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을 보여야 인간답지.

심리상담사의 아침 편지

by 나무둘


어제 상담실 문을 새로 칠했습니다.

제가 직접 칠한 것은 아니고 인테리어 업체에 맡겨서 칠했습니다.


처음에 칠했을 때 산뜻한 문 색깔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음에 들어 흡족했지요.

그런데 가만 보니 문고리가 문 색깔과 어울리지 않더군요.

카키색 방문과 흰색 문고리.

좀 더 잘 어울릴 검은색 문고리로 교체하기로 했습니다.


기존의 흰색 손잡이를 뜯어내고 검은색 손잡이를 다시 끼웠습니다.

그랬더니 아뿔싸.

흰색 손잡이가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틈이 보였습니다.

흰색 손잡이에 꼭 맞게 칠해져 있던 그 둥근 테두리가 검은색 손잡이에서는 꼭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새로 칠해지지 않은 부분이 드러난 것이지요.


가만 보고 있는데 마음이 아주 편안하지는 않았습니다.

왜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미리 페인트 칠하기 전에 이 생각을 했더라면 아예 문고리를 빼고 칠했을 텐데.

둥근 테두리 옆으로 삐죽삐죽 칠해지지 않은 하얀 부분을 보고 있자니

약간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물론 다시 하면 됩니다.

하지만 한 번에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한 나.

이런 것을 예상하지 못한 나 자신이 못마땅한 것이지요.


당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그냥 보고 있다가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내 인생 같군.


한다고 했는데

내 딴에는 완벽하게 한다고 했는데

돌아보면 저런 삑사리, 실수, 틈이 보입니다.

정말로 한다고 했는데 말이지요.

제 인생살이는 꼭 그런 모양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깨우침이 들었습니다.

인생이란 틈을 얼마나 잘 품고 사느냐에 달려 있구나!


도무지 실수하지 않는 사람들,

웬만해선 실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내 모습은 아닙니다.

오늘 이 날까지 살아온 내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앞으로도 그런 틈을 많이 보일 것입니다.


인생에는 두 갈래길이 있습니다.

'틈을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의 갈래길이 아니라

'틈을 품고 사느냐, 품지 않고 사느냐'의 갈래길입니다.


완벽에 대해서는 진작에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완벽하려 해 봐야 늘 완벽하지 않은 것들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것이 제 인생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수도 없이 드러날 틈.

이것을 어떻게 품고 살 것인가?

어떻게 메울 것인가, 가 아니라 어떻게 품고 살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따가 반드시 문고리의 틈은 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틈은 못 메꿔도 문고리의 틈 정도는 메꿀 수 있지 않은가!

가만 보고 있으니 간질간질거려 가만있을 수가 없네요.)


인생을 메꾸지 않습니다.

틈을 품고 삽니다.


당신은 어떤 틈을 보이며 살고 있나요?

그 틈을 어떻게 품고 사나요?

혹시 그 틈이 있어서 당신은 아닐까요?


나는 생각합니다.

이 틈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같다고.


나에게 말합니다.

이 틈을 품고 잘 살아보자.

이번 생에 이 틈대로 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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