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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명상수행. 입춘, 모든 존재에 봄빛이 스미길.

by 나무둘

주말이라 아침 늦게 일어났다.

꿈지럭거리고 무기력한 상태로 이불 안에서 뒹굴면서

세상만사를 제쳐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더 나아가면 다 포기하고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

다행히 마음의 술수에 걸려들지 않고 그걸 빤히 바라보다가

평소보다 훨씬 많이 잔 느낌을 받고 벌떡 일어났다.

어쨌든 많이 자고 일어나니 몸이 상쾌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시작했다.

늦게 일어났어도 한가한 주말이니 내 할 일은 명상뿐!

(이라고 하지만 읽겠다고 쌓아놓은 책과 보겠다고 모아둔 자료와 영상을 생각하면 무거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게 아침 첫 명상보다 중요할 수는 없지.)


오롯이 1시간 명상.

예전에는 10분도 힘들 때가 있었는데

1시간을 앉아 있어도 전혀 힘들지 않으니 참 신기하다.

계속 더 앉아있고 싶었으나 천천히 몸과 마음을 살피며 마무리했다.


위빳사나로 바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계속해서 마음에 드고 나는 생각과 이미지들.

아침에 기상하기 싫었던 마음과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삶에 대한 두려움.

무기력하게 만들고 삶을 침체되게 하고 혼탁하고 둔중하게 만드는 오래된 마음의 습관.


그것들이 오가면서 또 여러 감정과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혼란스럽기도 했다가 슬퍼하기도 했다가 다양한 감정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다.

이대로 계속 가면 마음의 미로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위빳사나와 아나빠나삿띠를 오갔다.

몸의 현상을 분명히 꿰뚫기에는 의식의 힘이 다소 약했다.

신수심법, 마음에 등장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자연의 이치대로 잠시 후 무상하게 사라지길 기대하나

그 또한 기대함이기 때문인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몸과 마음의 현상을 관찰하다가

마무리 즈음에 자애 명상으로 전환했다.

꿰뚫지 못하면 차라리 품자는 생각으로.


이 존재의 한계.

지금까지 살아온 흔적의 한계를 품었다.

무기력, 침체, 어둠, 가라앉음, 슬픔, 애잔함 등

오가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내려놓으며

그 또한 나는 아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품고 또 품었다.


어미새는 자기 알에서 어떤 새끼가 태어날지 모른다.

모르지만 사랑으로 품는다.

생명을 품고 지킨다.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


그 품을 통해, 그 품과 함께, 그 품에서

아기새는 끝내 껍질을 깨고 나올 것이며

언젠가는 창공을 훨훨 자유로이 날 것이다.


내 안의 모든 부정성 또한 껍질을 깨고 나오면

어떤 긍정성, 선함이 있을지 나는 모른다.

지금의 나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신성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


지금 느껴지는 나로 나를 판단하지 말라.

지금까지의 나로는 지금부터의 나를 알 수 없다.

겨울은 지나고 봄은 오는 법이다.


입춘.

내 마음에도 봄이 든다.

이 지구별에 함께 사는 모든 존재에도 따스한 봄빛이 스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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