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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May 26. 2022

데이터는 어떻게 야구를 바꿨나

오늘의 마케팅 5월 26일

이 글은 야구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제가 야구를 좋아하지만, 이번 글에선 데이터와 트렌드 관련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 먼저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그냥 야구 얘긴데? 하는 분이 계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경기에서 이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예전에 영화 '머니볼'에 대한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빅데이터 관련 책들이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머니볼'을 예시로 들고 있지만, 저는 오히려 '게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반영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니볼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영세한 구단입니다. 좋은 선수(Five Tool Player)를 살 수 있는, 또는 지켜낼 만한 돈이 없었죠. 단장(GM)인 빌리 빈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새로운 관점으로 야구를 봅니다. 야구는 어차피 한 베이스를 더 진루하는 게임이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출루할 수 있는 선수, 즉 출루율만 보고 선수를 영입하자는 거죠.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영화를 보셨다면 잘 아시겠습니다만, 무려 2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되죠. 물론 월드시리즈 진출은 무산됐지만, 다른 모든 구단들이 충격을 받을만했습니다. 듣보잡 선수들에게 일격을 당했으니까요.


2002년 오클랜드 애슬래틱스 20연승 하이라이트



미트질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프레이밍'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최근 야구 중계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용어죠. 예전엔 미트질이라고 했습니다만.. 심판이 판정하기 애매한 공을 포수가 미트를 움직여 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하는 걸 말합니다.


'피그버그 파이리츠'라는 팀을 아시나요? 2012년까지 무려 20년 간이나 루징 시즌(승률이 5할이 안 되는 것)을 보낸 팀입니다. 이 팀 역시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죠. 역시 혁신은 절박한 팀에서 나옵니다.


이 팀 역시 돈이 별로 없습니다. 가용 자원 안에서 결과를 내야 했죠. 데이터 분석을 통해 팀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수비라는 결론을 내리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과감한 시프트(타자에 따라 수비수를 움직이는 것)를 도입하기로 합니다.


수비엔 플라이볼을 시프트로 잡는 것 외에도 스트라이크를 잡는 것이 중요하죠. 2013년 파이리츠는 러셀 마틴이라는 포수를 영입합니다.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을 몽땅 동원했죠. 파이리츠는 마틴의 프레이밍 능력이 수비 강화에 꼭 필요하다 생각해서 데려온 겁니다. (전년도 타율은 0.211지만 프레이밍 순위는 2위)


프레이밍이라니? '머니볼'에서도 제대로 수비도 못하는 선수를 출루율 하나만 보고 영입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 프런트와 감독이 등장하는데.. 이번엔 미트질입니다.


결과는? 파이리츠는 프레이밍 순위 29위에서 6위로 뛰어올랐고, 무려 20년 간이나 5할도 못하던 파이리츠는 2013년 결국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틴은 2년 1,700만 달러에 파이리츠에 왔었지만 계약을 마치고 5년 8,200만 달러에 토론토로 옮깁니다.



'시프트'엔 '발사각'으로...


앞서 수비 시프트(Defensive Shift)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도 '한화 이글스'의 수베로 감독이 적극 도입하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이젠 좌타자 시 유격수가 2루 자리에, 2루수가 1-2루 사이에 위치하는 게 흔한 풍경이 됐죠.  



위의 기사에도 나오지만, 결국 시프트는 통계에 근거합니다. 각 타자별로 타구가 어느 쪽으로 주로 향하는지를 분석해 수비 위치를 잡는 거죠.


그럼, 시프트에 대응하는 타자는 자세는 무엇일까요? 시프트는 마지막 4할 타자인 테드 윌리엄스 때문에 생겼다고 하는데요. 윌리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을 압박하려는 시프트를 보며 윌리엄스는 "별거 아니다. 타구를  높이 날리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윌리엄스는 "수비수들이 오른쪽에 모여 있으면 대신 홈런은 더 치기 쉽다. 투수는 몸 쪽 공을 던질 것이고, 나는 그걸 노리면 된다"고 말했다.

선동열 야구학 | 선동열


이게 1940년 대의 일이죠.


지금은 이걸 '높이 날린다'고 하지 않고 '발사각(Launch Angle)'이라 표현합니다. 시프트를 뚫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강속구 투수들이 늘어나면서 연속 안타가 어려워지다 보니 장타를 날리기 위함이죠.


발사각은 공과 배트가 만나는 순간(골프도 마찬가지) 지표면과 수평을 기준으로 측정한 각도죠. 위로 떠오르면 '+'고, 땅볼이 되면 '-'입니다. '발사각+타구 스피드' 만나서 장타가 만들어지죠. 간단한 수학입니다만, 발사각이라는 것이 측정되지 않을 땐 그냥 이론일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타자들은 어퍼 스윙으로 발사각을 높이는 노력을 하죠.


기존의 타자들은 주로 다운스윙을 했었습니다. 뜬 공보다는 수비의 실책이나 빈 곳을 노리는 것이 더 확률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비 시프트가 100년 넘은 타격의 메커니즘을 바꿔 버린 겁니다. 이걸 플라이볼 혁명이라고 부르죠.


이제 타자들은 공을 띄우기 위한 연습을 합니다. 성공한 타자는 갑자기 슬러거로 변신하고, 적응을 못해 타율을 까먹기는 타자도 등장하죠. 우리가 최근 국제대회에서 고전하는 이유도 이런 추세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최근 부랴부랴 이런저런 것들을 바꾸고 있죠)




결론을 얘기하면..   


데이터는 승리의 요소(출루율, 시프트, 프레이밍 등)들을 발견하게 해 주고,

그 승리의 요소를 포착해 변화를 준 룰 브레이커(오클랜드 A's, 피츠버그 P, 한화)가 생기면  

우리도 맞대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흐름이죠. (발사각 등)


게임의 종류가 바뀌었을 뿐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중해야 할 것은 데이터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승리의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고 누군가 그 요소를 통해 룰을 바꾸고 있지 않은가? 에 대한 것이죠.


그리고 데이터가 만능인 것도 아닙니다. 데이터는 틈새를 발견하게 해주지만 그에 따른 무수한 노력이 뒷받팀 되어야 하죠. 발사각을 높이기 위해, 한 번이라도 더 출루하기 위해, 프레이밍으로 스트라이크를 하나라도 더 잡기 위해..


이른바 세이버 매트릭스라는 수학적 개념들이 들어오며 야구가 재미 없어졌다는 말들도 많아졌습니다만.. 그건 관람객(Audience)들의 이야기고, 선수(Player)들은 어찌 됐든 적응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생존의 문제니까요.. 우리 역시 새로운 룰에 적응해야겠구요.


P.S. 재미있는 것은 이런 혁신들은 대부분 영세하거나 성적이 좋지 않은 구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미 잘 나가고 있는 곳들은 기존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르기 마련이거든요. 혁신은 우리가 어려울수록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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