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과 고군분투하는 아직도 사춘기 엄마의 성장일기
딸아이가 초등 5~6학년 무렵, 밑도 끝도 없는 '싫어'가 극에 달했다. 그냥 날 좀 내버려 둬 달라는 그 쪼끄만 것의 반항이 너무도 이해되지만 너무도 화가 났다. 아이에게 화가 난 것 같았지만, 돌아서면 나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쉽지 않은 아이라는 건 이미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사춘기의 도래는 자신의 사춘기를 기억하는 엄마에게도 가혹하다. 어르고 달래고 야단도 치며 그래도 조금은 엄마 입맛에 맞춰 달라고 통사정했지만 애초에 내 바람은 어불성설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탓하고 돌아서면 속상하고 내가 한심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내 힘듦은 몰라주는 서운함이라는 걸 알아챘다.
나는 누구보다 거센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겉으로 보기엔 잠잠했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자라고 있었다. 누구보다 참견을 싫어했고 통제를 싫어했다. 그 시절 눈뜨면서부터 통제 투성이던 삶이, 특히 학교가 너무 싫었다. 등교하면서부터 맞닥뜨리는 복장 단속, 이름표나 학교 배지를 잊었다고 손바닥을 맞거나 오리걸음을 하거나, 8시에 교문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손바닥을 맞거나 하는 일은 일상이었다. 아무튼 학교가 너무 싫었다. 그럼에도 중고등학교 6년을 병가도 한번 없이, 조부모상 같은 것도 없이 개근했다.
나는 학교에서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하지 말라는 짓을 했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정규수업이 아닌 보충수업이니 자율학습 시간들을 땡땡이치고 종종 혼자 시내를 쏘다니기도 했다. 떡볶이 사 먹을 돈조차 없이 그냥 혼자 락 스피릿 충만한 오빠들의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쏘다녔다. 집에서는 입을 닫는 대신 내 방 책상에 앉아 세상 불만 가득한 일기를 쓰는 걸로 문제없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이런 내 옛날 생각에 잠겨있는데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나는 마침 잘됐다 하며 하소연했다. 어쩜 저렇게 하나하나 다 싫어 안 해 그러는 줄 모르겠다 했더니 친구는 너도 그러지 않았냐고 원래 다 그런 거 아니냐며 내편을 안 들어준다. 퍼뜩 난 그래도 엄마 불쌍한 줄 알고 엄마가 힘들까 봐 엄마한테는 착하게 굴었다고 대답했다. 돌아온 친구의 대답에 난 쿵 한대 얻어맞았다.
"그러냐? 난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는데"
아... 맞다. 얘네 집은 부자였지.
우리 엄만 왜 불쌍했지? 가난해서였나?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 곁의 엄마는 자식들에게 나약한 존재였다. 무신경한 아들들은 몰라도 딸은 엄마 마음을 알아줘야 한다고 엄마도, 외할머니도, 이모들도, 과일가게 아줌마도 나한테 말했었다.
딸이니까 그래야 한다고.....
난 이제야 딸아이가 엄마를 가엾어하는 게 얼마나 이상한 건지 깨달은 거다. 딸이 어른이 되고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되면, 같은 여자로서 고난했던 엄마의 삶에 연민을 갖는 것까지는 자연스럽다. 그래 그 정도는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아이였다. 5학년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대학생 때도, 나는 엄마를 이해해줘야 했고 불쌍히 여겨줘야만 했다. 딱 한번 고2 때인가 엄마한테 엄마가 엄마지 내가 엄마냐고? 왜 나한테 다 이해하라고 하냐고 반항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곪아 터진 한마디를 우리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고 원통해했다.
엄마는 불쌍하면 안 된다. 아이 앞에서 나약해도 안된다. 삶이 고되면, 고되다 하면 그만이지 아이에게 짐을 나눠지게 해도 안된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그렇다.
물론 철이 빨리든 아이라면 부모의 힘겨움을 눈치챌 수는 있다. 집안 형편에 맞게 씀씀이를 조금 줄이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정도의 노력을 하면 된다. 삶이 힘겨운 부모 밑의 아이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어린 삶이 치열해진다.
아이는 부모를 위해 희생하고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 부모는 절대 본인이 해결하지 못한 배우자와의 관계를 자녀에게 투영해서 배우자를 악역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고, 자녀와 배우자가 삶의 속박이라고 말해도 안 된다. 내 경우는, 아마도 당시의 많은 딸들은, 불안했다. 해결되지 않는 어른들의 현실 때문에 엄마가 우리를 포기하거나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려웠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부모들은 자신의 고된 삶을 과장해 아이들을 통제하기 좋게 불안을 조장했다. 의도적이라기보다 본인들이 배운 훈육법이 그랬을 것이다. 말 안 들으면 도망가 버릴 거라는 말, 말 안 듣는 자식은 필요 없다는 말, 자식들마저 그 모양이면 내가 이 집에 살 이유가 없다는 말....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내뱉은 말들이 얼마나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말들이었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나이를 먹고 부모 원망이나 하고 있는 꼴인지도 모르겠다. 난 아이를 계획하면서부터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공부했다. 내 부모처럼 되고 싶지 않았는데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인지 알 수 없었다. 책을 읽고 공부할수록 내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고 거기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수 없이 되뇌었다. 앞으로도 나는 유년의 기억, 사춘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바로 잡는 일을 할 것이다. 애쓰지 않으면 관성대로 살아지고 내가 보아온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내가 그 시절 일기장에 적었던 'ㅇㅇ처럼 살지 않기'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