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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드밀 Mar 15. 2024

외면과 내면의 부조화

사춘기 아이들의 이상함은 아직 덜 자란 내면

교습소를 할 때 한 어머니가 여러 번 전화 문의를 한 적이 있다. 아들이 중2 경계성지능이라고 했다. 처음엔 특수교육대상자라고 했는데 나는 이게 뭔지 몰랐었다. 여러 번 통화를 하면서 엄마는 아이의 장애진단에 대해 이야기했고, 초등 때는 학교생활을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성적은 나쁘지만 그럭저럭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내가 망설여서 인지 그 어머니가 망설여서 인지 꽤 여러 번 통화를 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가 운동을 했으면 했는데, 코로나로 쉬고 있고 갑자기 예고에 가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동안 그림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지 엄마는 전혀 몰랐고 갑자기 예고에 가고 싶다고 하는 이유도 엄마는 이해하지 못했다. 예고에서도 특수교육대상자를 특정비율 뽑기 때문에 합격이 어려울 것 같지는 않으니 한번 보내보라고 했다. 



 나는 긴장됐지만 미술을 시작하는 게 이 아이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될까 하는 기대를 하며 보내보라 했다. 이 생각은 완전 오만이고 착각이라는 게 머지않아 알게 됐다. 애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데 엄마는 운동을 시키고 싶어 하는 것도 좀 걸렸었다. 당시 내가 가르치던 아이들의 대다수가 진학했던 예고는 공립학교이면서 미술전문특목고였다. 때문에 다른 예고처럼 학비가 비싸지 않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더라도 공예기능 교육을 받을 수도 있었다. 어머니한테 그런 내용을 설명하고 아이가 흥미만 있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는 내가 긴장했던 거에 비해 너무 평범했다. 오히려 큰키에 멀끔한 외모로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처럼 보였다. 그리고 다른 중2만큼 이상했다. 그때까지 나는 대부분 여학생을 가르쳤었고 대학생 때 입시학원 남학생들이 사납게 굴어 고생했던 기억에 살짝 긴장이 됐었다. 이 아이는 순진했고, 꾸역꾸역 수업에 나왔다. 그 아이한테 그림을 가르치면서 난 지능이 낮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소통이 안됨을 알게 됐다. 대답은 참 잘하는데 내가 하는 말의 10%도 이해를 못 했다. 그림은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다. 생각보다 머리를 많이 쓰고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야 한다. 형태를 이해하고, 투시도법이나 빛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중학생들이 아무리 설명해도 이걸 잘 이해 못 한다. 투시도법만 해도 형태의 틀린 부분을 찾아낼 수 있는 정도만 돼도 잘하는 편이다. 거기에 더해 연필만으로 보기 좋게 선을 그어 면을 채우고, 입체적으로 보여야 하는 평면예술이다. 꽤나 고차원적인 일이라는 말이다.


6개월을 넘게 다녔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림은 전혀 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본인이 답답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재미있는 건 이 아이를 지도하면서 그동안 영 이해가 되지 않던 다른 중학생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아이가 지능이 조금 떨어진다는 걸 감안하니 '도대체 왜?'라고 생각되는 속 터짐이 덜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중학생들도 내 기대만큼 내 말을 잘 알 듣지 못하는 게 보였다. 그럴 수 있겠다 싶어졌다. 중2~3이 내 기대만큼 두뇌회전이 빠르지 않고 아이들은 어른의 기대만큼의 열정도 없다. 몸이 다 컸다고 해서 지능이 완성된 상태도 아니며 열정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 삶의 경험을 쌓으며 배워가는 것이더라.


아이는 내 안타까움과는 상관없이 꿋꿋하게 그림 그리는 행위를 했다. 나는 아이 어머니에게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별로 상관없다는 투였다. 그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에 안심한다고 했다. 중3이 된 아이는 예고에 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그리고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그림은 취미 삼아 그리고 싶다고 했다. 나도 마음이 좀 편해져 그럼 너 그리고 싶은 거 그리자고 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걸 그리면 그래도 조금 흥미를 붙이지 않을까 했다. 내가 뭔가를 설명하고 아이의 찰떡같은 대답을 들었지만 나는 두 번 세 번 다시 말하고 설명했다. 이번엔 이거 하나만 고치자 하는 마음으로....결국 아이는 3학년 2학기가 되어서 그만뒀다. '열심히 공부해서 꼭 좋은 선생님이 되라'고 말해줬다. 나의 호기로운 도전은 그저 견딤으로 끝났다. 


그 아이를 지도한 이후로 간혹 말귀를 찰떡 같이 알아듣고 빠릿빠릿한 아이들이 있고, 이 아이들이 평균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학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이런 아이들이 얼마나 귀한지 생각했다. 단순히 다른 아이들보다 편하게 지도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선생에게도 가르치는 보람은 금전적 보상보다 더 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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