 먹은 올리브와 치즈, 케밥, 로쿰의 맛은 살인적인 일정을 용서할 수 있게 했다.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느긋하고 평화로워졌으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일주일 동안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아피온을 거쳐 으스파르타까지 터키를 여행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을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아피온의 온천과 로쿰, 으스파르타의 장미축제와 케밥 요리 그리고 이스탄불의 복잡하기 그지없는 그랜드바자르에서 마신 터키시 커피까지. 물론 내겐 좋았을 추억이 다른 누군가에겐 형편없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여행의 인상은 그날의 날씨나 사람 등 가변적 요소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
아피온의 어느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으스파르타의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거리를 내려다보던 시간은, 뭐랄까,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맑은 날, 야구장의 외야석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힘차게 뻗어 가는 야구공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외야 플라이로 끝나든 홈런이 되든 상관이 없는 그런 타구, 매끈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의 궤적만으로도 아름다운 그런 타구 말이다.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천소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