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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에서 굳이 '직면'을 하는 이유

한낮에 나온 귀신은 무섭지 않다.

by 나무둘

'직면'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보통은 힘든 상황을 회피하다가 마주하기로 결심할 때 '직면'이라는 단어를 쓰지요. 그런데 심리상담에서는 이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쓰는데요. 외부의 상황이나 사람을 마주할 때 쓰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회피하고 있던 내 마음을 마주할 때 씁니다.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직면하게 됩니다. 심리상담은 내 마음을 살피는 작업인 만큼 마음의 구석구석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를 동굴 탐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동굴의 여러 갈래길을 손전등을 들고 하나씩 탐색을 합니다. 그중에는 자주 가던 길이라 빛이 없어도 눈에 보이듯 훤히 갈 수 있는 길도 있을 테고, 도무지 안 가던 길이라 길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괜히 가기가 꺼려지는 길도 있고, 탐색이 전혀 안 돼서 있는 줄도 모르는 길도 있겠지요. 내 마음속에도 그런 수많은 길들이 있습니다. 심리상담은 그 길들을 하나씩 따라가며 전체의 지형을 파악합니다. 심리상담은 내 마음의 동굴에 나 있는 모든 길에 빛을 비추고, 동굴의 전체 지도를 파악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것이지요.


알아도 왠지 깊고 으슥해서 가지 않았던 길, 가다 보니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두려워서 돌아 나왔던 길, 혹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탐사를 계속하다 보니 새롭게 알려진 길. 마음의 동굴에 있는 이런 길들에 직접 들어가서 탐사하는 것이 심리상담에서 말하는 '직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런 '직면'을 하면 무엇이 좋을까요? 내담자 입장에서는 그냥 공감해주고 위로나 해주면 마음의 안정을 찾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 이유는 내가 직면하지 않은 내 마음의 그 부분이 언제든 나를 다시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위로와 공감이 도움은 되겠지만 내 마음을 명명백백하게 꿰뚫어 보지 않는다면 결국은 같은 아픔의 자리로 돌아가기 십상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다루고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지 않는 셈인 것이지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증상을 만들어 내던 내 마음의 미지의 영역, 알면서도 굳이 회피하고 살면서 증상을 심화시켰던 내 마음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입니다.


귀신을 보더라도 한낮에 보는 게 낫습니다. 한밤중에 나도 모르는 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귀신은 참 무섭겠지요? 하지만 내가 어디 있는지도 빤히 알고 있는 귀신이 환한 대낮에 나온다면 어떨까요? 징그러울 수는 있겠지만 아주 무섭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직면하지 않았던 마음을 귀신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직면을 통해 내 마음을 보게 되면 다시 그 마음이 등장해도 두렵지는 않습니다. 전에는 부지불식 간에 나를 집어삼키고 증상을 유발했던 그 마음에 대해 뻔히 알게 됐으니까요. 직면의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이제는 두렵지 않다'입니다.


모든 심리적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려움'. 그 두려움이 사라진 마음. 그런 나를 상상해보세요. 그때의 나는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울까요? 꽤나 두려운 것 같은 직면은 이런 힘이 있습니다. 직면은 두렵게 느껴져도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며 피하고 산 그것보다는 덜 두렵습니다. 잘 갈고 닦인 직면은 진정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는 진실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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