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몸살 나서 좋아요.

by 나무둘

몸살이 났습니다.

엄청나게 빡세게 살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한 대가인 것 같습니다.

기어이 몸이 탈이 났습니다.


몸살이 나서 하루 종일 잤습니다.

자고 또 자고.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자고.

이렇게 잔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정말 끝없이 잘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원래는 이렇게 심하게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데, 웬걸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계속 자고 또 자면서 그때 알았습니다.

아 내 몸이 이 정도의 휴식을 필요로 했구나.


휴식하지 않는 인간.

그건 참으로 쓸모없는 인간입니다.

그릇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고 합니다.

비어 있지 않고 쓸모를 다하겠다고 자꾸 자기를 치장하고 드러내는 가운데, 그런 형태에는 힘도 없고 생명력도 없습니다.

저는 그런 식으로 생명력을 갉아먹었나 봅니다.


계속해서 휴식을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뭐 하느라고 이렇게 인생을 바쁘게 살고 있지?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면?


자가당착.

제가 늘 하던 말들과 모순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쉬고 나니까 참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합법적으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일하지 않고 쉬어도 된다는 허가증을 나에게 주는 것.

몸살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한 주 정도는 푹 쉬어도 돼요.

한 주 정도 쉬어도 인생에 아무 지장이 없다고

그리고 그 정도의 휴식이 나에게 필요했던 거라고

몸살은 제게 알려 주었습니다.


심리상담 장면에서 참 놀라운 일을 목도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시도를 해 봐도 큰 진전이 없었는데 내담자가 갑자기 좋아졌다고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내담자의 생활상을 잘 살펴보면 한 가지 분명히 바뀐 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수면 시간과 질이 바뀌어 있습니다.


개운한 수면.

그것만큼 정신 건강을 크게 좌우하는 것이 없습니다.


잠도 제대로 잘 줄 모르면서 일을 제대로 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게 과연 인간다운 삶일까요?

과연 그게 몸을 존중하는 행태일까요?

이런 의문을 남기며 저는 몸살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이 몸살 가운데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몸살이 준 꿀맛 같은 휴식 이외에도 몸살은 좋은 점이 참 많았습니다.

나에게 이 정도의 휴식을 허락해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프고 나서야 정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더 분명히 구별하게 됐습니다.

몸이 아프다 보니 마음이 고요해져서 평소와는 다른 수준의 깊은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심리상담에서는 어떤 감정이든 소중히 여기고 받아들이라고 하지요.

몸살도 소중한 것입니다.

몸살도 받아들여야죠.

나에게 진정 중요한 것을 알려준 몸살.

몸살은 잠시 쉬어 가라며 저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몸 좀

살려 줘!


당신은 잘 쉬고 계십니까?

충분히 자고 있습니까?

오늘은 개운하게 일어나셨나요?


마음이 편안하길 바라는 만큼

몸도 편안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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