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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이 지고 푸르름이 온단다.

by 나무둘

오늘도 서점이자 심리상담센터를 청소했습니다.


이제 3월도 마지막 날입니다.

2023년의 4분의 1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거리에 나오니 벌써

바닥에는 벚꽃잎이 수없이 흩뿌려져 있습니다.

아 세월의 무상함여.


오늘 청소를 하면서 난로를 치웠습니다.

지하라 이때까지도 쌀쌀한 기운이 있었는데

지는 벚꽃을 보니 이제는 치울 때가 됐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겨울 나와 이 공간을 든든히 지켜주었던 난로.

문득 불가에 전해 오는 뗏목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사람이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넜다고 하지요.

그런데 강을 건넌 뒤에도 뗏목이 어찌나 고마운지

머리에 지고 계속 갔다고 하지요.


소중했던 것도 반드시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더없이 소중한 것이기에 더 훌훌 떠나보내야 합니다.

박수칠 때 떠날 수 있게

박수치며 놓아주기.


난로를 정리해 넣으며

지난 겨울 동안 꿋꿋이 버텨낸

소상공인 삶의 한 페이지를 접는 기분이 듭니다.

이제 새로운 페이지에

봄기운을 가득 담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솟습니다.


아름답다면 필경 제때 스러져야 합니다.

아름답지 않았다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화려한 꽃이 지는 것은 생명의 전주곡.

전주가 끝나야 클라이맥스를 향해

우리는 진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땅에 떨어진 벚꽃잎이

내게 윙크를 하며 소곤댔던 것 같습니다.


나의 낙하는 생명의 신호탄이야.

화려함이 지고 푸르름이 온단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실감하는 게 있습니다.

이제 형형색색의 꽃보다는 파릇파릇한 잎이

어쩐지 더 끌리고 편안하다는 것을.


이제 곧 꽃이 다 지고

벌들이 요란하게 윙윙 거리는 때도 지나면

푸르름이 찾아오겠지요.

화려한 꽃이 진 자리를

싱그러운 푸르름이 가득 메우겠지요.


정신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듯한 푸르름.

절대 손상될 수 없는 불변의 영혼 같은 푸르름.


그 생명의 길을 열어준 꽃에게

그동안 고마웠다고 이야기합니다.


봄기운이 들라고 자리를 비켜 준 난로에게도 인사를 합니다.


이번 겨울도 잘 보내게 해 줘서 고맙다.

네가 떠나며 이 지하에도 본격적으로 봄이 오는구나.


당신은 철이 지났는데도 간직하고 있는 게 있나요?

그것을 떠나보내지 못해 맞이하지 못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선뜻 떠나보낸다면 어떤 새로움이 찾아올까요?


오늘은 더 환영하기로 합니다.

내 안에 사라지고 떠나가는 것들.

그들과의 이별을 환영하며

다가올 새로움을 껴안을 준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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