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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둘 Oct 27. 2022

상담사의 거울보기 (신수와 혜능, 간디의 시계)

[1분 인생 힌트] 상담사의 거울보기 (신수와 혜능, 간디의 시계)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봅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거울을 보게 됩니다. 겉모습이 멀쩡한지 확인하게 해주는 거울. 거울을 보면 오늘 내 모습이 어떤지 컨디션이 어떤지 보입니다. 


매일 아침 나는 거울을 보지만 거울도 나를 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만약 보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매일 아침 얼굴을 들이미는 이 사내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나도 예쁘지 않고 추하고 게슴츠레할 때에도 사심없이 나를 비추어 주는 거울. 


거울을 보다가 생각합니다. 거울은 거울의 존재를 알까? 나무둘스러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거울아 거울아, 나를 보여다오.


오늘 내 거울은 깨끗한가요?


거울은 세상을 참 사랑합니다. 세상 무엇이 자기 시야에 들어와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줍니다. 예쁜 것을 예쁘다고도 하지 않고 못 생긴 것을 못 생겼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눈꼽 낀 눈을 들이밀면 눈꼽 낀 눈을 그대로 보여주고 코딱지 있는 콧구멍을 들이밀면 코딱지 있는 콧구멍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아무말도 없이 그대로 보여 줍니다. 거울은 아주 사실적인 친구입니다. 


거울은 세상을 참 사랑합니다. 아무리 추한 몰골로 거울을 만나러 가도 거절하는 법이 없습니다. 언제 가도 나에게 나를 보여줄 뿐입니다. 잘났다 못났다 일언반구 덧붙이지 않고 나를 지금 모양 그대로 보여 줍니다. 사람들처럼 예쁘다고 '이야~ 정말 예쁘다~~'하면서 호들갑 떨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데 '예쁘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지도 않고 못났는데 차마 말 못해서 '흠흠'거리며 대충 무마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거울은 세상을 참 사랑합니다. 아무도 찾지 않을 때에도 거울은 누군가 나타날 때까지 그저 기다립니다. 거울에게는 비출 때에나 비추지 않을 때에나 한결 같은 노스탤지어가 있습니다. 누군가 와서 모습을 드러내고 마음을 보여주면 얼마든지 응하다가도 언제 왔었냐는 듯 사라지더라도 아쉬워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거울은 지극한 사랑으로 누가 오든 오지 않든 언제나 세상을 비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불교의 전설적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일자무식 혜능과 엘리트 신수의 한 판 겨루기. 법맥을 누가 이을 것인가 정하기 위해 스승이 제자들에게 자기의 깨달음을 글로 적어보라고 했다지요. 제자들 중 전교 1등 격이었던 신수가 마음을 거울처럼 매일 깨끗이 닦아야 한다고 글을 적었답니다. 그러자 신수의 글을 읽은 많은 학승들이 '역시, 신수!'하면서 감탄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일자무식 혜능은 글을 적을 줄 몰라 주위 동료에게 부탁해서 이딴 소리를 남겼다고 하지요. '마음이 어디 있느냐? 없는 것을 닦을 것은 무엇이냐?' 무식하면 별소리를 다합니다. 그래서 일자무식은 육조 혜능이 되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 


거울은 나를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가 어떤 모습과 상태인지 알려 줍니다. 하지만 그보다 멋진 거울의 매력은 그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데에 있습니다. 자기를 의식하지 않기에 세상 무엇이 와도 비추어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이런 존재고 이런 쓸모가 있고 이런 역할을 하고 이런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나는 소중하다!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없는 존재.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존재가 거울입니다. 거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 텅 비움으로써 만인을 포용할 덕을 갖춥니다. 실제로 만인이 거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매일 거울을 만나러 거울 앞에 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사랑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많은 말이 필요할 수도 있고 별 말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습니다. 간디의 경우는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간디는 아주 검소하게 살면서도 그 와중에 커다란 회중시계를 가지고 다녔다고 하지요. 사회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다보니 무척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고 그래서 간디에게 시간은 금이었습니다. 약속시간에 늦은 상대에게 간디는 아무말 없이 커다란 회중시계를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했던 것이지요. 


세상은 언제나 우리를 보여 줍니다. 간디의 회중시계처럼 내 모습을 알려주기도 하고, 신수의 거울처럼 나를 비추어주기도 합니다. 우리 눈이 맑게 닦인 거울 같을 때에는 세상의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회중시계가 아무말 없이 나의 정곡을 찌르듯이. 거울이 아무말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듯이. 


더 나아가서 투명해질 대로 투명해지면 세상은 나를 반영하지 않기도 합니다. 거울 앞에 섰는데 그 사람이 투명인간이라면? 세상은 비추어 돌려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반사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존재. 거울보다 더욱 거울 같아진 존재. 오히려 거울을 비추어 줄 수 있는 존재. 그렇게 된다면 거울이 드디어 진정한 사람을 만났다고 탄복할지 모릅니다. 수많은 세월 당신 같은 사람을 기다려 왔다고. 


내 마음이 '나'로 가득 차 있지 않을 때 우리는 세상이 곧 '나'를 보여 준다는 것을  쉽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을 때에는 세상도 나에게 보여줄 것이 없어집니다. 내 마음이 가라앉다 못해 사라지면 세상이 나를 비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비춥니다.  


오늘 내 거울은 깨끗한가요? 

내 마음이 무엇으로 차 있는지 바라봅니다. 나를 얼마나 의식하고 사는지 돌아봅니다. 오늘은 내가 나의 거울로 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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