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방학을 활용하여 여행을 떠나자
거제도 포로수용소 모노레일, 여수 이순신 대교, 이순신 공원, 향일암
도착 후 둘째 날 아이의 감기 증상으로 소아과를 다녀오고 나서 할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공원묘지를 다녀왔다. 아이가 여섯 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조금 가지고 있어서 아이는 아직 할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는 것 같았다. 만날 수는 없지만, 기억 속에 살아계시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하나의 큰 바깥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는 걸 느낀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라고 기도드리고 돌아왔다.
아이의 감기 증상도 비염 때문이라는 의사의 말에 계획대로 거제도를 다녀오기로 했다. 날이 근래 들어 가장 추웠다. 한파주의보도 내린 상태였다. 날이 추워서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고 모노레일만 예약을 전날 급하게 해 둔 터라 탑승하게 되었다. 국내 최장 모노레일이라는 안내대로 산 정상까지 급경사를 이삼십 분간 오르내렸다. 기차 종류를 좋아하는 아이의 취향을 반영하여 이번 여행 버킷리스트에 넣어둔 곳이다.
정상 부근에 오르니 문재인 대통령 생가터도 볼 수 있었고 거제도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것이 장관이었다. 내려올 때는 앞자리에 탑승할 수 있어서 더 좋은 전망을 구경할 수 있었다. 거제도를 여행하며 바닷가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산 교육이었다.
다음날은 순천과 가까운 여수를 여행하기로 했다. 그날은 새해 첫날이었다. 최근에 세워진 이순신 대교를 건너며 광양항에 오가는 컨테이너선 등 대형 선박을 보며 아이는 신기한지 사진을 찍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아이에게 여수 이순신 광장에 있는 거북선 안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다. 근데 가서 보니 내부 수리 중이라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근처 전망대에 올라 여수 앞바다를 보고 이순신 광장에서 먹거리를 사 먹으며 기분을 달랬다.
여수반도 끝자락에 있는 향일암으로 향했다. 근처에 살았었지만 이름만 듣고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목적지 근처에 가까워질수록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서며 움직이지 않았다. 차를 돌려 먼 주차장에 대 놓고 아이와 둘이서 걸어서 향일암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자주 와본 곳이라며 올라갔다가 오라고 천천히 따라오셨다. 아직 차가운 바람에 아이와 손을 꼭 잡고 향일암을 올랐다. 올라가는 길은 고됐지만 오르고 보니 남해안 서해안에서 볼 수 없는 탁 트인 동해바다 같은 인상의 멋진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새해 소원을 빌고 각오를 다지러 온 여러 단체와 개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아이는 부처님 전에 봉헌하고 싶다며 내게 돈을 받아다가 넣고는 부처님 전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어떤 마음으로 절을 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냥 기특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힘들다고 암자에 안 올라갈 것 같았는데 의외로 앞장서서 잘 걸어갔다 왔다. 집에 있을 때는 투정 잘 부리던 아이가 이런 곳에 오니 스스로 행동하게 되고 자신감도 생기게 되는 것 같다. 여행은 아이를 크게 만들고 부모와의 여행은 서로를 더 신뢰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