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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드밀 Feb 16. 2024

단어로 알게 되는 새로움

INTJ든 ESFP든 그게 온전한 너는 아니야 두 번째 이야기

사춘기 아이들은 본인들에게 생경한 단어, 새로운 말들을 허세 넘치게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요즘은 워낙 정보가 넘치다 보니 이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다. 본인들에게 낯선 것들은 완전 새로운 것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귀여운지.... 그래서 때로 그들은 새로운 것들을 허세 넘치게 자신에게 갖다 붙이는 미숙한 라벨링을 선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의 이런 라벨링의 재미있는 예는 하나 더 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다들 뭔가 하나씩 공포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00을 두려워할 수는 있지만 이것에 대한 공포'증'이 되려면 확연한 증상이 있었야 하고 이것은 전문가의 분야다. 아이들의 감성을 폄훼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난 그 '공포증'이라는 말을 중학교 1~2학년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느껴졌다.(지금은 또 이 시기가 더 어려졌을지도 모르겠다.)

"전 벌레공포증이에요."

"제가 고소공포증이에요."

"전 물공포증이라 바다뷰가 싫어요."

"저 그거 못 보겠어요. 저 환공포증이에요."

 이런 말들을 자주 들었다. 그럴 수 있지 벌레가 무섭고, 높은 곳이 무섭고, 반복되는 동그라미가 징그러워 보일 수 있지. 그렇다고 패닉에 빠지거나 그게 두려워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정도는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저 익숙치 않음을 자신이 이겨낼 수 없는 본성이라 단정 짓고 허세를 조금 더해서 '공포증'이라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난 꼰대롭게 '그건 네가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래'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오려 한다. 그렇지만 배운(?) 사람답게 "그럴 수 있지. 근데 이런저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벌레 따위 동그라미 따위가 무서워서 뭔가를 포기하는 게 더 무서운 상황이 돼"라고 말해준다.


"앞으로 얼마나 다채로운 경험들이 니 인생에서 펼쳐질 텐데 네가 지금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이길 수 없는 사람으로 널 한정 짓지 말자."


돌이켜보면 나도 중고등학교 시절 뭔가 처음들은 있어 보이는 말에 꽂힌 적이 있다. 헤비메탈을 좋아했던 나는 헤비메탈 사조 가운데 하나로 처음 알게 된 '아방가르드(이 멋진 단어가 전위적이라는 뜻이라니!)'라는 단어가 너무나 멋져서 미술 쪽에서 아방가르드-전위예술이 어떤 사조인지 열심히 찾은 적이 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국어사전 영한사전을 뒤져도 이 단어의 기본 개념을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내 서점에서 미술용어사전과 이해하기도 힘든 미술 전문 서적(아마도 '현대미술의 동향'이었던 것 같다)을 뒤적여 읽히지도 않는 그 문장들을 애써 곱씹어 가며 아방가르드를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다가 발견한 별거 아닌 단어들 중 고등학생이 잘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곧잘 허세 넘치게 사용했었다. 간혹 그게 살인마가 나오는 추리소설에서 배운 단어라는 게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청소년교육전문가도 아니고, 진로상담가도 아닌 동네미술학원 선생님인 내가 사춘기 아이들을 보면서 감히 안타까웠던 부분이 있다.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방법은 이런 심리테스트나 허세 넘치는 단어로의 라벨링이 아니고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들어주는 어른이다.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자아상을 드러낼 수 있는 단어들을 더 많이 듣는 다면 좀 더 긍정적인 라벨링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긍정적인 단어들은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 고루한지도 모르겠다. 러브유어셀프라는 지극히 익숙하다 못해 하나도 멋지지 않은 이 말을 BTS가 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MBTI는 이런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방법으로 좋은 것 같긴 하다.


중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애썼다. 짧게는 한두 시간 길게는 네 시간까지 이어지는 미술수업이 재미있으려면 선생님과 관계가 좋아야 함은 물론이고, 지금 그리는 이 그림이 앞으로 너의 인생을 어떻게 펼쳐지게 할지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어떤 아이는 금세 나와의 수업에 익숙해져 온갖 이야기를 재잘거리고 부모님과의 문제나 친구들과의 문제들을 말한다. 말하다 스스로 부모님의 입장이나 친구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하고 기꺼이 자신을 위한 보다 나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몇몇은 몇 달이 지나도록 입을 열지 않고 묻는 말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드는 등의 반응만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것을 선택해 보라 해도 결정을 나에게 미룬다. 처음 그런 아이를 접했을 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최소한 중학생 정도가 됐으면 예의 있는 행동을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 경험만으로 감히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아이들이 어떻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런 아이들은 부모와 관계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같이 온 어머니는 본인은 아이에게 학업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이 스스로는 그렇게 느끼지 않거나, 부모가 아이에게 무관심하기도 했다.


곧잘 마음을 열고 말을 하는 아이들은 이미 부모와 관계가 좋은, 그러니까 이미 주변에 좋은 어른이 있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을 어른과의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른들에게 받을 수 있는 관심과 사랑을 기꺼이 받는다. 반대의 경우는 다소 강압적인 집안의 아이들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해도 그걸 듣는 내가 수용해 줄 거라고 믿지 않는다. 모자란 유대를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이미 닫힌 마음으로 거부하는 게 안타까웠다. 불행인지 다행인 나한테 오는 아이들 중 이런 아이들은 내 수업에 오래 다니지 않았다. 큰 학원에 다니다가 코로나 기간에만 집 가까운 곳에서 잠시 다니려고 온 아이들이거나 큰 학원에 다니기 전에 맛보기로 오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의 진로는 당시의 성격유형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더구나 왜 하고 싶은 것이 없냐는 다그침으로 꿈이 생기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 스스로 묻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들이 아는 몇몇 단어에 그들의 세상이 제한되지 않도록 좋은 단어와 긍정적인 세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시작은 그들의 사소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사춘기 아이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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