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레드밀 Mar 08. 2024

찢청은 자유였다

어른의 시각과 다른 그들만의 사정

내 조그만 금쪽이가 올해 고등학생이 되었다. 입학날 '엄마 갈까?' 했더니 오지 말란다. 중학교 입학식은 코로나 때문에 입장금지였다. 그래도 또 오지 말라니 내심 아쉬운 건 뭔지, 내 기억을  더듬어 봐도 고등학교 입학식엔 대부분 부모가 오지 않았다. 그래도 입학첫날이니 아침에 새 교복 입은 모습도 사진 찍어주고 나름 첫날을 기념해 주고 싶었는데 후다닥 나가버린다. 어젯밤에 살구색 스타킹이 없다 그래서 검정스타킹 신고 가라 했더니 '그건 중1이나 신는 것'이라며 안 신고 싶어 했다. 후다닥 나가는 뒷모습, 맨다리다.




아이는 여중을 졸업했고 이번에 들어간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에 합반이란다. 초등학생도 화장을 하는 요즘이지만 중학교 졸업 때까지 외모를 가꾸는데 영 관심이 없더니 고등학교 입학 후 뽀얀 얼굴로 등교를 한다. 화장한다고 뭐라 한 적도 없고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 했었다. 물론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턱턱 사주는 통 큰 엄마는 못된다. 어쩌겠나? 주머니가 소박한 엄마인걸 화장이래 봤자 색이 조금 들은 자외선차단제를 바르고 립밤을 바르는 정도지만 고슴도치 어미눈엔 피부톤이 살짝 정돈된 것만으로도 내 새끼가 눈이 부시다. 그래서 또 잔소리가 나오려 한다. 자외선 차단제는 피부에 순한 걸 산 건지 세안제를 매일 사용하면 피부가 약한데 괜찮을지 걱정이 늘어진다. 우선 입 다물어보자.


안경대신 렌즈를 끼고 싶다고 해서 원데이렌즈를 사줬는데, 3개월 분량이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니 잔소리를 보태게 된다. 원데이 말고 2 주용이나 한 달용으로 할까? 하는 계산이 자꾸 든다. 입 밖으로 내지도 않은 말인데 아이는 엄마마음을 제법 눈치챈다. 이런 엄마라서 그런지 아이는 나한테 매사에 솔직하진 않다. 제 생각에 엄마는 너무  깐깐하고 그놈의 가성비를 너무 따진달까? 엄마의 가성비는 딸의 긴 머리도 자뭇 못마땅하긴 하다. 도대체 어디 쓸데도 없는 머리를 이리 힘들게 기르는지 본인은 힘들지 않다지만, 숱 많은 긴 머리를 감고 말리고 하는 것만 해도 쓸데없는 시간과 노력을 뺏긴다고 생각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난겨울 원조 등골브레이커였던 노스페이스에서 짤뚱한 패딩이 나왔다. 아이랑 대학가 앞에 나간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20대들이 색깔도 다양한 그 재킷을 제법 많이 입고 다녔다. 도톰한 패딩 아래로 배꼽이 보이는 게 마뜩잖아 보이는 내가 나도 모르게 구시렁거렸다.

"저건 추울 때 입으라는 거니, 더울 때 입으라는 거니?"

딸이 "따뜻한 심장을 위해 입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제법 센스 있는 대답에 얼~~ 하며 추임새를 넣어주며 나도 비슷한 말을 했던 게 생각났다.


나 대학교 1학년때 한참 찢어진 청바지가 유행하기 시작했었다. 찢어진 청바지뿐 아니라 고가의 청바지 브랜드들이 마구 생겨날 때라 브랜드 청바지 하나 없는 건 꽤나 모양 빠지는 상황이었다. 고가의 청바지를 살 여유가 없어 갖고 있던 청바지를 사포로 문질러 제법 그럴싸한 요즘 청바지를 만들었는데 부모님이 노발대발했다. 아니 그깟게 뭐라고.... 막 허벅지가 다 보이게 찢은 것도 아니고 그냥 좀 스크래치를 냈을 뿐이었다. 결국 아버지 앞에선 안 입기로 했다. 안 입는 척하기로 했다. (이런 부모가 아니였다면 나는 아마 불에 그을린 청바지를 만들어 입었을 거다. 당시에 리바이스에서 청바지 리폼공모를 했는데 그때 내게 딱 떠올랐던 아이디어가 '버닝'이었다. 리폼할 리바이스가 없어서 참여하진 않았다.) 엄마는 뭐 자신도 마음에 들진 않지만, 특히 아버지가 저러니 입지 말라고 단속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저 난린데, 그걸 굳이 왜 입냐?"라는 엄마한테

"자유를 입는 거야."라고 대답했었다.


잔소리는 어른의 입장이다. 그 나이엔 그 나이의 사정이 있다. 사회적 통념이나 어른의 가성비와는 다른 그들만의 룰이 있다. 그들에게는 어른들의 눈에 비치는 '허비하는 돈'도 필요하고 '허비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말도 안 되게 가산을 탕진하고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 정도가 아니라면 꼭 부모 맘에 들지 않게 소비한다고 뜯어말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구획이 우리때 보다 훨씬 명확하다. 내돈이고 내방이고 내 인생이니 말이다. 딸이 5학년 무렵부터 만화책이나 스티커 같은 것들을 사고 싶어 했다. 뭐라도 읽는 게 좋겠다 싶어 만화책은 비교적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줬다. 스티커는 많이 살 수록 저렴해져 저걸 다 뭐할 거냐 싶게 사더니 열정이 흐지부지해졌다. 만화책에 대한 열정도 2년이 채 안 갔던 것 같다. 만화책을 방에서 치우고 싶다길래 중고마켓에 팔라고 알려줬다. 아이돌에 영 관심이 없더니 중학교 1학년 무렵부터 한 보이그룹의 팬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같은 앨범을 여러 개 사고 응원봉을 사는 걸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내기준에선 아이들의 용돈으로 사긴엔 너무 비싸다 싶었고 아이들은 지나치게 열광했다. 네가 받은 용돈을 네 마음대로 쓸 수는 있지만, 함부로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잔소리' 했다. 지나고 보니 이 또한 지나갈 일이었는데 좀 여유롭게 두고 볼것 그랬다. 팬이라며 그 정도도 못 하는 건 아이들 사이에선 부끄러운 일일수도 있다. 최신유행 청바지를 줄줄이 살 수 없어 사포로 문지른 바지를 입어 후지지 않으려 했던 나처럼 말이다.


팬심도 바뀌더라. 우리 부부는 아이의 첫 번째 아이돌이 TV에 나오면 호들갑스럽게 불쌍해하거나 안타까워하며 우리 00이가 버린 000이라며 놀린다. 내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놀리면 "한두 달에 한 번씩 오빠가 바뀌는 애들이 태반"이라며 반격해주니 놀리는 재미가 더 있다. 열심히 사모은 앨범에 들어있던 포토카드들을 처분하고 응원봉도 중고거래로 팔고 새로운 오빠들을 위한 걸로 새로 샀다. 본인말로는 손해 본 게 없단다. 내가 잘 모르는 세계지만 다행인 건 새로운 '오빠들'에 대해서는 소비가 조금 더 신중해진 모양새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신경 안 쓰고 성실하게 공부하는 딸이면 얼마나 좋겠냐 만은 그런 모든 고심으로부터 초연한 '엄친딸'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솔직히 그런 아이를 모른다.



이전 07화 밥 한 번 먹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