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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Oct 25. 2022

집 떠나면 개고생. 정신줄 컴백홈

[1분 인생 힌트] 집 떠나면 개고생. 정신줄 컴백홈


오늘 아침은 놀랄 정도로 머릿속이 고요했습니다. 할 일들에 마음이 바쁘지도 않고 하루를 시작하느라 괜한 열정에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차분하게 별 생각이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기분 오랜만인데? 


그렇게 고요함을 즐기다가 한 생각이 듭니다. 이 고요함 참 좋다. 이 고요함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저런. 벌써 글렀습니다. 고요함을 유지하다가 빠져 나왔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고요한 수면에 물결이 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에 관해서 글을 써야겠다는 착상이 듭니다. 


몹쓸. 

블로그 포스팅은 마음이 고요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이미 일렁인 물결, 그 마음이 떠든 이야기를 옮겨 적습니다. 



고요한 마음. 찾지 않으면 이미 있다.


요새 마음이 고요한 사람은 참 드뭅니다. 그런 사람이 주위에 많이 있다면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단 한 명만 있어도 행운입니다. 그냥 조용한 사람 말고요. 정신일도 하사불성으로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 말고요. 마음이 고요한 사람 말이지요. 달 밝은 밤에 기러기 지나가는 길을 그대로 담아주는 강 같은 사람, 주위에 있나요?  


마음이 고요할 때는 비교 대상이 사라집니다. 얼마나 고요한지도 측정할 수가 없습니다. 표현해 낼 언어도 없습니다. 생각이 자꾸만 사라지려고 하는데 그것을 담을 언어가 어디 있을까요? 생각이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아침 이슬처럼 말라 버립니다. 이런 판국에 언어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럴 때 언어는 참 귀찮고 성가시기만 한 존재입니다. 



어떻게 하면
고요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일생을 두고 궁금한 점이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제멋대로 왈가왈부하는 마음이 고요해질 때의 맑고 깨끗하고 투명한 정신 상태가 참으로 귀하기에 그 상태를 되찾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일견하게 되면 계속해서 그렇게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고 살고 싶어집니다. 


아 인생은 미스테리. 

그나마 살면서 이 미스테리를 약간은 풀게 됐습니다. 고요한 마음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고요해지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요해지려고 애쓰지 않고 쉴 때 고요함은 문득 찾아 옵니다. 고요함을 찾아 나서면 고요함을 그르치게 됩니다. 고요함을 찾겠다고 먼 여행길을 시작해보지만 고요함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정신적인 개고생 여행을 하다가 보면 정신은 혼탁해지기 그지 없습니다. 그래서 고요해지는 정답이 있다면 이상한 답이 한 가지 있습니다. 



생각을
생각하지 말자.



생각은 어차피 통제 불가능합니다. 마음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들쑤시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사실 생각은 아무 힘도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과 함께 놀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생각을 부여잡고 이 생각 저 생각 파생시키지 않으면 생각은 적당히 놀다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생각에 시비 걸고 저 생각에 딴지 걸다가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알고 보면 생각이 우리를 괴롭게 한 게 아니라 우리가 생각을 괴롭게 한 것도 모르고 말이지요. 생각이 내 마음을 들쑤신 게 아니라 내가 생각을 들쑤시다가 내 마음을 스스로 어지럽힌 것도 모르고요. 


집 떠나면 개고생인 것은 몸의 여행에서도 그렇고 마음의 여행에서도 그렇습니다. 개고생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을 굳이 사서 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집 떠나서 개고생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렇게 안락할 수가 없다는 점도 동일합니다. 몸의 여행이든 마음의 여행이든 우리는 잃어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닐까요? '고요함을 찾는 마음'을 놓아버리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납니다. 


정신줄 놓지 말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런데 정신줄을 놓아야만 할 때가 있으니 이미 내 정신이 혼탁하고 혼란스러울 때입니다. 동분서주하는 마음으로는 고요함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동분서주하는 마음이 가라앉으면 문득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고요함이지요. 찾으려고 하지 않을 때 찾아지는 것. 참 묘한 보물찾기입니다. 



정신줄
컴백홈



오늘 아침 고요함을 되찾기 위한 방법을 떠올리다가 혼자 생각의 늪에 빠지기 시작한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방법을 떠올릴수록 마음이 급해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법을 찾으려고 할수록 휘저어지는 마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고요함은 아무 뜻 없이 찾아왔듯이 아무 뜻이 없을 때나 유지된다는 것을 그제서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 때 다시 서광이 비추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뒷통수를 누가 때리기라도 한 듯 다시 생각이 조각났습니다. 생각이 큰 바다의 포말처럼 부서지기 시작했습니다. 돌격 앞으로, 준비가 다 됐던 정신줄이 맥이 풀렸습니다. 진귀한 것을 찾겠다고 카우보이 말처럼 날뛰는 정신줄에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  


네가 찾는 것은 밖에 없다. 집 안에 이미 있다. 떠나면 길이 더욱 멀고 복잡해질 뿐이다. 들어와 앉아라. 나랑 차 한 잔이나 하자. 


참으로 감사한 고요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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