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좋아했다.
그래서 다양한 식물을 키웠고 많은 화분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는 화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곳을 나의 작은 정원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엄마도 식물을 좋아해서 아이들을 돌봐주러 오시는 8년 동안 아파트 단지에 장이 서면 화분 한두 개를 사서 우리 집에 두고 키우셨다. 나도 크고 작은 화분들을 틈틈이 샀더니 화단을 넘어 앞 베란다 한쪽이 화분으로 가득 찼다.
만족스러웠다.
계절별로 꽃도 피고 아주 작은 나무 묘목을 사서 클 때마다 화분 크기를 키워주면 커다란 나무로 자라나서 보람도 있었다.
허브잎에서 나는 향기와 연초록의 싸리나무가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드는 모습, 번식력이 좋은 다육이의 마디를 따서 심기만 하면 금세 화분 한가득 자랐고 오색 마삭줄은 커다란 화분에 심었더니 무성해져서 어디선가 무당벌레도 날아오고 달팽이도 그 속에서 자라는 신기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퇴근해서 식물들을 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졌다.
주말이면 화분을 정리하고 옮기고 재배치했다. 쇠로 된 삼단짜리 화분 거치대가 녹이 슬어 철수세미로 닦다 녹초가 되기도 했고 물을 주려고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 하나하나를 옮겨서 물을 주고 물이 다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가져다 놓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러나 나만 열성이지 가족 누구도 이곳에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 그냥 두어도 잘 자라는 식물을 왜 그렇게 일을 만드냐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피곤하다고 한다고 타박을 했다.
한 번은 직장에서 여름에 해외연수를 열흘 갔다 왔는데 화단에 참사가 일어났다.
잎이 얇은 식물인 트리얀과 아이비 그리고 싸리나무는 물론, 웬만해선 잘 죽지 않는 나무인 남천까지 잎이 싹 다 말라죽었다. 헐... 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했더니 물을 줘야 되는지 몰랐단다.
잎이 말라서 색이 바래고 축 처져서 그냥 보기만 해도 알만한 모습이었는데 우리 가족들은 이 식물들에게 관심 자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가족 중 누구에게도 화분에 물을 주라는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조금 후회가 되었다. 물 주는 거 정도만 부탁했어도 가족들에게 화분의 존재감은 있었을 텐데...
언젠가 시장에서 작은 묘목 두 개를 사서 하나는 베란다에 하나는 목욕탕에 놓아두었다.
베란다에 둔 묘목은 쑥쑥 자라서 화분을 크게 옮겨 주었더니 나무로 커다랗게 자랐다. 목욕탕에 있던 묘목은 아주 조심스럽게 연둣빛 이파리 두세 개를 내밀더니 몇 달을 그 상태로 있었다. 가여워서 베란다로 내다 놓으니 며칠 후 시들어 죽었다. 치우려고 화분에서 나무를 뽑으니 뿌리가 썩어 있었다.
식물은 담긴 그릇의 크기만큼 자라는 거였다. 게다가 햇빛과 바람이 꼭 필요했다.
엄마는 가끔 텃밭에서 키운 파를 뿌리째 흙을 넣어 주신다. 그대로 두고 가끔씩 물만 조금 넣어주면 겨우내 싱싱한 파를 먹을 수 있다. 감자 또한 냉장고가 아닌 실온에 두면 싹이 무성하게 자라고 물에 꽂아 두기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잎을 피운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있는 수많은 식물에는 생명이 한가득이다. 내 땅 한평 없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생명력... 이때부터 나는 포실한 땅 한평 가지고 싶었다.
이 엄청난 생명력이 싹을 내고 꽃을 피울 수 있는 땅이 필요해서 시청에서 분양하는 텃밭을 신청했는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던지 높은 경쟁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언젠가는 진짜 땅에 식물을 심고 가꾸어 보리라...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동백나무 화분이 한 개 있었다.
어느 날 문득 꽃을 피우더니 그 후로 매년 3월이면 어김없이 붉은 동백꽃을 피웠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봉오리가 들기 시작하는 건 10월 정도부터였다. 우리가 아이를 열 달 동안 뱃속에 품고 있듯 동백도 꽃봉오리를 몇 달간 품고 있다 세상에 내놓는 거였다. 자연의 신비 앞에 숙연해진 경험이다.
그러나 아이가 고3일 때였는데 누가 집안에 동백나무를 키우는 게 아니라고 했다. 동백은 꽃 한 송이가 통째로 똑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똑 떨어진다... 아이가 고 3만 아니었어도 흘려 들었을 말이었는데 귀에 꽂혀 버렸다. 다음날 저녁에 동백나무 화분을 아파트 단지 흙 화단에 옮겨 심었다. 우리 집에서 방출한 것이다.
외출할 때마다 잘 자라나 살폈다.
실내에서 오랫동안 자라서 그런지 더 좋은 환경인 흙과 바람과 햇빛이 있는 곳이었는데도 적응을 못하고 나날이 왜소해져 갔다. 동백꽃은 피지 않았고 몇 년을 그렇게 살더니 어느 날 집에 들어가다 보니 나무가 죽었다. 마음이 아팠다. 매년 탐스러운 동백꽃을 피웠었는데...
이렇게 이기적으로 생명을 대해도 되나 하는 회의도 들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나의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고 공간을 지나치게 산만하게 하는 화분을 정리하기로 했다.
나무라서 키우기 쉬운 남천 일곱 개만 남기고 화분을 모두 정리했다. 막상 정리를 해보니 누군가에게 줄 만한 화분이 몇 개 없었다.
아픈 마음을 접고 식물을 뽑아서 아파트 흙 화단에 심고 화분은 분리 배출했다. 흙에서 뿌리를 내려 살아갔으면 하고 심었지만 살아나지는 못했다. 쓸만한 화분은 깨끗이 씻어서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파트 분리 배출장에 내놓았다.
화분은 정리의 과정이 생각보다 번거롭지 않았다.
흙과 식물은 아파트 흙 화단에 배출하면 되고 쓸만한 화분은 깨끗이 씻어서 아파트 분리 배출장에 가져다 놓고 버릴 화분은 마대를 사서 배출했다. 화분의 대부분이 흙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앞 베란다는 빈 공간이 되었다.
빈 공간이 주는 평화로움에 생명력에 대한 죄책감도 무심한 가족들에 대한 원망도 사라졌다.
일곱 개의 화분으로 나는 자연을 느끼고 돌보며 살아갈 것이다. 나무와 꽃이 보고 싶으면 집 앞 공원이나 식물원, 가까운 산에 가면 된다.
텃밭 신청에서 떨어진 날 화단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문득
'이곳을 텃밭으로 만들까... 텃밭 상자를 만들어서 상추도 파도 쑥갓도 심고 가꾸면 되겠네'
마음이 설렌다.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