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가 되다.. 어떤 뜻일까요?
기본적으로는 '구글링' 같이 브랜드 자체가 동사화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그런 경우가 흔치 않지만 영어권에서는 구글, 제록스, 우버, 페덱스 등 다양한 브랜드가 동사처럼 쓰이죠.
브랜드가 동사화 되는 것, 즉 Brand Verbing이 서양에서 브랜딩의 궁극이라고 쳤다면, 우리나라에선 브랜드가 명사화 되는 것이 최고의 경지라고 여겨졌죠. 대표적으로 박카스, 대일밴드, 초코파이, 가그린 같은 브랜드가 있었는데요. 최근엔 이런 경우도 많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초코파이는 오리온 외에도 다들 쓰게 됐고, 가그린 대신 리스테린도 많이 쓰게 됐죠. 오직 박카스만 그 위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때 박카스 달라고 하면 다른 자양강장제를 주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박카스는 그야말로 카테고리 그 자체가 됐습니다.
사견임을 전제로.. 우리나라에서 브랜드가 명사화 되는 현상의 약화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약국에서 주로 구매하는 박카스를 제외하면 'OOO 주세요'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대일밴드 주세요.라고 하지 않아도 편의점이나 다이소에 가면 대일밴드 비슷한 제품들은 쉽게 구할 수 있고 대부분의 제품은 쿠팡에서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도착합니다.
결국 브랜드의 명사화나 동사화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활용될 때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우리의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대일밴드' 같은 제품 대신, '카톡해'라든가, '당근에 올려' '토스로 보내' 같은 플랫폼과 관련된 브랜드를 많이 쓰게 됐죠.
그럼 우리 브랜드가 카테고리를 대표하게 만들면 되는 걸까요? 꿈은 클수록 좋지만 이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면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 브랜딩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죠. 마케팅에 대한 한계가 많이 느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케팅과 브랜딩의 차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아래 링크 참조)가 있지만, 마케팅은 여전히 Push에 가깝습니다.
얼마 전까지 브랜딩보다는 마케팅이 중심이 된 이유는 얼마를 투입해서 얼마를 벌 수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마케팅 역사 상 이렇게 ROI 측정이 명확해진 건 처음이거든요.
정확한 측정이 되는 데다, 적은 금액을 투입해도 나름 의미 있는 결과도 나오니 자연스레 동기부여가 됩니다. 하지만 측정이 명확하다는 것은 이중성이 있죠. 전환율이 떨어지면 오히려 독이 되거든요. 효과가 없는 게 너무 명확히 보이잖아요. 경쟁자가 많아지니 효과는 떨어지고, 또 이걸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계속 비용을 투입할 분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브랜딩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위에 마케팅과 브랜딩에 대한 글도 언급했지만, 최근 제 생각은 기업을 중심에 놓을 것인가, 아니면 소비지를 중심에 놓을 것인가에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마케팅은 기업 중심, 브랜딩은 소비자 중심.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마케팅과 브랜딩은 각각 진화해 갑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마케팅은 '측정'과 만나서 시너지를 일으켰고, 브랜딩은 '참여'를 만나서 변화했죠.
브랜딩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이, 팬이 된다거나..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배포한다거나,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소비자(내지는 우리의 잠재 고객)들이 뭔가를 하는 거죠.
즉, 요즘 브랜딩이 의미가 있으려면 '뭔가를 하는 것(또는 뭔가가 되는 것)'과 연계되어야 합니다. 즉 능동이든, 수동이든 Action으로 이어져야 하는 거죠. (그래야 수익이 나잖아요.)
브랜딩을 하기 위해 팬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커뮤니티를 만들라거나 여러 시도들이 있지만 이런 것들은 전형적으로 달을 보라고 가리킨 손가락만 보고 따라 하는 형태입니다.
팬이 되든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이든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무엇'을 한다고 했을 때 브랜드가 그 '무엇(動詞)'의 상징이 되지 못한다면 이런 행동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브랜딩은 이제 소비자가 주체입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하고 싶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의 상징으로 브랜드가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하죠.
예를 들어 보죠. 한때 고가의 기능성 등산복을 사는 것에 대해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나온 적이 있는데요. 동네 뒷산 정도 오르면서 에베레스트 등산 갈 수준의 장비를 착용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하시는 분은 브랜딩 하시면 안 됩니다) 전형적으로 소비 심리를 몰라서 하는 말인 셈이죠.
내가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는 상관없습니다. 난 의지를 사는 것뿐이니까요. 소비자가 이런 등산 용품을 사는 것은 난 산악인(?)이라는 일종의 코스프레입니다. 해발 몇백 미터짜리 산을 갈 것인가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헬스장에 등록을 하거나, 스터디 카페 회원권을 끊는 것도 나는 진짜 매일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거죠. 과연 달리기를 해본 것이 언제인지도 가물거리지만 운동화를 살 때면 굳이 기능을 꼼꼼하게 따져 가며 나이키 러닝화를 삽니다. 운동을 하러 갈 때면 굳이 언더아머를 입어주는 것도 내 자존심이 되는 거죠.
아주 많은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 브랜드가 무엇을 하려는 사람, 또 무엇이 되려는 사람들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때 그 브랜드는 동사가 됩니다. 우리 브랜드는 무엇을 상징할 수 있나요? 여전히 제품과 가격이 적당하면 소비자가 사준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나요?
요즘에 브랜딩과 관련해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자기다움'입니다. 맞는 얘기죠. 기본적으로 예전부터 내려오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좀 더 명확히 한 표현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저는 이 표현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봅니다.
앞서서 이야기했지만 이제 브랜드는 소비자가 중심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미디어의 중심이 소비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누구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무엇이 되는가가 훨씬 중요합니다. 소비자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대표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거죠.
더 이상 브랜드는 명사가 아닙니다. 소비자와 함께 움직일 수 있는 동사여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