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에 오는 분들은 대개 착합니다. 그리고 두말할 나위 없이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이지요. 착해서 억울할 일에도 자기 할 말을 하지 못하고 혼자 속 끓이다가 심리상담을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직장 내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기 쉽습니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하니 직장에 계속 다녀야 하는데, 직장 상사는 내 보고서를 매번 반려하고 업무 태도를 비롯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면 어떨까요?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꽤나 숨 막히는 일상이 될 것입니다.
30대 초반의 남성 우진 씨는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하면서 사내상담실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표정에서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간신히 누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누군가 건들면 분노를 터뜨린 뒤에 오열을 할 것 같은 태세였지요. 처음부터 ‘자살충동’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의 낯빛은 어두웠습니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아무리 상담실에서는 좀 더 자주 쓰인다고 해도 상담실의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히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우진 씨는 상사가 괴롭혀서 힘든데 어찌할 방법을 못 찾겠다고 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사회초년생인 자기가 업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매일 밤 열 시, 열한 시까지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 일을 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야근을 해도 소화해낼 수 없는 업무와 계속되는 상사의 질책에 자존감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전에 상사가 그의 보고서를 보고 토씨 하나까지 지적하고 나면 점심식사도 굶고 그 보고서를 다시 수정했습니다. 우진 씨는 야근이 계속되면서 피곤에 지쳤고 잔실수도 늘어나게 됐습니다. 상사는 그가 열심히 써 간 보고서를 휙 훑어보고는 양식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며 책상 위에 내던지기도 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뒷구멍으로 들어왔냐. 승진은 운빨이었냐.’는 모욕적인 소리를 하면서 말이지요. 어느 날은 우진 씨가 너무 힘들다는 표현을 겨우 내뱉자 상사는 오히려 ‘이 정도로 힘들면 그만두는 게 맞다.’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사무실을 오가며 마주칠 때마다 상사의 비아냥은 날로 심해졌습니다.
언어를 쓰는 인간은 보통의 동물들이라면 받지 않을 스트레스까지 짊어지고 삽니다. 말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좌절감을 유발하는 정도를 넘어서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한 존재를 완전히 말로 짓밟는 행위는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대에게 대항해서는 안 되고 분노를 느끼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이 조직 문화로 인정받는 것은 인간세상에서만 가능합니다. 억지로 감금된 분노를 기어이 표출하지 못해 도리어 자기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품을 수 있는 것도 고등동물인 인간이기에 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분노에 대한 절망감은 무기력으로, 인생에 대한 회의감으로 변질됐습니다. 온갖 노력을 쏟아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고 이제는 상사가 너무 쉽게 인격모독적인 말을 내뱉는 지경에 이르자 그는 자기가 회사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의심하게 됐습니다. 그 의심은 한 사회인으로서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심을 거쳐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심으로까지 깊어졌습니다.
우진 씨가 상담을 찾아온 시점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죽을 준비를 하고 죽을 장소까지 한 번 물색을 한 뒤에 마지막으로 자기 생각을 검증하려고 상담실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존재할 가치가 진정 없는 것인지 확인하러 온 것이었지요. 상담자가 그의 생각이 타당하다고 인정해주면 주저 없이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당시 상담자는 이런 그의 속내도 모르고 ‘존재 가치가 없는 인간은 없다.’는 명백한 신념 하나로 그가 인정받으려 했던 생각을 철저히 부정했습니다. 그는 다소 끈질기게 자기가 죽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담자를 시험했지만 갈수록 그의 주장은 맥이 빠졌습니다. 팽팽했던 둘의 줄다리기 싸움이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그가 표현하기를 ‘칠흑 같이 어두운 동굴 속에 오랫동안 혼자 있었는데 촛불 하나가 켜진’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자기를 죽여서라도 존재 가치를 찾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처음에는 상담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반박을 하려고 하다가 그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터질 것 같은 울음을 끝내 울지는 않았지만 강고했던 자살생각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그는 온몸의 떨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지금의 그 떨림은 어떤 감정을 싣고 있느냐는 상담자의 질문에 살의에 가까운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신체 감각을 안전하게 표출하는 작업을 하며 상담시간의 대부분이 흘렀습니다. 그는 상담시간 막바지에 자기 존재 가치에 의문을 품었던 것에 의문이 든다고 하며 살짝 희망을 내비쳤습니다.
이후 두 달여 간 우리는 자살 생각으로까지 몰아간, 그가 느꼈던 모멸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해 나갔습니다. 그가 격렬했던 감정을 추스르는 데는 행운도 따랐습니다. 우연찮게도 상담을 받는 기간 동안 사내 감사가 진행됐고, 우진 씨의 상사는 전부터 했던 부정행위가 발각되어 한 달 간 정직 후에 타부서로 이동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겠다며 상담을 종결한 그 다음 주, 그는 상담자가 없는 틈에 작은 선인장 화분을 상담실에 놓고 갔습니다. 화분에 꽂힌 작은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짧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다가, 언젠가는 전달할 기회가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상담노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실 우진 씨의 무의식은 자신을 살리려고 상담실을 찾아 온 것이겠지요. 자신이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분명히 믿기에 상담실까지 발걸음을 했을 테지요. 앞으로도 그러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