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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Oct 26. 2022

성공과 실패는 사후해석의 차이

누리호 로켓 발사

[1분 인생 힌트] 성공과 실패는 사후해석의 차이 (누리호 로켓 발사)


어제 누리호가 우주를 향해 날아갔습니다.(글 작성 시점 2021. 10. 22.) 발사 전부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7번째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이라는 기대감이 섞인 시선이 있었습니다. 발사장면을 잘 보기 위해서 몇몇 사람들은 가족을 다 데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을 귀퉁이에 모여들기도 했답니다. 


5시 이후에 언론을 살펴보니 발사 성공 뉴스가 나오더군요. 마치 올림픽 때 자국을 응원하듯이 갑자기 들뜬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누리호 로켓 발사가 언제인지도 정확히 몰랐는데 괜히 이럴 때면 애국심이 생기나 봅니다. 


2단, 3단 분리 등 차례차례 성공 소식이 전해지다가 한참 뒤에 700km 상공까지 잘 날아간 로켓이 모형 위성을 안착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뉴스가 뜨더군요. 그때부터 재미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언론사마다 각기 다른 제목을 뽑더라고요. 잠시 갸우뚱했습니다. 성공으로 마무리 짓는 뉴스 제목이 있는가 하면 최종 실패로 못 박은 뉴스 제목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성공인가 실패인가? 


성공과 실패는 어떻게 갈리는 걸까요? 누리호 로켓 발사 이후의 언론 반응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태어난 것이 성공, 죽는 것이 실패가 아니듯이


실패를 바라 마지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성공을 원하지요. 그래서 성공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성공하기 위해서 안달입니다. 대놓고 성공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당장 내 수입이 줄 기미가 보이면 민감하게 굽니다. 당연하겠지요. 내 손해를 허허거리며 웃어 넘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거머쥐려는 성공. 잡고 놓지 않으려는 성공. 성공은 실패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누리호 로켓 발사는 성공한 것일까요? 실패한 것일까요? 절반의 성공일까요? 절반의 실패일까요? 


700km까지 쏘아 올린 것으로 치자면 성공입니다. 모형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지 못한 것으로 치자면 실패입니다. 어디까지는 성공이고 어디까지는 실패입니다. 사실상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고 최종 실패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성공의 첫 단추를 잘 꿰었다고 할 수도 있고 미완의 과제를 남겼다고도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됩니다. 성공에 주목하면 그것은 성공이 되는 것이고 실패에 주목하면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현상만 놓고서 성공을 했다거나 실패를 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현상에는 성공이라는 딱지도 실패라는 낙인도 안 붙어 있습니다. 그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 성공이나 실패로 명명하는 것이지요. 


시험에 떨어지면 명백히 실패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시험에 떨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시험에 떨어지는 것이 성공입니다. 이런 해괴한 경우가 어디 있겠냐고 하겠지만 정말 시험에 떨어지길 의도하는 사람도 있으며 이번 시험에서는 떨어지는 게 유리한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로 운동경기의 조별 리그의 경우에서는 그다음 시합의 유리함을 가져가기 위해 일부러 이번 시합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지려는 경우도 생기지요. 


성공과 실패는 객관적이지 않은 사후 해석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어느 한 쪽으로 명명하면 그렇게 확정되어 버립니다. 그 점이 아주 흥미로운 지점이고 그래서 우리는 이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개인의 삶에서 성공과 실패를 규정지을 바에는 성공으로 규정짓는 것이 나에게 여러모로 이득입니다. 어떤 경험을 한 뒤에는 늘 성공의 프리즘을 들이대서 성공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나에게 그 경험은 성공으로 남습니다. 그 기억을 떠올릴 때 적어도 실패의 쓰라림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내 기억 속에서는 성공의 즐거움을 느끼며 지금 당장 근육에 힘이 들어가며 희망과 의욕이 솟게 됩니다. 



나름 괜찮게 살았네!
앞으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까지의 삶이 어떻든 내가 떠올리는 기억은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 봅시다. 우리는 어차피 왜곡되고 편집될 수밖에 없는 기억의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뇌는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먼저 나서서 못나고 바보 같았던 기억으로 편집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그 와중에도 잘한 부분이 있고 성공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부분에 확대경을 들이대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내 기억에 남긴다면 허구한 날 불현듯 생각난 과거의 기억에 이불킥을 하던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제 긍정 확대경의 필요성을 조금 느꼈다면, 아예 스케일을 좀 더 키워 봅니다. 잠시 700km 상공에서 나를 바라봅니다. 무엇이 보이나요? 내가 잘 보이나요? 잘났든 못났든 성공한 것이든 실패한 것이든 나의 과거는 어디에 있나요? 내 삶은 성공일까요? 실패일까요? 


지금까지 성공했든지 실패했든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가 사후에 붙인 꼬리표요, 아직 다 살아보지 않았기에 성공이다 실패다 규정할 수도 없습니다. 성공이라고 해도 채색된 기억이겠지만 혹시 실패라고 생각했다면 더욱더 큰 착각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공도 실패도 아닌 언제나 삶이라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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