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같이 걸어주는 올레 3코스

3-B코스

by 정안

올레여행자센터의 '제주에서 일주일 살기' 프로그램 마지막 날이다.

각자 걷고 싶은 올레를 선택하면 센터에서 차로 데려다주고 그 후로는 스스로 걸어보는 일정이다. 나는 올레 3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었다. 재작년에 정방향으로 걸어본 적이 있어서 역방향으로도 한번 걸어보고 싶었다.


올레 3-B코스 역방향은 표선해수욕장에서 출발해서 신풍신천 바다목장을 거쳐 신산리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온평포구까지 가는 21킬로미터의 길이다. 3-A코스는 김영갑 갤러리가 있어 매력적이었지만 숲길과 오름이 두 개나 있고 외진 곳이 많아 선택하지 않았다. 혼자 걷기에는 부담이 되는 길이었다.


시작점에서 스탬프를 찍고 있는데 바람이 불고 몹시 추웠다. 마스크를 쓰고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출발했다. 오늘은 혼자 걷는다. 조금 걷다가 중간에 식당이 없을까 봐 편의점에 들어가서 삶은 계란과 간식을 샀다. 편의점 주인이 날씨가 춥다며 따뜻한 커피 한잔 드시겠냐고 물었다. 잠이 안 와서 디카페인 아니면 못 먹는다고 하니 미소를 짓는다. 그 마음이 고마웠다.


물이 반쯤 빠진 표선해수욕장을 지나는데 앞서가는 청년이 보였다. 표선해수욕장 옆 곶자왈(돌 많은 거친 숲)로 올레길 표시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냥 해변 쪽을 걸었다. 어차피 바다 옆길에서 만나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청년도 나처럼 해변길로 갔다. 그래 남자도 외진 숲은 무서울 수 있어 이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가다 보니 양배추밭이 나왔다. 넓은 밭에 잘 여문 양배추가 가득이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수확을 하려는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를 수확하는 모습은 여러 번 봤지만 양배추는 처음이었다. 얼마쯤 걸어가니 배고픈 다리가 나왔다. 허기진 배처럼 움푹 들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 시간쯤 걸었을 때 카페가 하나 보였다. 따뜻한 커피가 마시고 싶어 들어갔다. 혼자이니 내 맘대로 하면 된다. 디카페인을 주문했더니 핸드드립만 된다고 해서 핸드드립을 주문했다. 가격이 꽤 비쌌지만 커피는 맛있었다. 바람 부는 바다를 보면서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아침에 마지막 남은 감기약을 먹었는데 약기운이 정신을 약간 멍하게 만들었다. 커피를 마시니 다시 걸을 기운이 났다.


바람 부는 바닷가에 감귤색 테왁 몇 개가 보였다. 해녀분들이 물질을 하고 있었다. 일요일이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인데도 일을 하고 있었다. 걸어가다 바다에서 나오는 해녀분을 만났다. 연세가 드셔서 허리가 구부러진 분이 물이 뚝뚝 떨어지는 망태에 전복 같은 것을 가득 넣고 물에서 나왔다. 내가 인사를 했지만 잠수복 모자가 귀를 가려서인지 듣지 못하셨다. 잠시 후 해녀분이 전동스쿠터를 타고 부웅하며 내 앞을 지나갔다. 그 뒷모습이 귀여웠다.


걷다 보니 점심 먹을 때가 되어 맨 먼저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단체로 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어 떠들썩했다. 나는 해물라면을 시켰다. 해물이 어찌나 많이 들어있는지 해물만 먼저 골라 먹었는데 배가 너무 불렀다. 라면은 거의 남기고 나왔다. 계산을 하며 웃었다. 공교롭게도 아까 마신 커피값과 해물라면값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3코스는 바닷길이라 혼자서 가기에 더없이 좋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그런데 '성산 환해장성'을 조금 지나 왼쪽 길로 들어가라는 표시가 있었다. 금방 끝나겠지 하고 들어갔는데 숲길이 었다. 아무도 없는 숲길에 들어선 순간 등에 식은땀이 나고 무서웠다. 가방에서 스틱을 꺼냈다. 나도 모르게 빠르게 걷고 있었다. 길이 얼른 끝나기를 바라며 걷고 있는데 나무가 빽빽한 그야말로 곶자왈 길로 표시가 나있었다. 너무한 거 아냐... 중얼거리며 빠르게 걸었다. 혼자 걷는 사람들을 위해 대체길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숲길에 들어서니 좁은 돌길에 나무가 가득 차 어두컴컴했다. 선글라스를 벗으니 조금 환해졌다.


곶자왈길은 다행히 길지는 않았다. 작은 도로로 나오니 그제야 맞은편에서 연인인 듯한 젊은이들이 오고 있었다. 조금만 일찍 오지... 혼잣말을 했다. 다시 바닷길로 나왔다.


돌아보니 숲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닷길로 왔어도 만나는 길이었다. 혼자서 3-B 코스를 걸으신다면 왼쪽 숲길로 빠지지 말고 곧장 바다를 따라 걸으시기를 강력 추천한다. 그렇게 하면 3-B코스는 혼자서 걷기에 너무도 좋은 길이다. 바다와 바람과 파도 소리가 함께 걸어주는 아름다운 길이다.


역방향의 종점인 온평포구에 도착해서 스탬프를 찍고 돌아가는 버스를 탈 정류장을 검색했다. 다행히 15분 거리에 있는 온평초등학교 앞에서 올레스테이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버스 정류장을 검색해 가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걱정돼서 대충 보고 출발했다. 한참을 걸어도 초등학교는커녕 정류장도 안 나왔다. 다시 지도를 보니 정류장까지의 거리가 두배로 늘어나 있었다. 거꾸로 왔던 것이다.


나처럼 '일단 가보자'는 스타일의 단점이 이런 거였다. 종종 아니 자주 거꾸로 가서 시간이 두배로 걸렸다. 다시 온평포구로 가서 검색을 했더니 20분 이상이 나왔다. 다시 헤매고 지도와 씨름을 하다 드디어 정류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버스가 바로 있어서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올레길을 걷고 돌아오는 버스는 대부분 한 시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자고 싶지 않아도 엄청 곤하게 자게 된다. 내릴 때는 좀 개운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저녁을 먹고 '제주에서 일주일 살기'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16명의 사람들은 사연도 성격도 달랐지만 가족처럼 일주일을 보냈다. 함께 걸었기 때문에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유쾌하게 마무리를 하고 내일이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우리는 쿨하게 헤어졌다.


나는 내일 아침 올레스테이를 떠나 13, 14, 14-1코스를 걷기 위해 저지리 숙소로 떠난다. 2주일 동안 머물렀던 올레스테이와 여행자센터는 나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받았던 환대와 정성 가득한 밥상을 잊지 못할 것이다. 올레꾼을 위한 세심한 시스템에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