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이 아니라 당신의 용기가 당신을 살렸죠.

심리상담사의 아침편지

by 나무둘

심리상담이 아니라 당신의 용기가 당신을 살렸죠.

상담 종결이 다가오면 내담자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입니다.


심리상담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입니다.

언젠가는 꼭 헤어질 것을 약속하고 하는 만남.

이별을 반드시 예감하고 하는 만남.

보통 이별과는 다르게 즐겁고 홀가분한 이별을 향해 가는 만남.

사람과 이별하고 나를 찾아가게 하는 만남.


심리상담사는 참 묘한 직업입니다.

마음을 써서 만났다가 이별할 때는 훌훌 털고 서로 떠나보냅니다.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좋은 이별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내담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의심과 불만을 갖고 심리상담에 처음 찾아옵니다.

'내가 심리상담까지 받아야 하나?' 하는 의문을 품은 채 찾아오지요.

그 의문을 깨뜨리며 여러 달에 걸쳐 숱한 만남을 가진 뒤

내담자는 놀라워하면서 이야기합니다.

상담 찾아오기 전에 일기를 다시 봤어요.

그때 그런 마음이었다는 걸 다시 보고 깜짝 놀랐어요.

지금 이렇게 변했다는 것도 참 놀라워요.


종결이 다가오면 묻곤 합니다.

어떻게 변화될 수 있었나요?

무엇이 나를 변하게 했나요?


내담자는 대개 심리상담에서 도움받은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상담사가 진심으로 마음을 써 주는 게 느껴졌기 때문에.

내가 수용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상담사의 도움으로 나를 스스로 수용하고 보살피는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삶이 막힌 느낌이 들 때마다 상담사가 적절한 심리적 기술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모두 맞는 말이긴 하겠지만

상담사 입장에서는 꼭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당신을 살린 것은 심리상담이 아니라 당신의 용기죠.

애초에 이 상담실 문을 열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우리의 만남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 최초의 방문이 없었더라면

최초의 만남을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더라면

뒤이은 수많은 만남도 없었겠지요.

오늘 우리의 즐거운 이별도 그래서 있을 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굳이 내가 용기를 내서 한 발 내디뎠을 때

머뭇거리고 망설였지만 용기를 내서 상담실 문을 열어젖혔을 때

그때 이미 희망은 시작되었고

치유가 시작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담실에 왔다 갑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잘 살고 계실지 참 궁금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믿으며

축복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당신은 어떤 용기를 내고 있나요?

용기를 낼까 말까 주저하는 그것은 무엇인가요?

만약 용기를 낸다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나를 살리는 것은 단지 하나의 용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컨설팅이나 코칭이나 심리상담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용기.


서로에게 용기가 되는 삶을

오늘 내가 살아보면 참 좋겠습니다.

당신도 나도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이 삶을 살아가 준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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