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흔적이 물건으로 쌓여 있는 곳
우리 집에는 두 개의 창고가 있다.
하지만 창고에 정확히 뭐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15년 전 이사 올 때 넣어둔 그대로 이기도 하고, 여행을 갈 때나 필요한 물건을 빼낼 때 미로를 헤매듯 찾고 난 후 대책 없는 물건의 산더미에 질려 바로 닫아 버렸으니까. 게다가 두 개밖에 없는 창고지만 물건이 어디 있는지 몰라 양쪽을 뒤지기 일쑤였다.
창고는 우리에게 미스터리한 장소였다.
가득 차 있는데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물건 하나를 찾기 위해 너무도 많은 수고를 요구하는 곳.
창고문을 열어젖혔다. 모두 꺼냈다.
허걱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먼저 보인 것이 남편이 결혼 전에 산 텐트 더미... 이 텐트 더미를 보니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결혼 전 아주 크고 좋은 텐트를 자기가 장만했다며 결혼하면 많이 놀러 다니자고 했다. 나는 좋아라 했다. 근데 결혼 후 텐트 값 할부금이 10개월 동안 나왔다.
낚시도구, 아이들 튜브 여러 개, 심지어는 발을 끼는 유아용 튜브까지 있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수영장으로 현장 학습을 간다며 튜브와 수영복을 챙겨 오라고 해서 챙겨서 보냈다. 퇴근해서 집에 가니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반 35명 모두 내 튜브를 보고 웃었어. 선생님도 웃으셨어”
알고 보니 여러 개 있는 튜브 중 하나를 보냈는데 하필 그게 유아용으로 두발을 끼는 튜브였다. 때가 지나면 정리해서 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줬어야 하는데 틀어쥐고 있어서 생긴 일이었다. 민망하고 미안했는데 아이는 반 친구 모두 재미있어 했다며 다른 기색이 없어 다행이다 싶었다. 그날 밤 잠든 아이를 쓰다듬으며 가슴이 좀 아팠다. 그러고도 그 유아용 튜브를 필요한 데가 있겠지 하며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아이가 커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다양한 물놀이 용품과 아쿠아 슈즈, 사용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겨울철 등산용 아이젠과 헤드렌턴들...
자리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캐리어였다.
캐리어가 크기별로 여러 개, 고장 난 캐리어까지 수리해서 쓴다고 가지고 있었다. 우리 집 캐리어는 국적이 다양하다.
내가 회사에서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큰 캐리어가 없다고 하니 알뜰한(?) 남편이 시장에서 캐리어를 하나 사다 줬다. 서유럽을 자유여행 형식으로 갔는데 일정이 촉박해 캐리어를 끌고 기차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숙소까지 뛰고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9일 정도의 일정이어서 옷만 넣어도 짐이 꽤 무거웠다.
그런데 둘째 날인가 여행 초기에 내 캐리어 바퀴가 쑥 빠져버렸다. 바퀴를 고쳐 주려던 직원이 손도 다치고 일행들이 내 캐리어 끄는 것을 도와주려고 신경을 쓰는 게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지도 못하고 들어서 이동하는 것도 힘들었다. 마침 스위스에서 잠깐 시간이 있어 매장에서 캐리어를 고르고 계산대에 가서 여권을 먼저 내밀었더니 계산하는 직원이 당황스러워했다. 기차역에 있는 일반 마트였는데 면세점으로 착각한 것이다. 이 일은 두고두고 웃음거리였다.
그래서 캐리어 한 개는 스위스 국적이다.
가족 넷이서 북해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남편은 회사에서 급한 일이 생겨 못 가고 아들 둘과 나만 여행을 가게 되었다. 캐리어 하나가 산 지 이십 년 가까이 되어 낡기도 했고 고장이 한번 나서 고치기도 한 것이어서 불안한 마음에 새로 사려고 했는데 남편이 잘 고쳐 놓은 것이니 괜찮다고 가져가라고 했다.
그런데 북해도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려는데 캐리어 손잡이가 접히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했다. 버스 짐칸에 캐리어 손잡이를 편 상태로 넣고 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패키지여행이니 그나마 다행이었지 배낭여행이었으면 무척 곤란한 상황이 생길 뻔했다.
고쳐서 쓰면 된다며 새 캐리어 사는 것을 말리던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호텔을 옮길 때마다 불편하게 끌고 다니다 마지막 날 자유시간을 이용해 캐리어를 겨우 샀다. 고장 난 캐리어를 버릴 곳이 없어 돌아오는 날 공항 화장실에 속이 보이도록 펼쳐서 버렸다. 혹여라도 폭발물로 오해할까 봐. 캐리어를 그렇게 버린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캐리어 또 한 개는 일본 국적이다.
여행에서 캐리어가 고장 나는 일만큼 낭패스러운 게 없다. 모처럼 떠난 기분 좋은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 나는 좋은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폐기물 딱지를 붙여 미련 없이 버렸다.
액자, 사진이 새겨진 액자도 마찬가지지만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는 버리기가 참 난감했다.
액자 중에 돌아가신 지 십오 년이 넘은 아버님 사진도 있었다.
장례식날 쓴 아버님 사진을 걸어두겠다며 남편이 집으로 챙겨 온 것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심정을 생각해서 묵인했다. 그러나 우리 집 벽에는 결코 걸 수 없다고 했다. 돌아가신 분 사진을 걸어놓고 사는 건 너무 무섭다고 사정을 해서 잘 포장해서 넣어두기로 했다. 그동안 남편은 그 사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아이들 태권도 학원이나 학교에서 액자형태로 만들어서 보내준(구매한) 사진들도 꽤 있었다. 액자가 차지하는 크기와 그 거칠음이 싫었다. 그래서 액자 안 사진은 모두 빼서 투명 파일에 보관하고 액자틀은 폐기물 딱지를 붙여서 버렸더니 부피가 거의 10분의 1로 줄었다. 열개가 넘는 액자에서 못을 하나하나 뜯고 사진을 꺼내는 고된 작업을 하고 나니 손이 얼얼했다. 내 인생에 액자는 다시없다!
수많은 배낭과 가방들
가방가게를 방불케 했다. 언제 이렇게 사모았는지 네 식구의 가방이 수십 개였다. 특히 내 것이 많았다. 가방과 신발에 관심이 많은 나의 소비습관의 결과물이었다.
등산용, 아이들 입학할 때마다 사주었던 책가방, 배낭을 좋아하는 나의 다채로운 배낭, 여행 갈 때 허리에 매는 쌕, 에코백, 출근용 가방까지 아주 많았다. 일단 내 것부터 정리했다. 실용적이라 자주 사용했던 것만 남기고 언젠간 들겠지 한 배낭들 중 쓸만한 것은 나눔을 하거나 당근 마켓에서 판매하고 나머지는 버렸다. 아이들은 의사를 물어 앞으로 안 쓴다고 하는 것 중 상태가 좋은 것은 동생 아이들이 쓴다면 주고 나머지는 버렸다.
남편은 무언가 사는 것도 안 하지만 있는 물건을 버리는 것도 무척 싫어했다. 신중하게 사고 버리지 않고 최대한 사용하려고 하지만 버리지도 않고 정리도 안 하는 이상한 미니멀리스트(ㅋ). 그래서 몇 개 안 되는 남편 배낭은 그대로 두었다.
가족의 물건을 내 맘대로 처분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정리를 하면서 배웠다.
그래도 몰래 버린 것이 꽤 있다. 일일이 허락을 받고 버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리고 정리의 열정이 식어 버릴 수도 있어서였다. 가족들이 뭔가를 찾으면 무조건 모른다고 하거나 글쎄... 하며 얼버무린다. 그러면 원망을 듣는다. "또 버렸네 버렸어. 제발 내 물건 좀 건드리지 말아주세욧!" 뭔가가 없어지면 또 나를 의심한다. 억울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의 소행임을 이곳에 고백한다. 그래도 전쟁 같은 정리를 마치고 집은 어느 정도 미니멀 해져서 이제 그럴 일은 별로 없기는 하다.
어느 날 아들이 본인의 방문 앞에 포스틱을 하나 붙여 놨다. "내 물건에 제발 손대지 마쇼!"
김치통, 소풍용 대바구니 크기별로, 아이스박스 대, 중, 소, 브루스타, 항아리, 수많은 플라스틱 통, 걸레가 수십 개,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모아놓은 빈 화분들,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멀티탭들, 사은품이나 기념품으로 준 수많은 핸드폰 충전기들, 십 년 치는 될법한 남편의 업무수첩... 창고는 그야말로 잡동사니의 천국이었다.
일단 창고별로 보관할 물건 종류를 정했다.
같은 종류의 물건이 여기저기 있으면 찾기도 쓰기도 정리하기도 어렵다. 책을 정리할 때 남겨둔 책장 하나를 창고에 넣고 물건을 배치하니 물건들이 한눈에 보이고 정리도 쉬웠다. 두 개 있는 물건은 무조건 하나만 남겼고 앞으로 쓸 것 같지 않은 물건과 걸레도 쓸 만큼만 남겼다. 창고에 있는 물건은 몇 년 동안 꺼내지도 않았던 것이라 없어도 살아가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이었다. 대부분 버려도 된다는 이야기다. 제 역할이 끝난 물건들은 보내주어야 한다.
두루마리 휴지나 키친타월, 치약 등은 바로 꺼내 쓸 수 있도록 포장 비닐을 뜯어 수납했고 샴푸, 비누 등은 욕실에 있는 것까지 모아 종류별로 분류해 놓으니 남은 수량을 알 수 있어 중복해서 사지 않게 되었다.
창고정리는 문을 열어 젖히고 모든 물건을 꺼내 펼쳐 놓는 용기만 있으면 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다.
모든 물건을 꺼내서 놓았을 때 버릴 것이 눈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남길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정리는 버리기와 수납장소 정하기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창고는 문을 열었을 때 모든 물건이 보이도록 배치했다. 내 창고에 뒷줄은 없다. 모두 앞줄 정렬!
폭풍 같은 창고정리를 마치고 가끔 창고문을 열어 속을 빤히 들여다본다.
물건들이 평화롭고 기분 좋은 상태로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고 제자리에 있다. 그래도 매의 눈으로 버릴 것이 더 있나 살펴본다. 새로운 것을 사서 이곳의 질서를 흩트릴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기분 좋게 문을 닫는다.
나의 정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내 인생이 진행 중이듯이.
왜 집안을 정리하면 사고방식이며, 삶의 방식, 인생이 달라질까?
정리를 통해 "과거를 처리하기” 때문이다.
정리를 해서 방이 깨끗해지면 자신의 기분이나 내면과 직면하게 된다. 외면했던 문제를 깨닫게 되어 좋든 싫든 해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리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인생도 정리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곤도 마리에 "정리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