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명상수행. 명상도 치팅데이가 필요한가?

by 나무둘

굳이 이런 걸 기록으로 남겨야 하나 싶다가

이런 걸 기록으로 남기면 나 자신에게 참 투명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언젠가 이것을 보고도 웃어넘기며 나 스스로 떳떳하게 여길 것 같아서

한 줄을 쓴다.


어떤 시인이 그러지 않았나.

한 줄도 너무 길다고.

(여기서 끊을까?)


어젯밤 아이들과 함께 여러 주전부리로 과식을 했다.

식욕이 폭발한 듯 이것저것 계속 먹어댔고

사실 그때부터 의식의 저 먼 곳에서는 알았다.

이미 망치고 있다는 것을.

밤 명상과 다음 날 새벽 명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정(?)대로 먹은 만큼 감정은 더 출렁대어 공연히 화를 내고

밤늦게까지 이것저것 적고 읽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쓸데없이 애씀을 만들었던 것.

먹지 않았으면 출렁거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가라앉힐 필요도 없었을 텐데.


그래서 오늘, 늦잠까지 실컷 자고 난 다음에 나는 알았다.

이래서 불교에서 계를 지키라고 하는구나.


그보다 더 큰 깨달음이 있었으니

그것은 '나는 동물이다.'라는 명제다.


위빳사나 명상이든 자애 명상이든

동물인 내가 하는 것이다.

동물인 내가 자족할 수 없다면

명상은 불가능하다.


나는 스스로 명상할 수 있게 하는가?

명상을 몰아붙이고 실패를 거듭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이것이 다이어트 요요현상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명상도 치팅데이가 필요한 걸까?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나 자신에게 오늘은 느슨하게 대하고자 마음을 먹는다.

아니, 마음 먹지 않는다.

동물은 마음을 먹지 않으니까.

동물은 신선하게 살아있는 것을 먹는다.


오늘 나도 신선하게 살아보리라.

명상적 인간으로 살려하지 않는다.

어떤 선함도 행하지 않는다.

애쓰지 않는다.


마음을 먹지 않는다.

마음은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마음은 먹으라고 있는 게 아니니까.


잔잔하게 슬프면서도 기쁜, 이대로 산다.

치팅데이가 필요 없는 동물답게 산다.


(가부좌 틀고 앉지 않아도 이 글쓰기가 명상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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