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일도 방법은 있다
같은 또래의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아이의 성적 이야기, 진로 이야기, 태도 이야기, 식성에 대한 불만을 성토하다가 조금 미안한 마음에 얼마나 귀한 아이들인지 서로 상기시키며 이 사춘기 것들에 대한 각자의 애정을 확인한다. 그런데 친구의 결론은 "그래 애하나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어."라고 맺는다. 나는 곧 이 말에 이상한 반감이 들어 "난 안 힘들어."라고 했다.
힘들다고 말하는 건 지쳐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아 반감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나도 지금보다 단단하지 못했고 24시간 붙어서 내게 뭔가를 요구하는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는 오히려 내게 곁을 잘 주지 않고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고 종종 나보다 친구와 있는 시간을 우선시하기도 한다. 그러니 나는 훨씬 여유롭고 편안하다. 친구와 나눴던 사춘기 아이 엄마로서의 고민은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는 나에 대한 고민이다. 그래서 어렵긴 한데 힘들진 않다.
뭐 이런 개떡 같은 가타부타가 있냐고 오히려 내 말에 반감이 드는 이들도 많을 것 같기도 하다. 반면, 나같이 따지기 좋아하는 T성향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사고가 재미있을 수도 있다. 갑자기 떠오르는 이런저런 흥미로운 생각들에 살짝 흥분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 흥분감을 몰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려움은 문제해결과정의 난이도를 나타내는 말이고
힘듦은 문제 해결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면 어려움이나 힘듦은 감정인가? 어려움을 느낀다. 힘듦을 느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걸 보면 감정이 맞는 것 같지만, 어려워서 힘들다는 어려워서 재밌다. 어렵지만 해결하고 싶다. 가 가능한 걸 보면 어려움은 감정은 아니다. 어려움은 과제나 과제를 대하는 해결자의 상태다. 우리는 종종 대상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을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과 혼동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어렵다거나 힘들다거나 하는 말이 다 감정과 뒤섞인다. 언어나 심리 전문가가 아니라 내 말이 백 퍼센트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이런 말들에 이견을 듣고 토론을 하고 싶은데 나눌 사람을 찾지 못해 혼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이를 돌보는 문제해결과정에서 사실상 여러 어려움을 겪지만 그로 인해 지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힘듦이 반복되면 지친다.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다 보면 더 강해진다. 아이와의 문제뿐 아니라 살면서 힘들 때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힘들다고 느끼는 상황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성숙한 개체로 태어난 인격을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돌보는 일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동식물을 막론하고 어리고 미숙한 개체는 성숙해지기 위한 여러 과정을 겪는다. 겪어야만 성숙해진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힘들지 않아.'라고 혼자 곱씹어 생각했다.
나는 아이 때문에 힘들지 않다. 아이가 있어 즐겁다.
내가 어려운 건 이 아이 옆에서 어떤 포지션으로 있어야 하는지다.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아이 때문이지만, 내가 약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위치를 찾는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나 자신이 조금 나은 인간이 되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두서없이 발행했던 글을 책으로 묶어 재발행 중입니다.
이전에 라이크 눌러주시고 답급달아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두가지 책으로 묶어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