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주방 수납장에 그릇을 올려 놓는데 선반이 와르르 무너졌다.
무게를 못이긴 선반 받침대가 부서진 것이다. 순간 당혹스러움과 짜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갑자기 통쾌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어차피 정리를 해야 한다. "바로 이때야!" 하는 감정이 훅 올라왔다.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모든 그릇을 꺼냈다.
참으로 다양한 그릇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는 내가 결혼할 때를 대비해 틈나는 대로 그릇이며 냄비 등의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장만해서 안방 장롱 위에 전리품처럼 쭈욱 올려 놓았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만만하게 결혼을 하지 않았다. 급기야 엄마는 노처녀인 딸의 안부를 전하는 게 싫어서 남의 결혼식에 가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늙어가는 딸을 치우고 싶어 더 열심히 살림을 사들였던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이랑 계까지 부어 40평대 아파트 거실도 다 덮을만한 대나무 돗자리까지 샀다(지금까지 제대로 깔아보지 못했다. 너무 커서...).
그 기나긴 대자리는 장롱 위를 가득 채운 그릇과 더불어 나를 압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동생은 오래 사귄 남자 친구가 있었다.
늘 집 앞에 뻗대고 서있는 빨간 프라이드도 꼴 보기 싫고 장롱 위 압박품도 치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서 미안해하며 내 눈치를 보는 엄마에게 나는 시원하게 먼저 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오래 두면 유행 타서 나중에 쓸모 없어진다고 그렇게 간청을 해도 그 그릇들 중 한 개도 동생에게 주지 않았다.
작전 실패... 일 년 후 나는 결혼을 했고 엄마 장롱이 이고 지고 있던 물건들은 다 나의 신혼집으로 왔다.
나는 당시 정리는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것부터 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수납장에 차곡차곡 잘 정리해서 넣어 놓으면 되는 줄 알았다. 필요한 그릇을 꺼내기 위해 앞에 있는 많은 것을 꺼냈다 넣었고 있는 줄도 몰라서 비슷한 것을 또 샀다.
우유를 먹으면 주는 사은품 그릇과 컵들, 화장품을 사면 주는 플라스틱 용기들도 모두 모아 두었다.
식구는 네 명이었는데 그릇은 50명은 먹일 만큼 보유하고 있었다.
지금의 우리 집에 15년 사는 동안 5명 이상의 손님이 와서 먹고 잔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친정식구들, 시댁 식구들, 남편 친구 부부들이 온 게 거의 전부이다.
누구를 위한 그릇들인가!
우리 네 식구 밥그릇 국그릇 하나씩과 여분 2벌을 남기고 우리 식구 수를 기준으로 가장 좋은 것만 최소한으로 남겼다.
숟가락 젓가락을 비롯하여 컵과 주방용품들을 모두 정리했다. 10년이 넘도록 오지 않는 손님 몫은 없다.
쓰던 그릇은 타인에게 주는 것이 어렵다. 할 수 없이 마대를 사서 배출했다.
버리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렇게 지구를 오염시킬 권리가 내게 있을까...
다시는 쉽사리 물건을 사지 않으리라. 사은품도 받지 않고 예쁘다고 혹해서 사지도 않을 것이다. 버릴 때를 생각하자!
"마트는 창고다. 필요할 때 가지러 가면 된다"
그릇 정리를 마치고 주방의 중심에 있는 냉장고를 정리했다.
우선 냉동실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 식탁 위에 죽 늘어 놓았다. 까만 봉지까지는 아니어도 봉지봉지, 병병이, 통통이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가 삶아 주신 시래기와 명절 때 싸주신 전과 떡, 엄마가 텃밭농사를 지어 주신 고춧가루, 깨소금, 다진 마늘... 각종 냉동식품, 삼겹살부터 다양한 종류의 고기와 몇 년 된 블루베리, 건조버섯 등등.
다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이고 땀 흘려 지은 농사의 수확물이고 일해서 번 돈으로 산 음식들인데 이렇게 방치된 게 마음 아팠다.
우리 엄마는 자식들 주고자 땀과 정성으로 이것들을 가꾸셨을 테고 우리 어머니는 아이들이 좀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듬고 삶고 해서 주신 것일 텐데...
우선 1년 이상된 것과 앞으로도 먹지 않을 것 같은 음식들을 분류해서 버렸다.
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은 양념류와 앞으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남겼다.
환경과 보관의 편의를 위해 원래 봉지가 보이도록 투명 지퍼팩에 모두 정리했다. 음식을 다 먹으면 지퍼백은 씻고 말려서 재사용했다.
냉동실 배치를 종류별로 다시 했다.
양념류는 양념류대로 고기 종류도 한 곳에 멸치 등 건조 해물은 그것들대로.
냉동실을 열면 한눈에 모든 것이 보이도록 앞쪽으로 배치했다. 그랬더니 무엇이 있는지 알아서 있는 것 위주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었고 중복해서 사는 일도 줄어들었다.
냉장실도 이런 식으로 정리했다.
밀폐용기에 담겨 일주일 이상을 들락거렸던 몇 종류의 김치와 마른반찬은 먹을 때마다 조금씩 덜어서 먹도록 했다.
가족이라도 침 묻은 젓가락이 오고 간 반찬은 위생적일 리 없다. 먹을 때마다 조그만 그릇에 덜어서 먹고 최대한 다 먹도록 노력하고 남으면 버렸다.
"이제 냉장고는 3분의 1만 채울 것이다" 다짐했다.
아이가 유치원생쯤이었을 때 이야기다.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가 전화를 했다.
냉장고에 닭볶음탕이 있는데 먹어도 되냐는 거였다. 나는 유리냄비라 위험하니 엄마가 퇴근하고 바로 가서 챙겨줄 거니까 좀 참으라고 했다. 아이는 "지금 먹고 싶은데..." 하며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아이가 울먹이며 전화를 했다.
먹고 싶어서 닭볶음탕 유리냄비를 꺼내다가 떨어트렸다는 것이다.
나는 사무실도 바빠서 여유가 없는데 짜증이 나서 아이한테 화를 내며 한바탕 퍼붓고 퇴근해서 집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엄마한테 혼날 것이 두려운 아이는 그 작은 손으로 깨진 유리며 음식물 쏟아진 것을 모두 치워 냉장고 앞이 깨끗했다.
순간 울컥했다... 그때의 일은 마음에 상처로 아직도 남아있다. 냉장고를 보면 그 생각이 난다.
직장이 뭐라고... 아이들은 내가 키운 게 다가 아니었다. 자주 스스로 컸고 아이가 나를 키우기도 했다.
둘째 아이는 과일을 굉장히 좋아했다. 집에 과일이 없으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 엄마. 사과도 없고 먹을게 아무것도 없어"라고 말하곤 했다.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아이는 학원에 가고 싱크대에 사과껍질이 희한한 모양으로 잔뜩 흩어져 있었다.
뭔가 하고 보다가 피식 웃었는데 마음 한켠은 쓰렸다. 사과를 먹고 싶은데 아직 어려서 깎아 먹을 줄을 모르니 감자칼로 껍질을 벗겨 사과를 먹고 학원에 간 것이었다.
냉장고에는 나와 가족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영혼의 집처럼...
(근데 남편은 주방에 얼씬도 안 했나 보다 기억이 별로 없는 걸 보니...ㅋ)
김치냉장고,
엄마와 어머니가 해주신 다양한 김치들이 가득 차 있었다. 우선 다 꺼내서 양이 줄어든 김치는 작은 통으로 옮기고 앞으로도 먹을 가능성이 없는 김치는 버렸다.
그랬더니 공간이 생기고 밖에 나와 있던 쌀이나 잡다한 것들을 넣을 수 있었다.
김치냉장고 맨 아래칸인 과일 칸을 정리하는데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아이가 초등학교쯤인가 그날도 퇴근해서 냉장고 과일 칸을 열었는데 수박 꼭지 부분이 삐뚤빼뚤 잘라져 있고 수박을 파먹은 흔적이 있었다.
나중에 아이한테 물어보니 수박은 먹고 싶은데 자를 수가 없어 꼭지 부분만 잘라서 숟가락으로 파먹었다고 했다.
수박 꼭지를 칼로 자르기에도 어린 나이였다.
위험했을 순간을 생각하니 가슴이 뻐근해졌다... 그 이후로 나는 수박을 사면 늘 깍둑썰기를 해서 한번 먹을 양만큼씩 통에다 담아 두었다.
주방을 정리하며 그곳에 서서 내가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이 떠올랐다.
고뇌와 보람, 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이 밀려왔고 이런저런 기억들이 나를 찾아왔다.
신혼 때 배가 불러서 다리가 퉁퉁 붓는데도 혼자 종종 대며 집안일을 하다 거실에 비스듬히 누워 TV만 보고 있던 남편을 보고 속상하고 열 받아서 대판 울음을 터트리던 일부터
어린 아들들과 핫케이크를 만들며 신나 했던 기억, 음식에 관심도 소질도 없는 내가 끼니를 준비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주방에 서서 혼자 쉬었던 한숨들,
처음으로 시어머니 생신상을 차리던 날 밥은 설고 반찬은 부족해서 당황했던 기억...
엄마는 매 끼니 우리를 먹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민을 했을까....
풍족하지도 않았던 그 시대에.
새삼 엄마가 존경스럽고 고마웠다.
수납장에 꽁꽁 들어차 있는 쓰지 않는 콩나물 재배기, 요플레 제조기와 수많은 유리병들을 버리며 주방정리를 마쳤다.
그러나 나는 주방의 물건과 음식들만을 정리한 게 아니었다.
결혼해서 살아온 내 인생의 기억들을 함께 소환했다. 아팠고 그리웠다.
그렇게 나와 가족들의 삶은 흘러왔고 단단해졌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어 보고 수납장도 열어 본다.
평화롭고 아름답다.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최소한으로 더 이상 늘리지 않고 작고 소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