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갑사

떠나라

by 정안

햇살은 청명하게 쏟아지고

나뭇잎들은 물들어갈 때,

견딜 수 없는 굼실거림으로 길을 떠났다.

가을 숲 속을 지치도록 걷고 싶었다.



군밤 한 봉지 사서 먹다 보니 갑사의 입구가 보인다.

길 양쪽의 오래된 나무들이 만나 터널을 이루었다.



길이 숲이다.

가을은 근처까지 와 있었다.



호젓한 갑사의 옆길을 걷는다.



내원암 가는 길이라고 한다.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라는 안내문에 발길을 돌렸다.



돌아서 내려온다.

같은 길이지만 올라갈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갑사의 뒤뜰이 계룡산의 부드러운 선과 만나 풍경이 된다.

떠나오길 잘했다.

행사 준비를 하는지 절에서는 음식 냄새와 천막들이 가득하다.



대성암 가는 길로 들어선다.

이 길을 가면 혹여나 이제껏 알지 못했던 낯선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설레임은 언제나 기분좋다.



산 안개를 일으키는 아침햇살이 나무들 사이로 비친다. 눈부시다.

굽이 굽이 오솔길을 올라갔다 내려오니 숨쉬기가 훨씬 편하다.



계곡에 앉았다.

물소리와 가을을 맞고 있는 작은 나무들... 무심히 바라본다.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히 있는 그런 시간.

늘 힘이 들어가 있던 몸에서 스르르 힘이 빠지는 느낌. 그 허허로운 평화.



가을 속 지붕의 선이 아름답다.



하늘을 올려다 보기를 잘했다.

조화로운 색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지나온 길을 문득 뒤돌아 본다.

무언가를 두고 온 듯...

환희로운 순간에 느꼈던 상실감을 뒤돌아 보는 것으로 표현했던 기억

무엇을 두고 왔을까 나는. 인생의 매 순간에



아주 천천히 걸어 나온다.

이 길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가을이 오고 있다.



버스를 타고 공산성에 왔다.



햇살아래 작은 국화와 가을 풀들이 보기좋게 어우러져 있다.

자연은 늘 진리다.



성곽길을 걸어보자.



길은 하얗고 구불구불하다.

때때로 아련한 그리움을 주는 길.



올라가고 또 내려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었을까. 기쁨과 슬픔과 고뇌의 감정들 속에서



공산성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

성안마을이 있던 곳,

그들이 있던 자리만 남아 있다. 좀 쓸쓸해졌다.



그 자리에 해가 진다.



무엇을 보관했던 곳이었을까. 물이라든가 영혼이라든가 뭐 그런 거였을까.




성안마을 사람들이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찾아왔을 작은 절

산에 둘러싸이고 앞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누구라도 안식을 느꼈을 이곳의 모습이 작은 위로가 된다.

무언가 있던 자리가 아닌 현실의 절이 주는 따뜻함.



돌아 나오다 보니 성안마을이 있던 자리가 다시 보인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의 마을터와 아파트 숲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가을 속에서 걸어 나오고,

다시 가을 속으로 들어간다.



천오백 년 전부터 이 자리에 있던 성곽에 석양빛이 비친다.



입구는 다시 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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