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하지 못한, 우리의 영원한 우정

by 나무둘

인생에 영원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영원하자는 약속을 곧잘 합니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우정’은 참 흔하디흔한 표현이라서 입에 쉽게 달라붙는 말이지요. 또 그렇게 자주 쓰이는 만큼 ‘영원한’이라는 수식이 붙은 것들은 결국은 닿을 수 없는 무언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와 함께 영원한 우정을 약속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에는 무슨 감수성이 풍부했는지 특별한 날도 아닌데 가끔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말미에는 늘 이런 표현이 들어갔지요. ‘우리의 우정 영원하자. 너의 소중한 친구 개똥이가’ 그랬던 우리 사이였는데 제가 이사를 가면서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됐습니다. 이사를 가서도 드문드문 오가던 편지는 이내 끊기게 되었지요. 그 뒤 서로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른 채 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는 대학교에 가서 우연찮게 그 친구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영원한 우정의 약속을 기억하던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직접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만난 우리는 잠깐의 반가움 뒤에 찾아오는 어색함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십년 여 만에 만난 남자 둘이 잠시 회포를 푼 뒤에 대낮에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까요? 그 때 그 시절 자주 남발했던 영원한 우정의 약속을 친구도 나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우리는 차마 그런 이야기는 입에 올릴 수 없었습니다.


손짓에 여성스러운 면이 묻어나던 앳된 얼굴의 20대 초반 남성 선남 씨가 대학교 상담센터를 찾아온 것은 친구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었습니다. 영원한 우정을 약속했던 친구가 그의 모든 연락을 차단하자 분노와 배신감에 오락가락한 기분을 주체하지 못해 상담실에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선남 씨와 그의 친구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마침 키도 비슷하고 여성스러운 섬세함을 닮은 둘은 곧 친구가 되었지요. 서로 친해지면서 선남 씨는 친구의 경제적 사정이 상당히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남 씨는 고시원에 살고 있던 친구에게 먼저 자기 원룸에서 같이 살자는 제안을 했고 둘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마음씨 착한 선남 씨는 같이 살면서도 친구가 밥을 굶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것을 비롯해서 친구를 이모저모 살뜰히 챙겼습니다. 둘은 서로를 소울메이트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그랬던 둘 사이가 친구의 형편이 풀리면서 소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안 사정이 조금 나아지고 장학금을 받으면서 친구는 기숙사로 들어갔습니다. 선남 씨는 서운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친구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선남 씨는 알 수 없는 질투심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선남 씨는 자기가 먹여주고 재워줬던 시절이 생각나면서 친구를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녁 시간에 괜히 더 자주 만나자고 연락을 했고, 급기야는 친구의 SNS 계정을 보고 미리 친구 커플의 데이트 장소 근처에 가서 주변을 배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이면 자기가 예전에 어떻게 친구를 챙겨줬는지 SNS를 통해 문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그 쯤 되니 자기도 자기 행동이 이해가 안 되어 상담센터까지 찾아온 것이지요.


선남 씨가 매 상담시간마다 힘주어 하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친구를 잘 챙겨줬는지에 대해 반복해서 말을 했습니다. 지겨울 법도 한데 매 회기 자기가 친구에게 잘했던 일화들을 새로 소개하면서 자기의 억울함을 강조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이렇게 묻는 그에게 처음부터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무의식의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상담자가 그의 편을 들고 억울함에 동조해주기를 바랬던 것이지요. 그래서 더욱 담담히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담자가 억울함을 쏟아내는 그를 고요히 바라보고 들어주다 보니 차츰 자기 과업을 자랑하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그 후 한참 동안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꽤나 지루한 날들이 지난 뒤, 그 자신도 적이나 민망했던 걸까요? 가끔씩 침묵을 지키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침묵하는 그를 바라보면서 그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그의 침묵이 깊어질 때를 기다려 그에게 물었습니다.

“배신감과 분노를 껴안고 사는 게 어떤 느낌인가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침묵은 더 길게 이어졌습니다. 사실 상담을 시작한지 넉 달도 지난 그 즈음에는 그 자신도 알고 있을 터였습니다. 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과 배신감과 분노를 껴안고 사는 동안 자기 자신이 가장 힘들다는 것을 그의 내면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변화는 강요할 수 없는 것이기에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침묵 속에 숙성된 자기를 향한 의문은 내부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문득 터져 나오는 법입니다. 어느 날 그가 침묵 끝에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선생님의 침묵이 저를 비난하는 것 같았어요. 제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다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상담을 그만두어야겠다고도 생각했어요.”

그의 날카로운 지적에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시작됐구나. 변화가 이미 시작됐구나.

“아시겠지만 친구가 돌아오기만을 바랬어요. 돌아와서 사과를 하고 제가 그동안 쏟아 부은 정성과 시간에 대해 고맙다고 해주기를 바랬어요.”


그의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울지 않으려 애쓰는 그에게 울어도 된다고 하자 그는 소리 내어 흐느꼈습니다. 한참을 티슈만 손에 꼭 쥐고 울던 그에게 누가 누구에게 사과하길 바라냐고 물었습니다. 잠시 멈칫하던 그가 상담자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제가 먼저 저 자신에게요. 너무 비겁했어요. 그리고 준비가 되면 친구한테도 사과를 해야겠어요. 이런 저를 참을 수 없어서 친구에게 필요 이상으로 화가 나고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는 할 일이 있어서 상담을 잠시 쉬어야겠다고 말하며 그 상담 회기를 마쳤습니다. 3주 뒤에 그가 다시 찾아와서 이야기했습니다.

“친구에게 사과했어요. 그리고 취미를 시작할 거예요. 뭔지 맞춰 보실래요?”


몇 차례 정답을 못 맞추자 여태 자기를 모르냐는 핀잔을 주면서 꽃꽂이를 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몇 달을 친구에 대한 생각과 감정에 꽂혀서 자기 삶을 못살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궁금해졌습니다. 왜 많은 취미 중에 하필 꽃꽂이를 골랐냐고 묻자 그가 전에 없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더 이상 저에게 비겁하고 싶지 않아요. 꼿꼿하게 살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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