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먹는 한 끼의 식사는 누군가의 수고로 만들어진다.
먹는 사람이야 그저 매일 먹는 한 끼겠지만 준비하는 사람은 무엇을 준비할까, 재료는 있나, 너무 자주 먹는 건 아닌가, 가족들이 좋아할까, 성장기 아이들에게 영양가 있는 걸 해줘야 하는데.... 이런 많은 생각으로 한 끼의 식사를 마련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 중에 하나가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었다.
요리에는 소질도 흥미도 없던 내가 그렇게 많은 끼니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우울했다.
몸이 아파도, 피곤해서 눈뜨기 힘든 날에도, 장기 출장을 다녀와서도 식사 걱정을 해야 했다.
남편은 내가 없으면 먹는 걸 어떻게든 해결하는 데 내가 나타나는 순간 손을 딱 놓고 부엌에서 사라져 버린다.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남편과 아이들은 밥돌이라 밥 종류를 거의 먹어야 했고 국이나 찌개가 있어야 했다.
주방에 서서 홀로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준비하다 뜨거운 냄비에 데고, 혼자 화를 낸 날도 많았고, 울듯한 기분이 된 날도 많았다.
뭘 먹을지 당최 대책이 없어 짜증 나는 날도 많았다.
외식도 한두 번이지 매번 사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외식은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하는 시어머니의 아들인 남편은 외식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다.(그럼 본인이 직접 해 먹던가!)
가정의 평화와 건강을 위해 참았고 어떻게든 식사를 준비했다. 그렇게 이십 년을 살았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으면서 나에게 봄날이 찾아왔다.
예전 우리 집 주말 아침 풍경은 이러했다.
내가 주방에서 정신없이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계란 프라이를 하고 식탁을 차려 가족들 모두를 깨우러 이방 저 방 동분서주. 완전히 나의 원맨쇼였다.
그러다가 지쳐서 일어나지 않는 가족들에게 짜증을 냈고 상을 다 차리고 밥을 먹으려고 앉으면 에너지 고갈상태였다. 그러니 식사시간이 즐거울 리가 없었다. 밥을 먹고 나서 설거지도 내 차지였다. 간간이 외식을 하기는 했지만 집에서 먹는 날은 이러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으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대학생이 된 큰아들은 학교 앞 원룸을 얻어 본거지를 옮겼고 작은 아들은 군대에 갔고 남편은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을 해서 회사 앞 숙소에서 살게 되었다.
이 흩어짐의 의미는 생각보다 컸다.
나의 수고로만 이루어지던 식사가 자연스럽게 각자의 끼니는 각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십여 년 만에 휴가를 받은 기분이었다.
평일에는 혼자 지내고 주말에만 가족들이 모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조용하고 넓은 공간이 말간 얼굴로 나를 맞이하고 좋아하는 과일이나 채소, 요플레 등을 간단히 먹고 출근을 한다.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오면 나를 맞이하는 정갈한 공간. 간단히 저녁을 먹고 집 앞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와 책을 읽거나 뒹굴거리며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그 시절 집은 나에게 완벽한 휴식의 공간이었다.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
아이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가지고 있다.
그래도 이건 너무도 아름다운 평화였다!
그렇게 1년여를 홀로 지내고
작은 아들이 제대를 하고 남편은 근무지를 옮겨 집에서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가족이 다시 모이게 되었다.
어느 날 내가 국이나 찌개 끓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자 아들들이 자신들은 국이나 찌개가 없어도 괜찮고 심지어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남편은 그래도 국은 있어야지... 하면서 내 눈치를 봤다.
나는 이제부터 우리 집 식사에 국과 찌개를 끓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집은 일주일에 한 번 식재료를 집으로 배달해서 먹고 있다.
그동안은 배달 온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어 두고 필요할 때 씻어서 요리를 하다 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안 먹어서 버리는 것도 꽤 있었다.
방법을 바꿨다.
금요일 식재료가 오면 모든 재료를 씻어서 먹기 좋게 잘라 통에 담아 두었다.
과일도 씻고 오이는 아예 잘라서 여러 개의 통에 나눠 담고, 두부도 잘라서 넣어두었다. 양배추와 브로콜리는 삶아서 넣었다.
땅콩도 껍질을 까고 호박과 양파도 가지도 바로 조리할 수 있게 잘랐다. 하루만 이 일을 하면 일주일이 편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김치냉장고 한쪽을 야채칸으로 설정하고 그곳에 다 모아 두었다.
식사 때는 이 재료 들을 꺼내서 담고, 잘라 놓은 재료들을 오븐에 구우니 시간과 수고가 엄청나게 줄었다.
야채들을 다 넣고 들기름을 살짝 뿌려 오븐에 구우면 프라이팬에 부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기름도 적게 들었다. 생야채와 제철 과일, 구운 야채와 두부 혹은 구운 계란을 개인접시에 담아 밥과 먹었다.
자신의 접시에 있는 것은 다 먹어야 해서 고르게 영양을 섭취할 수 있고 서로 젓가락이 오고 가지 않아 위생적이었다. 식사 준비에 불을 별로 쓰지 않으니 힘이 덜 들었다.
아침식사
씻어둔 야채와 과일을 개인접시에 기본으로 담고 구운 계란, 떡, 잼 바른 빵 중 하나를 교대로 담아서 두유나 사과주스와 먹었다.
신세계였다. 너무도 편리했다.
불을 전혀 쓰지 않고 아침을 준비할 수 있었다. 준비시간도 대폭 단축되었다.
1시간씩 걸리던 아침식사 준비시간이 20분으로 줄었고 영양가면에서도 훨씬 더 좋았다. 야채와 과일, 탄수화물 혹은 단백질이 골고루 있는 아침식사였다.
평일 저녁식사
아침에 해둔 밥과 야채 등으로 귀가시간에 따라 각자의 방식으로 먹는다.
자신이 먹은 것은 바로 설거지를 한다. 그렇게 하니 주방 개수대에 쌓여있는 설거지가 없어 자신의 것만 처리하니 부담이 없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주말 식사
야채와 제철 과일, 부치거나 오븐에 구운 호박, 감자, 두부, 야채를 개인접시에 나눠서 담는다. 야채 담기, 부치는 일, 밥을 푸고 식탁을 차리는 일을 서로 나눠서 할 수 있어서 좋다.
삼겹살이나 소고기, 전복 등 단백질이 있는 음식 한 가지도 곁들인다.
각자 소량의 밥과 개인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는다. 식탁 가운데에는 조금씩 덜어낸 김치 종류와 소스, 쌈장이 있다.
많은 반찬을 식탁에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설거지도 줄고 일거리도 줄었다.
예전에는 식구들을 깨울 때 얼른 일어나서 밥 먹으라고 하면 잘 일어나지 않았다.
근데 지금은 일어나서 식탁 차리고, 밥 푸고, 이것 좀 도와줘 라고 하면 훨씬 더 잘 일어난다.
역할을 주었을 때 가족들은 훨씬 자발적이었고 그 역할을 기분 좋게 해냈다.
누군가의 지나친 수고와 헌신을 요구하지 않는 식탁은 평화롭다.
그 평화로움의 힘으로 팍팍한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길을 가다 마주치는 누군가에게 온기 어린 시선이라도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