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방학을 활용하여 여행을 떠나자
당일로 다닐 수 있는 거주지 인근 도시들 주제 여행(안양, 용인, 이천, 안성)
아이가 아직은 제 앞가림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 때문에 장기간 여행을 자주 가는 것은 준비하고 실행하는 아빠에게도 정신적 신체적 부담이 되고 아이에게도 신체적으로 힘들 수 있다. 차박 캠핑을 해서 하룻밤을 자고 온 다던지 친인척 집을 며칠 정도 방문하는 정도 그리고 가족 전체의 여름휴가가 그나마 장기간의 여행이었다.
이런 여행 외에 잠깐씩 시간을 내서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해봐도 우리가 사는 지역 인근에 인접한 도시들의 여행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찾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가 그 지역에 볼일을 보러 가거나 갑자기 아이와 내가 시간이 나서 바람 쐬러 가고 싶을 때 이용해서 다녀올 수 있었다.
하루는 직장에 다니는 아내의 부탁으로 대신 볼일을 보러 안양에 갈 일이 있었다. 안양이라는 도시는 수도권에 있고 내가 사는 도시처럼 회색빛투성이의 별 특색 없는 도시의 선입견을 주고 있었다. 하나의 수도권 도시 중의 하나 정도랄까. 볼일 목적이 있긴 했지만, 일부러 아이와 찾아간 곳이기에 도착해서 볼일을 마치고 나서 인근 지역의 박물관 미술관이나 유적이 있는지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인터넷에 평가자의 수가 많고 평가가 좋은 곳으로 방문지와 멀지 않은 곳을 찾아보다가 ‘김중업 건축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평일이어서 인지 박물관 내외부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다만 김중업 건축가의 자손으로 보이는 분이 안내하는 사람과 동행하여 내외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느낌에 김중업 건축가의 아드님으로 보였다. 우리와 동선과 시간이 일치하여 같이 내부를 둘러보게 되었다. 김중업 건축가 생애의 기록과 그동안 이룩한 건축물에 대한 기록이 전시되어있었다. 건축가의 손에 건축물들이 미술 작품처럼 개성 있게 제작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건축박물관에서 안양 예술공원 안내 책자 겸 스탬프 투어 책자를 구할 수 있었다. 김중업 건축박물관은 ‘안양 예술공원 음식 문화거리’ 구역에 묶여 있는 관광단지였다. 건축박물관을 다 둘러보고 옆 건물로 가보니 카페 정도로 생각했던 곳에 생각지도 않았던 ‘안양 박물관’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박물관 위층에 있는 경치 좋은 카페테리아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먹고 나서 본격적으로 박물관 구경을 시작했다. 안양 박물관은 안양지역에서 출토된 유적을 기초로 안양과 관련된 역사적 기록들을 보관하고 전시하고 있었다. 나름 소소하게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두 박물관을 나와서 근처에 있는 종 모양이 뚜렷하게 암석에 새겨진 ‘석수동 마애종’을 보았다. 그리고 인근 전망대를 올라 근처에 있는 안양사와 안양 시내를 한눈에 조망해보고 마지막으로 안양사를 방문했다. 인적 없는 겨울 산사를 방문한 우리를 호랑이 조각상과 거북이 비석 받침 조각 그리고 거대한 불탑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아이는 ‘안양 예술공원’ 스탬프 투어 책자의 도장을 모두 찍어 완성했다. 스탬프 투어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하듯 하면서 지역을 알리는 특히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다.
내가 사는 지역 용인도 아이가 안 가본 곳들을 함께 둘러보았다. 먼저 등잔을 개인적으로 소장 보관 전시하고 있는 등잔박물관을 관람했다. 우리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의 당일 현장학습 장소로 자주 가는 곳이기도 해서 나도 개인적으로 어떤 곳인가 궁금하기도 했다. 규모는 생각했던 것보다 작은 느낌이었다. 많은 종류의 등잔을 볼 수 있었는데 아이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외부로 나와서 얼음이 언 연못에 돌을 던지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박물관 인근에는 정몽주 묘소가 있다. 지나가면서 몇 번 보았는데 이번에 안에 들어가 볼 기회가 되었다. 아이에게 정몽주 선생에 대한 대략적인 역사적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해줬는데 알아들었으려나 모르겠다. 묘소에는 주민 한두 명이 운동삼아 산책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묘소 터가 넓어서 아이랑 술래잡기하면서 조금 뛰어다녔다.
아이의 외할아버지께서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쪽에 볼일이 있으시다고 하셔서 차로 태워다 드리면서 아이와 인근에 있는 와우정사를 방문했다. 눈 온 뒤였지만 예년에 비해 춥지 않은 겨울 날씨를 기록하고 있어서 관람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누워있는 부처님상이나 머리만 조각된 부처님상 등 특색 있는 절의 모습에 아이도 신기해하는 눈치다. 코로나 사태 초창기였고 국내는 아직 관리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돌아오려고 할 때 보니 동남아 사람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와서 구경하려고 하고 있었다. 동남아 사람들에게 와우정사가 인기가 있는 관광코스인 것 같았다.
3월, 코로나 사태로 외식을 전혀 하지 않고 외부로 잘 나가지도 않고 집에만 있다가 인근에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면서 다녀올 만한 곳을 찾다가 설봉산성을 가보려고 내비게이션을 찍고 올라가는데 길이 이상했다. 비포장도로의 등산길처럼 바뀌었다. 그래서 설봉산성행은 포기하고 설봉공원과 인근에 있는 설봉서원 그리고 영월암을 다녀오게 되었다.
목적지는 영월암이었는데 지나가는 길에 설봉공원이 있어서 잠시 쉬어가게 되었다. 직장 연수가 있어서 이 공원은 방문한 적이 있어 눈에 익었다. 코로나 여파로 설봉공원 저수지를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우리는 코로나로 운영이 중단된 이천 시립 박물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주차장 바닥에 매트를 깔고 컵라면과 간식으로 간단히 요기하였다.
코로나로 인해 실내 모임이 줄어들자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야외로 나왔다. 설봉유원지 주변을 걸으며 운동하는 사람도 있고 공원 안에 작은 텐트를 치고 간단한 도시락을 먹으며 가족 단위로 나와서 아이들과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타는 가족도 있었다. 아이도 또래 아이와 함께 술래잡기하면서 놀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영월암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설봉서원이 나와서 차에서 내려 올라가 봤는데 코로나로 인해 임시 휴관 중이었다. 담장이 낮아서 담장을 돌아가며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담벼락에는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경축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경사가 차로 올라가기에는 아슬아슬한 지점에 도달했다. 다른 차가 내려오는 것을 보긴 했지만 안전을 위해 갓길 공터에 주차를 해두고 올라갔다. 걸어서 올라가는데 경사가 급했다. 올라가면서 보니 이천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힘들게 올라가 보니 평소 보던 절과는 또 다른 느낌의 절이 나타났다. 영월암이다.
지팡이가 은행나무로 자라났다는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우리를 맞이했다. 불당과 암자가 주산에 의지해 서 있었다. 암자 쪽으로 올라가니 바위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또 근처에는 3층 석탑이 고즈넉이 서 있다. 석탑 근처엔 웬 흰 토끼가 사람이 나타나도 놀라지 않고 놀고 있다. 절에서 기르는 토끼인 것 같다. 야생 토끼면 도망갔을 텐데 도망을 가지 않는다. 아이도 신기해하고 만지려는 것을 못 만지게 했다. 내려오면서 보니 검고 흰 얼룩의 고양이가 따뜻한 봄볕을 째고 쉬다가 우리가 오는 것 보고 자리를 옮긴다. 이천이라는 곳을 몇 번 지나치기만 하고 기회가 닿지 않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몇 군데 하루 여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도시가 친근해진 기분이다.
다음 날 이번엔 어디로 갈까 찾아보다가 안성에도 가볼 만한 곳이 꽤 있는 것 같아서 그곳으로 향했다. 이번엔 아이의 외삼촌과 동행했다. 출발 전 도시락으로 김밥을 사서 출발했다. 첫 목적지는 칠장사다. 안성에서 유명한 절인 듯싶다. 도착하니 넓은 대지에 편안하게 조성된 절이 보였다. 절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절이 역사가 오래된 듯 낡아 연륜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대웅전 근처의 석불입상도 보고 어사 박문수가 다녀갔다는 박문수길 근처도 가보았다. 칠장사를 내려와서 죽산리 오층 석탑을 보러 갔다. 오층 석탑은 길가에 있었는데 당간지주와 함께 있는 오층 석탑이 덩그러니 혼자 있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돌아가기 전 죽산 향교를 간단히 둘러보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