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깨어있음이 소중하지요.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이 편지를 쓰는 지금, 저도 모르게 깊은숨을 내쉬게 됩니다. 매일같이 스스로를 조이는 루틴 속에서 효율이라는 이름의 채찍을 들고 저는 제 등을 밀어왔습니다. 나아가야 한다, 멈추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이에요. 성과와 성장, 더 나은 나를 향한 열망은 분명 있었지만, 그 끝에서 마주한 건 어딘가 허전하고 메마른 제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자주 질문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지?” 이 물음은 불평이 아니라 진심으로 묻고 있는 거예요. 단지 피곤해서가 아니라 이 방식이 정말 저를 살리는 길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요. 효율성과 계획의 미명 아래 저를 구성하는 중요한 감각들이 자꾸 무뎌지는 걸 느낍니다. 길 위의 돌멩이나 바람 소리 같은 것에 감탄하던 마음도 어쩌다 사라졌는지 모르겠어요.
제 삶이 점점 수단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발판으로 하루를 소비하고 미래라는 목적지를 위해 현재가 저당 잡히는 기분입니다. 그러다 문득 멈춰서 이렇게 자문하게 됩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 질문에 답하는 일은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무 간절합니다.
요즘은 오히려 흔들릴 때 그 떨림 속에서 저를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완벽히 계획된 루틴보다는 길을 잃는 순간에 더 저다운 얼굴이 비쳐요. 그리고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도 용기 있는 일인지 실감하고 있어요. 세상이 정해준 트랙에서 잠시 벗어나 내 속도의 걸음으로 살고 싶다는 이 욕망이 어쩌면 저를 구원해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씁니다. 조언을 구하기보다는 다르게 살아보려는 이 조용한 용기를 누군가에게 들켜보고 싶어서요. 제가 잘 가고 있는 걸까요? 아니, 어쩌면 잘 가고 있는지 아닌지보다 중요한 건 이렇게 질문하며 계속 깨어 있으려는 마음 자체일지도 모르겠네요.
상담사님이라면 이 길을 어떻게 걸으셨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고맙습니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보내는 편지]
삶을 사랑하는 당신께.
이토록 깊은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당신의 마음 앞에 저는 잠시 조용히 머뭅니다.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할까.” 이 물음은 단순한 회의도 나약한 푸념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건 삶을 뚫고 나온 투명한 감각이며 오랜 시간 억눌려온 당신의 내면이 드디어 입을 연 목소리입니다.
우리는 종종 ‘잘 사는 것’이라는 이름 아래 삶을 일종의 과업처럼 수행하죠. 계획표를 채우고, 목표를 달성하고,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 순간을 쫓듯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발이 멈춰지는 순간이 오지요. 그 멈춤은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건 당신이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는 의지의 신호입니다.
당신은 지금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고 있어요. 계획된 코스에서 잠시 비켜나서 이대로 괜찮은지 묻고, 때론 되돌아보고, 때론 다른 방향으로도 눈을 돌리는 용기를 내고 있어요. 그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이 정한 틀 바깥에서 삶을 다시 상상한다는 건 정말이지 외롭고 아픈 길일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그 질문이 열어놓은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요.
나 자신을 위한 삶은 종종 사회가 정한 ‘표준’과 충돌합니다. 결혼, 육아, 소비, 커리어처럼 규범화된 생애 계획은 때로 개인의 속도와 욕망을 무시한 채 우리를 압박하지요. 하지만 당신은 지금 그 균열을 응시하고 있어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마 당신도 어렴풋이 느끼고 계실 거예요.
혹시 지금은 많이 외롭고 때로는 겁이 날지도 몰라요. 하지만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세상의 어딘가에서도 삶을 다시 묻고, 다르게 살기를 꿈꾸며 걸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당신과 마찬가지로 흔들리고 질문하며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부디 너무 빨리 결론 내리지 말아요. 완성되지 않아도, 어딘가에 닿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깨어 있으려는 태도’ 그 자체니까요.
지금 이 삶의 불확실함을 품은 당신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인지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더 자유롭고 단단한 목소리로 “이게 나의 길이야”라고 말하게 될 날이 오기를 조용히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