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둘 Mar 28. 2022

심리상담에서 굳이 '직면'을 하는 이유

한낮에 나온 귀신은 무섭지 않다.

'직면'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보통은 힘든 상황을 회피하다가 마주하기로 결심할 때 '직면'이라는 단어를 쓰지요. 그런데 심리상담에서는 이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쓰는데요. 외부의 상황이나 사람을 마주할 때 쓰는 것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회피하고 있던 내 마음을 마주할 때 씁니다. 


심리상담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직면하게 됩니다. 심리상담은 내 마음을 살피는 작업인 만큼 마음의 구석구석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를 동굴 탐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동굴의 여러 갈래길을 손전등을 들고 하나씩 탐색을 합니다. 그중에는 자주 가던 길이라 빛이 없어도 눈에 보이듯 훤히 갈 수 있는 길도 있을 테고, 도무지 안 가던 길이라 길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괜히 가기가 꺼려지는 길도 있고, 탐색이 전혀 안 돼서 있는 줄도 모르는 길도 있겠지요. 내 마음속에도 그런 수많은 길들이 있습니다. 심리상담은 그 길들을 하나씩 따라가며 전체의 지형을 파악합니다. 심리상담은 내 마음의 동굴에 나 있는 모든 길에 빛을 비추고, 동굴의 전체 지도를 파악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것이지요. 


알아도 왠지 깊고 으슥해서 가지 않았던 길, 가다 보니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두려워서 돌아 나왔던 길, 혹은 알려지지 않았는데 탐사를 계속하다 보니 새롭게 알려진 길. 마음의 동굴에 있는 이런 길들에 직접 들어가서 탐사하는 것이 심리상담에서 말하는 '직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이런 '직면'을 하면 무엇이 좋을까요? 내담자 입장에서는 그냥 공감해주고 위로나 해주면 마음의 안정을 찾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 이유는 내가 직면하지 않은 내 마음의 그 부분이 언제든 나를 다시 아프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위로와 공감이 도움은 되겠지만 내 마음을 명명백백하게 꿰뚫어 보지 않는다면 결국은 같은 아픔의 자리로 돌아가기 십상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증상만 다루고 근본적인 원인을 다루지 않는 셈인 것이지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증상을 만들어 내던 내 마음의 미지의 영역, 알면서도 굳이 회피하고 살면서 증상을 심화시켰던 내 마음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입니다. 


귀신을 보더라도 한낮에 보는 게 낫습니다. 한밤중에 나도 모르는 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귀신은 참 무섭겠지요? 하지만 내가 어디 있는지도 빤히 알고 있는 귀신이 환한 대낮에 나온다면 어떨까요? 징그러울 수는 있겠지만 아주 무섭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직면하지 않았던 마음을 귀신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직면을 통해 내 마음을 보게 되면 다시 그 마음이 등장해도 두렵지는 않습니다. 전에는 부지불식 간에 나를 집어삼키고 증상을 유발했던 그 마음에 대해 뻔히 알게 됐으니까요. 직면의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이제는 두렵지 않다'입니다. 


모든 심리적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려움'. 그 두려움이 사라진 마음. 그런 나를 상상해보세요. 그때의 나는 얼마나 홀가분하고 자유로울까요? 꽤나 두려운 것 같은 직면은 이런 힘이 있습니다. 직면은 두렵게 느껴져도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하며 피하고 산 그것보다는 덜 두렵습니다. 잘 갈고 닦인 직면은 진정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키는 진실함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매너리즘에 빠진 심리상담 구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