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명상수행. 강요된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이토록 어려운 자기사랑과 자기자비

by 나무둘

평소에 하던 위빳사나 명상을 잠시 접었다.

새벽 기상이 약간 늦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40분 명상을 못할 시간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오늘 위빳사나를 잠시 접은 이유는

어제 자애명상을 하면서 새삼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 자기 자비와 사랑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훈련하고 있었고 그걸 교육하고 있는 입장이었으니

체화되어 있다고 나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점검하지 못한 것일까?


어제 자애명상의 메타문구들을 되새기는데

문득 일상에서의 내 모습이 관찰됐다.


얼마나 남과 비교하며 살고 있는지.

얼마나 나를 몰아세우고 있는지.

얼마나 나를 비판하고 있는지.

얼마나 나를 비난하고 있는지.


너무 습관화돼서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비교, 비판, 비난의 생각들이

어느 순간 거리를 두고 관찰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많았다니.

이렇게나 자주 했다니.

이 이질적인 정신의 요소들.

나의 것이 아님에도 어느 순간 내 존재를 차지한 이것들.


마음이 아팠고 슬펐고 힘들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건너지 못한 강은 슬픔으로 밀려들었다.


나는 지금의 나이면 안 된다고 또다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대 자신으로 살아가라고 수없이 말하던 내 입술이 부끄러워졌다.


이제라도 관찰되는 것이 참 다행이라 여기면서

당분간 자애명상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위빳사나 명상을 놓지도 않을 터지만

위빳사나 궁극의 통찰인 무상과 무아를 나에게 강요하지도 않을 터.


강요된 진리는 진리가 아니니

체험으로 다가오지 않는 한 억지 부리지 않으련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그저 나일 수 있게 허용할 수 있을까?

매 순간 그리 할 수 있을까?


이건 참으로 위대한 도전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감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건너야 할 다리가 없게.

지금 여기에서 다 건너 진리의 자리에 설 수 있게.


당분간 자애명상에 집중해 본다.

오늘 새벽은 위빳사나 대신 20분 정도 자애명상.

염화미소로 나에게 꽃을 건네본다.

꽃을 받은 내가 다시 나에게 꽃을 건네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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