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모든 것, 올레 14코스

튼튼한 신발과 함께 걸을 사람이 꼭 필요한 길

by 정안

오늘은 올레 14코스를 걷는 날이다.

함께 걷기(아카자봉)를 신청했다. 아홉 명이 시작점에서 만나서 안내사항을 듣고 출발했다. 날씨는 선선한 바람이 불었지만 맑고 화창했다.


올레 14코스는 저지예술정보화마을에서 출발해서 굴렁진 숲길을 지나 월령 선인장 자생지 입구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협재 해수욕장을 거쳐 한림항까지 가는 19.9킬로미터의 긴 길이다. 봉사자는 출발할 때 14코스는 돌길과 곶자왈이 많고 길이가 길어 힘든 길이라고 했다. 그래서 올레길의 취지대로 꼬닥꼬닥(천천히) 걷겠다고 했다.


마을길을 걷다 보니 날씨가 화창하고 기온이 올라가서 유채꽃이 활짝 피기 시작했다. 중간에 화장실이 별로 없다며 한 카페의 개방화장실에 들르라고 했다. 초콜릿 전문 카페였는데 분위기 좋은 곳이었다. 올레꾼에게 화장실을 개방해 주기 쉽지 않은데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오시록헌 농로'길로 들어섰다. 오시록헌은 아늑하다는 의미의 제주어이다. 밭길을 걷는 느낌이 오시록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농로는 오시록헌 하지만은 않았다. 숲길에 현무암이 바닥에 깔려 있어서 걷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넓게 펼쳐진 청보리밭은 인상적이었다.


걷다 보니 '굴렁진 숲길'이 나왔다. 움푹 파인 지형을 제주어로 굴렁 지다고 한다. 이곳부터는 진정한 돌길과 숲길의 콜라보였다. 14코스는 편한 길이 거의 없었다. 돌길과 숲길의 연속이었고 금능리 해변길도 해안가 돌길이었다. 현무암과 발바닥이 밀착해서 걸었던 긴 시간이었다.


숲 속에서 쉬면서 간식을 먹었다. 삶은 계란, 우유, 빵, 떡 각자 다양한 간식을 펼쳐 놓았다. 사탕을 가져간 나는 먹을 게 많아서 꺼내 놓지도 못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다들 마음이 넉넉했다. 뒤에서 걸어오면서 쓰레기를 줍는 참여자도 두 명이나 있었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만들어내는 끈끈함으로 처음 만났지만 금세 친근해졌다. 그럼에도 개인의 신상을 묻지 않는 불문율은 지켜졌다.


월령리 '무명천 산책길'에 들어섰다. 제주 4.3 때 군. 경 토벌대가 쏜 총에 맞아 아래턱뼈가 모두 부서지는 중상을 입은 진아영 할머니는 무명천으로 턱을 고정하고 생활하다가 90세에 돌아가셨다. 제주 4.3의 상징적 존재였던 진아영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길을 만들었다. 진아영 할머니의 후손들은 그분이 사셨던 집을 제주도에 기부하여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그래서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가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었다. 긴 세월을 아픔 속에서 사셨을 할머니의 평안을 기원하며 지나왔다.


걷기가 힘들어질 즈음 중간 스탬프가 있는 월령 선인장 자생지 입구를 향해 가는데 갑자기 푸른빛과 쪽빛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바다가 나왔다. 모두 탄성을 질렀다. 맑은 날씨와 더불어 바다의 빛깔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선명하고 예뻤다. 바다옆은 천연기념물인 제주 월령리 선인장 군락이었다. 바다 옆길이라 편할 줄 알았는데 해안가 현무암 돌길을 또다시 걸었다. 등산화가 아니었다면 발목이 삐끗하거나 발바닥에 물집을 잡혔을 것이다.


바다 건너 비양도가 보였다. 들어가 보면 아름다운 섬이라고는 하는데 멀리서 봤을 때는 탈모가 시작된 어느 남성의 머리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해안가 돌길을 걷다 보니 '해녀콩 서식지'라는 팻말이 있었다. 해녀콩은 강낭콩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는 콩이다. 물질을 해야 하는 해녀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먹었는데 간혹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금능과 협재의 바다는 흰모래와 파랑과 쪽빛이 층위를 이루는 맑고 아름다운 바다였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옆 하얀 모래사장에 나와서 바다를 보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누군가 신발을 벗고 바닷길을 걷자고 했다.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고 얕은 바다로 들어갔다. 신발 속에서 신음하던 발이 기쁜 환호성을 지르는 느낌이었다. 물은 시원했고 하얀 모래는 부드러웠다. 초록의 미역이 발을 간지럽히고 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왔다. 물속에서 걸으면서 다들 아이처럼 좋아했다. 긴 시간 걸었던 피로가 한방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금능리 해장국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처음에는 해장국이 맛있어야 해장국이지 하고 생각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해장국 안에 들어있는 재료들이 신선하고 정성 가득이었다. 든든하게 밥을 먹고 나머지 육 킬로미터를 걸어서 코스의 종점인 한림항에 도착했다. 하루에 이십 킬로를 걷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걸음수가 삼만보였다.


올레 14코스는 걷는 길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을 모두 보여준 길이었다. 돌길, 거친 숲길, 현무암길, 바닷길, 해안가 현무암길. 14코스를 걸을 때는 간식과 등산화 같은 튼튼한 신발을 꼭 준비하시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혼자 걷지 마시라. 거칠고 외진 숲길이 많다.


내일은 13코스를 혼자 걸을 예정이었는데 비가 온다고 해서 내일 아침 날씨를 봐서 결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