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시작해 함께 걷는 배우자
학교에 간 딸아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가정시간인데 부모님한테 배우자 선택 시 중요한 요소와 이유를 물어보라 했단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 간단하게 '사랑'이라고 적어 보냈더니 이유도 알려달라 해서 살다 보면 '사랑의 힘'이 아니면 극복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동하던 중 내내 머릿속에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정말 사랑이 가장 중요한가? 대부분이 결혼 20년 차인 친구들이 남편 얘기를 하며 한탄할 때도 나는 종종 그런 말을 한다. "거짓말하지 마, 사랑하니까 사는 거잖아."라고.... 사실 딸한테 말하려니 그 사랑을 알아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해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을 만나기 전 몇 번의 연애를 겪으며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목록이 생겼었다. 내 20대의 연애는 외로움을 위안받을 존재를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달았지만 대안이나 정답은 알 수 없었고, 대신에 내가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고 다정한지 보다 그 사람 자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던 일말의 방편이었던 듯싶다.
첫 번째는 상욕을 하는 사람이다. 특히, 둘이 있을 땐 하지 않더라도 운전하면서 거친 말이 튀어나오는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와 형제들의 언어폭력을 힘겨워했었다. 그래서인지 거친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겁에 질린 내 어린 에고가 튀어나왔다. 솔직히 너무 무섭고 욕을 하는 행위가 곧 화를 내는 행위임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게 더 무서웠다.
두 번째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꼭 일상이 활기찬 개그캐릭터가 아니더라도 같이 있으면 소소한 농담을 받아칠 줄 아는 위트가 있는 사람이 좋았다. 내가 맘먹고 한 농담을 매번 앞뒤 사정 설명하며 이런 말이 튀어나온 이유를 줄줄이 설명하기는 너무 힘 빠진다.
세 번째는 무지한 사람이다. 꼭 학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고 문화예술 전반에 관심을 갖고 신문에 나는 문화기사 한두 개는 읽는 사람 이어야 했다. 많이 안다기보다 사소한 탐구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좋았다. 다른 말로 하면 관심사가 비슷하거나 다르더라도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내 이야기를 알아들어주는 사람이다.
우리 부부는 연애시절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고, '상실의 시대' 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당시에 상당히 인기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상실의 시대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거나 젊은 남자애가 바람피우는 이야기라고 일축해 버리면 몹시 언짢았다.
네 번째부터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용서가 되는 범주냐 범주 밖이냐의 문제들이다. 너무 마음에 안드는 외모이거나 지저분하거나 게으르거나 성실하지 않다거나.....
외모가 중요하다는 사람도 제눈의 안경인 경우도 있고, 뭐 아무리 좋은 외모도 서른 중반을 넘기기 전에 망가지기도 한다. 나 또한 외모를 전혀 안 본다는 건 아니다. 외모의 허용범위도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더라. 위생에 관한 문제도 몸치장이나 주변정리나 식생활의 문제까지 각자의 기준이 다르다. 때문에 서로 허용범위 안에 있어야 하고, 허용범위 안으로 조율이 가능해야 한다.
내 이런 여과를 거쳐 선택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뭐 100% 성공이라고 보기엔 예상치 못한 미운 마음이 들던 시절도 있었다. 바로 그때 우리의 '사랑'에 대한 기억과 가정을 지키겠다는 '약속'이 이 가정을 지탱해 줬다. 사실 나는 내 인생에 이혼은 절대 없다는 주의는 아니었다. 따로 사는 게 나을 것 같은 상황이면 헤어지는 것도 서로를 위해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었다. 남편은 달랐다. 본인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 대한 신의이자 나에 대한 신의였다. 몇 번인가 내가 감정이 격해져 이혼을 말했을 때 이혼을 생각할 만큼 힘든 상황이면 자기가 양보할 수도 있는 부분을 찾을 테니 그렇게 상황이 나빠지도록 감정을 키우지 말라고 했다. 내 필터링은 나름의 성공이다. 나는 남편을 통해 내 외로움의 실체를 깨달았고 자립하는 법을 배웠다. 온전히 나를 채워준 사람이라면 좀 과장일지 몰라도 그가 나를 성숙하게 한 건 인정해 주려한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나는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더불어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도 수없이 했다. 아무 데서나 말이 많은 사람을 이성적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마음이 여리다는 것은 알겠는 데 그 표현방식은 너무 거칠었고, 가족들을 향한 인정욕구는 가족들을 끊임없이 힘들게 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하루 한두 끼도 먹기 힘들 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내 기억 속의 친할머니도 사랑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모진 세월을 살아오신 특유의 아집과 식탐 같은 것들이 있었다. 우리 친할머니 이야기는 언제 한번 더 자세히 쓰고 싶다. 여하튼 내 원가정은 '사랑의 힘'이 부족했다.
'안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 덕'이라고 나는 철이 들 수록 내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모진 시간 속의 거친 삶이 그들의 언어로 여과 없이 나에게 전해지는 게 싫었다. 오죽하면 드라마에 나오는 가족들처럼 말하는 사랑 넘치는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었다. 인정은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면 누군가로부터 받아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족스러운 것들을 선택하며 스스로가 채워나가야 하는 것이더라. 나 또한 외로움을 누군가로부터 채우려 했고 그이면에는 내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누군가로부터 받고 싶은 욕구가 숨어있었다. 남편을 만나고 20여 년을 함께 살면서 온화하고 한결같은 그의 방식에 목말라하다가 지쳤다가 위안받았다. 그렇게 나 자신을 찾아내고 독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