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피구는 숨어 있어도 지나갔다
학창 시절 나는 피구를 싫어했다. 날아오는 공이 너무 무서워 그걸 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어쩌다 던져야만 하는 공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고 내가 던진 공을 뺏겼을 때 같은 팀 아이들의 반응도 두려웠다. 그렇다고 잘하고 싶지도 않았던 걸 보면 멋지게 몸 쓰는 일하고는 애초에 거리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피구를 좋아하든 말든 그때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공을 피해야 하는 그 놀이 피구를 정말 피하고 싶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피구 시즌은 6학년때였다. 반대항 대회라도 했던 걸까? 이유는 잘 기억이 안나는 데 한동안 우리 반 여자애들은 점심시간에도 피구를 했다. 점심시간 피구는 선택이지만 체육시간 피구는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지만 이미 잘하는 아이들 몇몇의 게임이었다. 어느 날 경기 초반 반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한 친구가 내 등뒤에서 말을 걸었다.
"그냥 이쪽 구석에 있으면 공 잘 안 맞아."
그 아이도 나처럼 피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 게임에서 조용하고 적당하게 묻어가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 후 나는 그 아이에게 배운 방법대로 경기초반부터 중앙경계 가까이와 뒤쪽 모서리 가까이를 왔다 갔다 했다. 선을 넘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법을 선택한 것이다. 남녀 합 55명, 여자아이들만 해도 한 반에 30명 여명이 한게임을 하면 적당히 시선을 피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경기에 열심인 아이들이 하나둘 장렬히 공을 맞고 나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오롯이 드러나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제 더 이상 숨을 데가 없다. 내가 드러났을 때는 이미 우리 팀이 패색이 짙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인원이 눈에 띄게 줄었을 땐 상대팀이 타깃을 정해 하나씩 해치운다. 그럴 땐 적당히 피하는 척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공에 맞으면 된다. 이때 열정적인 같은 반 친구의 질타 섞인 시선을 맞봐야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피구가 하기 싫었고 나름 최선을 다해 피해를 주지 않으려 그 게임에 조용히 임했는데 무기력하게 공을 맞으면 질타를 받아야 했다. 나도 무기력하게 공을 맞기보다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속에서 뭐 웃고 떠들고 즐거운 일도 있었겠지만 그게 피구여서 더 즐겁지는 않았다. 경기 막판까지 운이 좋다면 끝까지 공에 맞지 않고 씩씩한 누군가의 뒤에 숨어서 이긴 팀의 안온감을 맛볼 수도 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피구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운동경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지 어떤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개인의 자유나 의지보다 효율적인 수업이 중요하고 단체가 중요하다고 배우던 시절이었다. 사춘기가 시작되던 6학년의 나는 그런 대우가 매우 못마땅했다. 목소리 크고 적극적인 몇몇 아이들은 생기 넘치던 당시 20대 담임선생님과 관계도 좋았고 반 분위기를 주도했다. 중 고등학교를 통틀어 참 꾸준히도 개인의 자유보다는 단체의 효율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대학에 가서도 적잖이 그런 일들이 있었다. 사는 내내 이걸 불편해한 나는 드디어 단체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어느 날 그렇게 단체활동이 싫었던 나는 지금은 개인적인 일에 몰두하며 살고 있는 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게 40대에 이르러서였다. 그래 나, 나는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의 답변은 나를 향하지 않고 누군가의 시선을 빌리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부모님에게 착한 딸인지, 남편에게 사랑받는지, 좋은 엄마인지.....
40대가 되니 남들의 시선 따위 다 필요 없다고 느껴졌다. 난 그들의 시선에 맞추기 여전히 부족하고 그걸 위해 애쓴 내 삶은 행복하지도 않았다. 이도저도 아닌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단체활동이 중요하고 외향적인 사람들의 시대를 살며 한 번도 리더가 되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어느 날 나를 이끌어줄 리더도 단체도 없는 채 홀로 방치됐다. 그 당시에 그런 책들만 본 건지 사회적 화두였는지 개인의 가치를 찾고 자아성찰을 하란다. 40년 동안 나를 죽이고 살라더니 이제 와서 아님 말고? 이러고 있는 세상이 보였다.
요즘 아이들도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하기 싫은 일을 참고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우리 때보다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중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가끔 당황스러운 모습들을 보기도 했다. 친구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며 혼자만 과자를 먹는 다 던 지, 둘이 평소에 둘이 친하다 싶은데 사소한 부탁에 싫다고 잘라 말한다 던 지, 늘 붙어 다니던 아이들이라 한 친구가 연락 없이 오지 않았을 때 왜 안 왔는지 아느냐고 다른 아이에게 물으면 '그걸 왜 저한테 물어요?' 이런 반응 말이다. 그야말로 요즘애들은 싹수가 없는 건가?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요즘애들은 내가 학교 다닐 때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만큼 개인적이며 그에 걸맞은 개인적인 고민들을 하고 있다. 미술을 하고 있지만 대학에 가는 게 나을지 아닐지를 고민한다. 집에서 권하지도 않은 유학을 갈 수 있는 방법이나 장단점을 묻기도 한다. 회사에 다니기 너무 싫은데 어떻게 돈을 벌어서 그림을 그릴지를 고민한다. 그럼에도 표면적으로 하는 말들은 공감하지 힘든 말 들이다.
건물주였으면 좋겠어요.
로또 됐으면 좋겠어요.
놀고먹고 싶어요.... 그런 말들 말이다.
나도 처음 이런 말들이 시덥잖고 한심하게 여겨졌다. 이내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헤쳐나가야 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표출이라는 걸 알게 됐다. 두려움이 있다는 건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 연령의 아이들은 놀랍게도 다들 그런 시답잖은 말은 한다. 그냥 유행처럼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고 정말 절망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나 또한 아이들의 이런 말에 답변을 해주기까지 적잖이 시간이 걸렸다.
"너 로또 못 사잖아."(미성년자는 복권을 살 수 없다)
"건물주 되려면 건물을 사야지, 건물을 하루아침에 살 수는 없어. 한 단계씩 방법을 찾아봐야지."
"놀고먹으려면 돈이 많아야 돼. 놀고먹고 싶다고 말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한 푼이라도 빨리 버는 게 조금이라도 빨리 놀고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방법이야."
뭐 이런 식이지만 내포하고 있는 결론은 현재 네 할 일에 충실하라는 말을 진심으로 해주고 싶었다.
즐겁지 않은 일, 적극적이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는 몸을 숨겨가며 조금 피해 있어도 괜찮았다. 55명의 아이들이 빼곡했던 30년 전의 학교에서 내가 배운 것이다. 한 반에 많아야 26명인 요즘 아이들은 몸을 숨길데가 없다. 덕분에 개인적인 고민을 빨리 시작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고달프다. 내가 마흔이 다 되어서야 간절했던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을 요즘아이들은 중고등학교 때 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나의 사춘기나 지금의 그들도 마찬가지 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성향에 맞지 않는 단체 활동이 버거워던 반면, 단체라는 이름에 숨지 못해 불안한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숨을 데가 없어서 회피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조용히 피구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보건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이미 우리 때와는 너무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다. 또 내가 겪은 사회와 어떻게 달라질지 조차 상상이 안 되는 세상을 겪을 것이다. 개인의 가치보다 집단의 효율이 중요했던 나의 사회의 경험은 나름 옥죄였던 기억이다. 그럼에도 도드라지는 아이들을 볼 때면 '튀어나온 돌이 정 맞는다'는 옛 속담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니 조언이니 뭐니 어른짓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겠다. 지나고 나면 다 별거 아니다.
(첨부한 사진 출처)를 밝힙니다.
http://m.goryeo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8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