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충동도 죽일 수 없는 무의식의 생의 의지
안녕하세요 우진 씨.
잘 지내셨나요? 처음 만난 날 우진 씨의 안색과 표정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채색의 긴 코트를 입고 어정쩡하게 서서 이곳이 상담실이냐고 물으셨지요. 번지수를 잘못 짚고 엉뚱한 곳에 찾아왔다는 듯 난처해보였습니다. 그때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런 곳까지 오다니. 이제 뭘 어쩌지?’ 센 불에 데고 조금 식기 시작한 토기마냥 얼굴은 검붉은 흙빛을 띄고 있었습니다.
우진 씨를 그렇게 달군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렇게 식히는 힘은 무엇일까. 젖 먹던 힘까지 써서 내면의 무언가를 모질게 다스리려 하고 있는 듯한 느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안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게 온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살집 좋고 단단한 몸에는 무언가 똘똘 뭉쳐 있는 듯 보였습니다.
상담 접수지를 받고 머뭇거리던 우진 씨. 잠시 펜을 만지작거리더니 큰 글씨로 곧장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쓰셨지요. 자살 충동. 다른 일상적인 공간에 비해 상담실에서는 비교적 흔한 말. 상담실에서 발설되면 어쩌면 그렇게까지 놀랍지는 않은 단어. 그럼에도 여전히 일순간에 공기를 후끈하게 데우는 그 단어는 아무리 가볍게 내뱉더라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진 씨의 안색과 표정, 온몸으로 표현된 것들이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진 씨를 자살 충동으로까지 몰고 갔던 것은 막된 상사 때문이었지요. 애써 작성한 보고서를 내던지는 것을 비롯해 상사의 모욕적인 언행을 오랫동안 참으셨지요. 요새처럼 갑질 문화가 이슈가 되는 때였다면 당장이라도 분리 조치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사의 태도. 회사를 뒷구멍으로 들어왔냐는 등 인격모독적인 이야기. 상대로 하여금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경멸스러운 눈빛. 온갖 꼬투리를 잡히는 바람에 보완하고 수정하느라 매일같이 해야 했던 반강제적인 야근. 누적된 피로로 실수를 하고 다시 상사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던 악순환. 그러고도 매일 얼굴을 마주보고 고개를 숙여야 했던 모멸감.
모멸감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인간이기에 행할 수 있는 모욕이지요. 조직생활을 하면서 그 모욕을 받아 삼켜 내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지만 과연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것. 모멸감은 인간만이 느끼는 지극히 인간적이지 않은 감정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직문화를 진단하고 개선점을 제안하는 업무를 하면서도 내 조직과 내 삶에 대해서는 아무 제안도 할 수 없는 역설 속에서 모멸감은 날로 커졌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런 모멸감에 맞서 계속 어떻게 버티셨나 싶습니다.
사연을 들으면서 우진 씨가 버틸 만큼 버티다가 그로기 상태에 빠져 겨우 한두 발 움직이며 상담실까지 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강력한 연타를 맞은 권투선수가 마지막으로 흰 수건을 던지기 전에 상대를 잡고 늘어지며 뜨거운 숨을 내쉬는 듯한 장면. 이미 승패가 결정나버린 듯한 게임에서 최후의 포기에 거의 다다른 선수. 차곡차곡 쌓인 내상을 숨길 내적 공간이 더는 없었나 봅니다. 심리상담과는 무관해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숨이 막힐 지경이 돼서 상담실에 찾아왔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위해서 찾아온 상담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때 이미 죽을 준비를 마치셨다는 것이었지요. 마음을 굳게 먹고 단지 자살의 타당성을 검증 받으러 상담실을 찾아왔을 뿐이었지요. 상담자가 자살을 승인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논박을 벌이던 우진 씨. 그 마음으로 거칠게 내세우던 자살의 타당성에 대한 주장. 드센 마지막 발악으로 상대에게 기어이 어퍼컷을 맞고 게임을 서둘러 끝내고 싶은 충동. 이제 그만 링 위에서 내려와도 좋다는 공식적인 허락 사인을 구하면서 상담실을 찾아오셨지요.
하지만 또한 알고 계셨죠? 그때 이미 굳은 결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사실은 자살을 승인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살 의지가 꺾이길 바랐던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계셨을 겁니다.
겉마음 이면에는 다른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쌓인 감정을 받아줄 상대가 있다면 그 상대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지요. 정말 내 삶이 살 가치가 없는 것이냐고 말이지요. 진심은 그런 것이었기에 상담자와의 논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저절로 맥이 빠져버렸습니다. 대화의 첫 부분에서 자살의 타당성은 이미 시험당하고 있었습니다. 자살의 타당성을 검증 받을 생각을 했던 것. 그 자체로 죽겠다는 결심을 마친 의식과는 달리 무의식은 기필코 살겠다고 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살 충동이 누그러지면서 드러난 것은 엄청난 분노였지요. 상사를 대신해서 상담자에게 쏟아내던 분노. 그 분노 속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충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굳이 상담실에 찾아와서 상담사에게 다짜고짜 싸움을 걸듯이 자기 생각을 토론하던 것은 사실 상사와는 눈곱만큼도 하지 못했던 분풀이를 대신하는 것이었지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다른 말이었겠지만 당장의 마음의 화법으로는 그동안 쌓인 분노를 그렇게 터뜨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이해했습니다.
살의에 가깝다는 우진 씨의 분노를 들으며 그런 심리적 지경에 몰리기 전에 곁에 누군가 있었더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말상대. 지금의 내 기분을 있는 그대로 들어줄 상대.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는 한 사람. 우진 씨도 그런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지요.
두 달여 함께 했던 상담 말미에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제가 그랬지요. 조직이 바뀌어야 하는데 근본적인 도움이 못되고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그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니에요. 누군가에게는 이게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우리의 상담에는 운도 따랐지요. 그 막된 상사가 본인이 저질렀던 부정행위가 발각되어 정직 후 부서 이동을 하게 되면서 상황이 갑자기 좋아졌으니까요. 그래도 그 전에 이미 우진 씨 자신의 마음이 살아나고 있는 것을 느끼고 계셨지요? 그 운을 불러온 것도 살아난 우진 씨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바꾼 건 소생한 마음, 상담실까지 발걸음을 하게 한 생의 의지였습니다.
알고 있었던 사실을 우진 씨와의 상담을 통해 더 깊이 깨닫게 됐습니다.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것도 바뀔 수 있으며 마음이 바뀌면 현실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죽음 같은 시간에도 포기하지 않으면 빛이 들고 생명의 기운이 솟는다는 것을.
나중에 자기가 직접 구은 화분이라며 작은 선인장을 상담실에 몰래 놓고 가셨지요. 단단히 구워진 붉은 흙빛 화분의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인장과 메시지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죽음의 충동과 그 충동마저 이긴 생의 의지를 대변하는 듯합니다. 편지를 마무리하며 지금도 선인장은 잘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참 상담 종결 후 오래지 않아 사내 커플로 결혼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두 분 사랑의 관계 안에서 잔잔히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
▼ 우진 씨와의 상담 사례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