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뒤를 봐줘서 감사해요.

by 나무둘

뒤를 봅니다.

나는 무엇을 남기고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것일까?


오늘 아침도 서점과 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밖을 슬쩍 내다보니 아직 생활쓰레기가 수거가 안 되어 있더군요.

일반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음식 쓰레기가 전부 고스란히 남아 있었어요.


이런. 소형차 뒤에 가려서 안 보였구나.

다음부터는 건물 한 귀퉁이가 아니라

정중앙에 떡 하니 잘 보이게 놓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활 쓰레기도 마음 쓰레기도 훤히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그래도 괜찮다는, 근자감으로 살자.)


그러고 오늘 하루를 저런 상태로 보내야 하나 하고

안에 들어와 있는데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트럭 소리가 들렸습니다.

부릉부릉 덜덜덜.

아하, 반가운 쓰레기 수거 차입니다.


냅다 바깥을 내다보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뒤도 봐주세요!


그런데 환경미화원 분들이 이미 주변 상가 쓰레기를 정리하고 계시느라 정신이 없으셨습니다.

소리지르기를 한 번, 두 번.

여기요! 사장님!


뭐라고 불러야지 잠깐 생각이 잘 안 났지만

우리나라에서 '사장님'하면 어디서든 통용되지 않습니까.

사장 소리를 들으면 일단 기분도 좋고요.

실제로 다른 곳에서는 사장이실 수도 있고요.


사장님, 그 소형차 뒤도 봐주세요!

소형차 뒤에도 쓰레기가 있어요!


쓰레기 수거하시는 분이 두 분이셨는데

한 분은 40대 정도 되어 보였고 또 한 분은 머리가 새하얀 분이셨습니다.

그중 새하얀 분이 먼저 제 목소리를 듣고 반응해 주셨어요.

그분이 먼저 소형차 뒤를 살펴보고 쓰레기를 수거해 주셨는데 참 감사했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쓰레기는 건물 한 모퉁이를 차지한 채 하루 종일 그대로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분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 박스를 내놓으실 때는 다 접어서 내주세요. 우리가 일일이 다 이렇게 정리해야 된다고."

거리가 꽤나 있어서 정확히 뭐라고 하셨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이런 말씀이었어요.

"우리는 새벽 2시부터 나와서 밥도 못 먹고 이렇게 일을 한다고."

살짝 죄송함과 감사함이 스쳤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

그 말씀하시는 표정이 어찌나 맑던지.

제 감각을 사로잡은 것은 꾸중 받는 느낌이 아니라

그분의 밝은 얼굴과 목소리였습니다.


잔소리하는 티 하나 없이

나무라는 기색 하나 없이

활짝 웃는 얼굴로

낭랑하게 말씀하시니.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때 그분의 얼굴이 참 곱다고 느껴졌어요.


그렇게 쓰레기를 치우고 순식간에 사라지셨습니다.

멀어져 가는 쓰레기 수거 차량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뒤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은 트럭 소리도 시끄럽고 주변 상가의 쓰레기를 치우느라 바쁜 순간이니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을 수도 있을 테지요.

굳이 돌아보고 반응해 주시고,

굳이 돌아보고 소형차 뒤를 보고 쓰레기를 치워 주시니

그 마음이 참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고 사는가?

내 뒤는 깨끗한가?


멀어져 가는 쓰레기 수거 차를 보면서 계속 감사한 마음을 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은 앞만 아니라 뒤도 돌아보고 사나요?

뒤를 봐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혹은 당신의 뒤를 살뜰히 봐주고 있는 사람이 있나요?


오늘 내가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군가 내 뒤를 잘 봐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차분한 고요함이 그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