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설 연휴를 지나고 감기까지 세게 걸리면서
아침저녁 꾸준히 명상하려던 계획이 많이 흐트러졌다.
감기로 앓으면서 바쁜 일정에 무리했구나,
그 와중에 아침저녁 명상을 고수한다고 몸을 더 힘들게 했구나 싶었다.
지난 토요일에는 하루를 빼서 종일 명상을 다녀오기도 했다.
낯선 장소에 앉아있는 것이 낯설어서 집중이 떨어졌다.
여전히 감기로 고전하고 있었던 데다가 감기약 기운으로 인해
오후부터는 명상을 한 건지 혼몽 속을 헤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간의 명상의 공덕이 빛바래 있었다는 것이었다.
선명하지 못한 알아차림.
맑지 않고 흐릿한 의식의 깨어있음.
위빳사나를 하다가 다른 생각과 상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다행히 이를 또한 알아차렸다는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지난 명상시간들과 비교하면
너무 부족했던 명상이었고, 자책하려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처럼 비가 오고 아침부터 기분이 처지는 날에도 딱 그 마음이 든다.
자책은 명상의 가장 큰 장애물 중에 하나이다.
수행에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온갖 부정적 기억을 끌어오기 때문에.
그런데 그 과거 기억들과 거기서 조합된 생각이 어찌나 설득력 있는지
자책하는 것이 아주 지당하게 느껴지고 순식간에 자기비난에 휩싸인다.
이를 알아차리고 있어도 그 인력이 상당해서
가만히 깨어 알아차리고 있는 게 쉽지는 않다.
오늘 새벽에 30~40분 정도 명상을 하고 아무 문제 없이 하루를 시작을 했으나
판단하는 마음은 명상이 다 무슨 소용이고, 그동안 성과라는 게 있긴 했었나
하나하나 따지고 들려했다.
명상이고 뭐고 내가 하는 일이란 것들이
정말 소용없고, 그간 성과도 없었다는 것을
막다른 코너에 몰린 듯 인정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또 알아차렸다.
이것은 셀프 가스라이팅임을.
이 셀프 가스라이팅이야말로
아무 소용도 없고 아무 효과도 없는 것이다.
옴짝달싹 못하게 내 몸과 마음을 묶어 버리고는
자책과 자기비난의 회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스스로 만든 미로에 빠지게 하는, 실로 무시무시한 이것.
명상을 한두 번 빼먹었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아니다.
명상을 엉망으로 했기 때문이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아니다.
명상과 무관하게 근본적으로는 명상을, 나를 판단하는 마음 자체가
이 명상조차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나를 머리에서 발 끝까지 뒤흔드는 것이다.
오늘처럼 아침부터 흐리고 우중충하고 비가 계속 오는 날,
자책과 자기비난, 셀프 가스라이팅이 더욱 기승을 부리기 쉬운 날에는
자기를 더 온화하고 따듯하게 살뜰히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에 따듯한 빛을
부드럽고 온화한 열기를
나에게 주며 오늘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