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겸손한 사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내 편도 됐다가 남 편도 되는, 언제 어느 편이 될지 모르는 사람이 자기 자신입니다.
심리상담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책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외부 환경이나 사람이 힘들어서 시작되었던 문제는 죄책감, 자책으로 이어지면서 자기 비난을 일상적으로 하기에 이릅니다. 자기 비난을 상시로 하게 되면 자기가 자기를 괴롭히는 줄도 모르게 됩니다. 그러고는 반문합니다.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지?
모든 심리적인 문제는 자기를 못살게 구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인 나를 내 편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이 문제를 살펴 봅니다.
블로그에서 줄곧 이야기한 바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안아주세요.'입니다. 심리적인 문제는 사실 별거 없습니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보는지 못 보는지, 내가 나를 안아주는지 저리 가라고 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 안아주면 마음의 상처도 쉽게 사라질 것이고,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안아주지도 않으면 마음의 상처는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위로는 밖에서 구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위로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다닐 수 있지만 진정한 위로는 안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내가 나로부터 승인한 위로. 내가 나에게서 직접 길어 올리는 위로. 그 위로가 없으면 밖에서 위로가 한 양동이 퍼부어진다고 해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습니다. 위로받기 위해 찾은 심리상담조차 위로의 근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심리상담은 로켓의 하단부가 부스터 역할을 하다가 버려지듯이 그 정도 선에 머무는 것이 이치에 합당합니다.
내가 나의 편이 되지 않으면 외부의 도움은 큰 소용이 없습니다. 외부의 도움이 온다고 해도 내가 나의 편에 서서 그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내 편이 아닌 나는 외부의 친절과 호의를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런 걸 받을 자격이 없어, 하면서 말이지요. 내가 나의 편에 선다는 것. 내가 내 편이 되는 것은 그리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 편이 되기 위해서 할 일 중 하나는 흔히 말하는 자기 사랑 메시지를 따라하는 것입니다.
우쭈쭈.
그래 그래.
좋아 좋아.
괜찮아.
좋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이미 해보신 분들을 아시겠지만 이렇게 한다고 해서 자기 비하가 잘 멈추어지지는 않습니다.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위의 약발은 얼마 지속되지 않습니다. 마치 자양강장제를 마신 듯 기분이 솟아올랐다가 고꾸라집니다. 고꾸라지고 나면 낙차가 너무 커서 기분이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작용도 없이 내가 내 편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보조를 맞추어 주어야 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 이름도 담백한 '겸손'. 겸손이 친구가 되지 않으면 내가 진정으로 내 편이 되기는 참 어렵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요새 세상이 죄다 '나 잘났다' 떠드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나 잘났다'를 지향하고 부양하고 권장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이런 떠들썩함에 물들게 되면 내가 잘나지 않고는 존재 가치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방금, 바로 앞 문장을 읽으면서 섬뜩한 느낌이 들지 않았나요? 잘나야만 내가 존재할 자격이 있는 것 같은 느낌. 참으로 무시무시한 세상입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은 대체로 2가지로 반응합니다. 아무리 봐도 잘날 가망이 없구나, 이생망이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가즈아, 뿜뿜 이렇게 완벽한 나를 보세요.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두 가지 방법 모두 목이 말라서 바닷물을 들이키는 격입니다. 첫 번째는 말할 것도 없고 두 번째도 첫 번째를 우회했을 뿐, 곧 첫 번째를 오가게 되는 것이 대체로 수순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어딘가 괴팍해지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겸손이 대두됩니다. 이 희한한 세상에서 물들지 않고 나를 지키고 살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안 되는 것을 나에게 강요하지 말고,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입니다.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성급하게 들이켜면 목이 더 마르지요. 나를 과장하거나 잘나 보이려고 애쓰는 것, 때로는 지나치게 노력을 하는 것도 바닷물을 들이키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내가 지닌 것은 이것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갈급하게 무언가 채우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의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이 인정이 되니 채울 것이 없습니다.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삶이란 원래 그렇고 그런 부분이 있다는 것을 수용하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자라서 이런 모양 이런 꼴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물론 나 자신과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참 평화롭겠지요.
부족한 내 모습을 받아들여 부족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 지금 이대로 나 자신이 참 괜찮은 존재로 느껴지는 것. 이것이 겸손이 감추고 있는 매력입니다. 꾸준히 노력해서 점점 더 멋진 나를 만나는 즐거움은 있어도 나의 못남을 채워야 하는 다급함은 사라집니다. 기분이 이러니 더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면서 실제로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누립니다. 겸손한 터라 이미 마음이 안정적인데 더욱더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