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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레드밀 Jan 23. 2024

그해 가을, 금목서가 피었다

내 안의 그 아이도 사춘기쯤 되었을까

 무더위가 가기를 간절히 기다렸는데 어느덧 선선해진 바람에 익숙한 향기가 실려왔다. 아파트 마당에 핀 금목서 향기에 번뜩 정신이 차려졌다. 나이 마흔을 넘기며 스스로 인지한 나이 듦의 첫 번째 증표는 시간이 빠르다 한탄하는 내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 두 해 갈수록 왜 이리 시간은 더 빨라지는지.....


 

  41세가 되던 해였다. 그해 안에 뭔가를 시작하지 않으면 정말 이대로 주저앉아 황혼이 오기를 기다리는 삶을 살 것만 같은 불안이 들기 시작했다. 3월부터 아파트 짐에서 한 시간씩 운동을 하고 생전처음 자발적으로 산에 올랐다. 그리고 꼭 돈벌이를 시작하리라 마음먹었었다. 운이 좋게 작고 소중한 일을 7월부터 시작해 긴장과 적응을 반복하며 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무더위가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불현듯 시월이다. 금목서 향이 바람에 실려와 나를 싱숭생숭하게 했다. 늙지도 않는 내 감수성은 숫자 4를 단 나이가 되면서 조바심을 내는 나를 다독였다. 지나고 보면 몇 년 전도 지금보다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다. 몇 년 후에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나, 오늘을 가장 행복하게 보내자는 다짐을 했다. 나름의 사소한 계획을 갖고 작은 성공을 이루어가며 성장하는 삶을 살자 했다.


 그때는 우리 가족이 5년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부산으로 이주한 지 일 년이 지났을 지점이었다. 아이는 3학년 중반에 귀국해 한 학기를 그럭저럭 잘 지내는 듯하더니 4학년 들어 매우 힘들어했다. 이제야 새로운 환경이라는 걸 인지하기라도 한듯 힘듦은 애석하게도 몸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도, 한국에 돌아와서도,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아이는 몸살 같은 아토피를 겪었다. 완치가 없는 증상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심해질 때면 지켜보는 엄마는 마음이 무너진다. 4학년 봄 여름 내내 우리 부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산을 오르고 여러 곳에 산책을 다니며 아이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기를 기다렸다. (얼굴이 붓는 심한 아토피는 적어도 3~4개월은 지나야 가라앉는다.) 다행히 학교에 진짜로 적응해 갔고 몸도 나아갔다. 산책과 등산을 다니며 아이에게 나무 이름과 꽃이름을 알려주었다. 연예인 이름보다 나무이름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풀과 나무를 좋아하는 엄마만 온갖 것들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엄마는 자다가도 맞은편 방에서 아이가 몸을 긁는 소리가 나면 잠이 깬다. 진물이 뭍은 이불과 옷가지를 젖히며 속상한 한숨을 내 쉬면 아이는 엄마가 기분이 안 좋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 했다.  하루 이틀 정도는 심각한 줄 모르고 지나고, 일주일 한 달이 되면 왜 점점 더 심해지는지 화가 나다가, 두 달이 되어가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든다. 순하게 씻고 피부를 보호해 줄 로션을 바르고 손톱을 짧게 자르고 몸에 잘 맞는 좋은 음식(음식에 대한 부분은 의견이 분분하기에 그저 짧게 '좋은 음식'이라 해두자)을 먹다 보면 아토피는 호전된다. 문페이스라고 하는 퉁퉁 부은 얼굴이 가라앉기 시작하면 이제 호전으로 돌아섰구나 싶었다.


그렇게 치열한 봄과 여름을 보내고 맞이한 그 가을 금목서 향은 유난히도 짙었다. 일 년 전에 당시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금목서의 이름이 정확히 금목서라는 것도 그 아파트 나무에 붙은 표지판을 보고 알았다. 새로 만들어진 반듯하고 깨끗한 것들보다 오래되고 때 묻은 것들을 좋아하는 내게 새 아파트 단지는 그저 편리를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일 뿐이었지만 그 아파트단지 곳곳에 심어져 있는 금목서에게는 특별히 애정을 주었다.

 

 인생의 초가을 같은 40대, 금목서처럼 고혹적인 향기로 내 삶을 채우기를 바라며 6년전 가을 이글의 초안을 썼었다. 그리고 2024년 어느덧 40대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나는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시도했고 도무지 적응이 안 될 것만 같던 부산에서의 삶도 이미 내 삶의 상당 부분이 되었다. 아이는 자라고 사춘기가 되었고 조용하지만 적극적으로 끊임 없이 내게 새로운 과제를 낸다.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낸다. 이해받지 못한 감정과 상처받은 마음의 거친 더께 안에서 자라지 못한 나의 작은 아이를 함께 키워내고 있다. 자라지 못한 아이의 마음으로 사는게 관성이 되지 않도록 잘 자라고 있다.


그래서 이제 사춘기쯤 자라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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