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을 한눈에 담은 올레 7-1코스

꼬닥꼬닥 걷는 숲과 마을길. 혼자보다는 같이 걸으면 좋을 길

by 정안

오늘은 올레 7-1코스를 걷는 날이다.


올레 7-1코스는 서귀포 버스터미널 앞에서 시작하여 오름인 고근산 정상에 올랐다가 마을길을 따라 내려와 제주올레여행자센터까지 걷는 길이다. 총길이 16킬로미터이고 바다가 아닌 서귀포의 중산간과 도심을 걷는 다.


오늘 우리를 안내해 줄 봉사자는 감성충만한 여성분이었다. 하지만 걷는 내공은 대단했다. 걷는 내내 우리는 오르막에서는 더워서 옷을 벗었고 평지에서는 추워서 다시 입고를 반복했는데 이분은 한 번도 경량패딩을 벗지 않고 처음 온 그대로 끝까지 걸었다. 오르막을 올라갈 때도 걸음에 전혀 흔들림이 없이 평온했다.


서귀포버스터미널 맞은편 공원에서 간단한 체조와 주의사항을 듣고 출발했다. 올레 7-1코스는 고근산 오름이 있어 힘든 코스이고 올라가는 계단이 854개라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주의하라고 했다. 3월 중순의 바람은 싸늘했지만 날씨는 맑고 화창했다. 걷기에 좋은 날씨이다.


번화한 도심의 도로를 건너 아파트가 있는 동네를 지나니 금세 한적한 숲길이 시작되는 공원으로 접어들었다. 그때 갑자기 숲 속에서 후다닥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새끼 노루들이었다. 우리를 보고 놀라서 도망가는 중이었다. 도망가는 뒷모습이 재밌었다. 노루 궁둥이 부분이 하얀 털이었다.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숲 속에 꽁꽁 숨어서 보지 못했다.


기온이 올라가고 화창한 날이 계속되니 유채꽃도 목련도 이름 모를 들꽃들도 군데군데 피었다. 토종 동백은 초록의 이파리들 사이로 아기 얼굴 같은 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 꽃이 작고 떨어질 때 꽃이 통째로 똑 떨어지는 것이 토종 동백이고 외래종인 애기동백은 꽃잎이 하나씩 떨어진다는 차이점이 있다.


엉또폭포에 도착했다. 엉또폭포는 절벽 속 깊은 구멍에서 떨어지는 물이라는 의미이다. 엉또폭포는 마른 폭포로 평소에는 물이 없다가 비가 오면 물이 쏟아지는 폭포로 변신하는 곳이다. 큰비가 내리면 사람들이 이 폭포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고 한다. 제주도는 대부분 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현무암 지형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지만, 폭우가 내리면 지하수가 넘쳐 절벽 위에서 한꺼번에 쏟아진다. 이 폭포는 비가 만드는 폭포인 셈이다.


폭포는 높이가 오십 미터로 규모가 상당히 컸다. 폭포옆에는 산장이 있어서 화면으로 비가 왔을 때의 엉또폭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가 내리고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산장에서는 어르신 내외분이 한라봉 농사를 지으면서 수확한 한라봉과 간식을 팔고 있었다. 산 아래를 가득 채운 노지 한라봉 나무를 보며 산비탈을 가꾸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면만 보고 후다닥 나오느라 간식하나 사지 않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엉또폭포를 나와 걷다 보면 틀낭숲길이다. 길은 대나무 숲과 억새숲도 있어 아름답지만 혼자 걸으면 좀 무서울 것 같은 곳이다. 곧이어 고근산 숲길이 나왔다. 오래된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기병대처럼 걷는 길 양쪽에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여름에도 덥지 않을 것 같은 그늘이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곧이어 854개의 계단이 나타났다. 우리는 허걱 했지만 봉사자분은 차분하게 하나하나 올라갔다. 계단 간격이 좁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몇 번을 쉬고 헉헉대며 고근산 정상에 올라갔다.


그런데 정상에 있을 줄 알았던 올레길 중간 스탬프가 없었다. 조금 더 올라가서 전망대가 있는 곳에 있다고 했다. 고근산 정상에서는 서귀포 앞바다가 훤하게 보였다. 미세먼지가 끼어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는 보이지 않았지만 범섬과 산방산, 송악산이 보였다.


다시 길을 떠나 전망대로 가는데 길이 이뻤다. 전망대에 도착해서 중간 스탬프가 정상이 아닌 전망대에 있는 이유를 알았다. 한라산의 모습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숨이 턱 막히게 아름다웠다. 게다가 중산간 마을들의 모습과 서귀포 바다의 섬들(지귀도, 섶섬, 문섬)이 한눈에 보였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 때와는 다른 길이었고 계단과 야자매트 길의 연속이었다.


마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정성스러운 반찬과 금방 한 밥은 맛있었다. 제주에서는 항상 생선과 고기는 필수로 나왔다. 바싹 잘 구운 조기와 어린아이도 편하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작게 자른 닭볶음탕에서 주인장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걸어서 하논 분화구에 도착했다. 하논 분화구는 화산활동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의 마을이다. 이곳 하논 마을은 4.3 사건으로 사라진 마을이다. 16호 100여 명이 살던 작은 마을이 경찰 토벌대에 의해 불태워졌다. 많은 주민들이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른 마을로 피신하여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 전소되었던 절 봉림사는 복원되었으나 하논 성당은 터만 남아있다. 이곳도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었다.


하논 분화구에는 제주도에서 유일한 논이 있다. 비가 오면 움푹 들어간 분화구 안에 물이 고여 논농사가 가능했다. 하논은 큰 물이 있는 논이라는 뜻이다.


걸매생태공원을 거쳐 7-1코스 종점인 올레여행자센터에 도착했다. 오르막이 길어 다리는 뻐근했지만 뿌듯하고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헤어졌다.


올레 7-1코스는 중산간의 마을과 숲길, 오름에서의 한라산 전망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숲길이 호젓하고 나무가 빽빽한 길이 길어서 혼자서 걷기에는 부담이 되는 곳이다. 아카자봉을 신청하거나 동행과 함께 하시기를 추천한다.


아홉 시에 시작한 일정이 오후 세시 반쯤 끝났다. 시간 여유가 있어 첫날 보려다 실패했던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의 그림을 보러 기당 미술관으로 갔다. 언덕에 있는 작고 조용한 미술관이었다. 바로 옆에 삼매봉 도서관과 서귀포 예술의 전당이 있었다. 변시지 화백의 그림은 실물로 보니 훨씬 생동감이 있었다.


오늘 하루도 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