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하지 못한, 우리의 영원한 우정
선생님 안녕하세요.
정말 타이밍이 기가 막히네요.
딱 인사드리러 가고 싶었는데 편지가 도착했어요.
먼저 안부 물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잘 지내시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상담 종결할 때 쯤 배운다고 했던 꽃꽂이도 여전히 하고 있고요.
꽃꽂이가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꽃을 만지며 저만의 감수성을 정당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참 좋아요.
사회에서는 남자라고 여성적인 면을 괜히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꽃꽂이를 하면 그런 것에서 조금 해방되고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다음에 찾아가면 싱싱한 화분 하나 선물로 드릴게요.
사실 상담 선생님이 정말 밉기도 했어요.
선생님이 저도 몰랐던 저의 모순된 점을 들추었잖아요.
아니 들추었다기보다는 밝게 비추어주셨다는 말이 맞겠네요.
어둠에 밝게 들이친 빛에 놀라서 어둠 속에 계속 숨고 싶었던 것 같아요.
상담에 처음 갔을 때는 상담이 그런 결말을 맞이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위로 받고 나의 억울함이 풀릴 줄 알았는데 점점 더 명확해졌던 건 이 모든 감정 뒤에 나의 왜곡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었잖아요!
애초에 상담이 그런 건 줄 알았다면 시작을 안 했을 거예요 ㅎㅎ
그랬다면 계속 어둠 속을 헤맸겠지만.
선생님이 어둠에 갇혀 있으려는 저에게 차분하고도 끈질기게 제 안에 조명을 비추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어렴풋이 알던 것을 선생님이 계속 한 걸음씩 비춰주어서 결국 뚜렷이 알게 됐던 거예요.
그래서 참 미웠답니다.
그리고 감사했어요.
얼마나 나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계속 살면서 친구 탓만 하면서 친구를 괴롭혔을까.
상담 덕분에 친구와도 다시 연결이 되고 저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어요.
상담이 아니었다면 친구가 사과할 때까지 끝내 마음을 풀지 않다가 관계가 끊겼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친구랑은 잘 지내고 있어요.
한 차례 갈등을 제대로 겪어서 그런지 비온 뒤에 땅이 굳건해지는 것처럼 서로 언제라도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확신이 있어요.
가끔 술 한 잔 할 때면 친구가 그때 일을 가지고 놀리기도 하는데 내 사랑이 부담스러우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웃어 넘겨요.
물론 둘이 술 마실 때만 그런 얘기를 해요.
그리고 그럴 때는 꼭 친구가 술값을 내더라고요. ㅎㅎ
상담은 저에게 왜곡된 완고함이 아니라 선생님이 편지에 적어주신 대로 제 마음의 중심을 세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비록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어요.
앞으로도 제 인생에 기억이 많이 남을 거 같아요.
당부하신 대로 꽃꽂이하며 내 마음도 꼿꼿이 세우며 살 거예요.
예리하지만 따뜻했던 상담, 참 감사했습니다.
줄기가 잘 서 있는 꽃 화분 들고 한번 찾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