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하나 늘 때마다 일거리도 하나씩 늘어난다.
사서 하는 수고를 우리는 무심히 하고 있다.
물건을 사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내 노동의 대가이다. 게다가 내 노동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내가 노동하는 동안 아이들은 학원과 어린이집을 전전하고 혼자 집을 지켜야 하고 혼자 밥을 먹기도 해야 한다.
보고 싶은 부모의 얼굴을 해가 진 저녁에나 겨우 볼 수 있고, 때때로 허리가 아픈 할머니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출동해야 한다.
인터넷 쇼핑몰을 기웃거리다가 소파에 앉을 때 허리에 대는 기다란 쿠션 2개를 샀다. 근데 물끄러미 소파에 놓은 쿠션을 보다가 깨달았다.
일거리가 늘었구나!
저 아이를 최소 2주에 한 번은 커버를 벗겨서 빨고 다시 씌우고 가끔은 햇빛에 널거나 먼지를 팡팡 털어줘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졌다.
쓰고 있던 작은 쿠션으로도 가능했는데... 게다가 소파에서 TV를 보다 졸다를 반복하다 잠을 자러 가는 우리 집 1번에게 더 편안한 환경을 제공해 주고 말았다. 후회가 밀려왔다.
잠시 잊었던 것이다.
쇼핑몰을 일없이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쓰던 작은 쿠션을 버렸다. 그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 이번 연휴에 나는 내 옷장을 열어젖혀서 한바탕 정리를 해야겠다.
단순한 후드티를 사고 싶었다.
사기 전에 뭔가를 버리려고 옷장을 살피다 한때는 사랑했지만 오래되어 이제는 손이 가지 않는 남방과 스카프 하나를 버렸다.
즐거운 마음으로 후드티를 사려고 쇼핑몰에 들어가니 매진이란다.
그래 잘됐어 하고 손 털고 나왔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물을 끓여 먹었다.
옥수수, 결명자, 보리 등등을 넣고 커다란 주전자에 팔팔 끓이면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고 갓 끓인 따뜻한 물을 마시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졌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끓인 물을 식혀서 몇 개의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고 남은 찌꺼기는 음식물 통에 주전자는 닦고 말려서 수납장으로 간다.
물을 한잔 먹으려면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고 물병 뚜껑을 열고 따르고 다시 닫고 다시 냉장고로 다 먹은 물병은 닦고 말리고 넣고 냉장고를 청소할 때 물병을 치우고 닦고 넣고...
따뜻한 물이 먹고 싶으면 물을 따라서 데워야 했다.
쓰고 보니 끓여먹는 물의 영양적 가치와 노동의 강도 간 어이없는 불균형에 당황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어른이 되니 먹는 양도 많아져서
물이 언제 떨어질까 끓여야 하는데 하며 신경을 써야 했다. 물이 완전히 떨어져서 급하게 편의점으로 달려간 적도 있었다.
정수기를 설치했다.
가족들이 진즉부터 정수기 설치를 원했지만 내 소신(?)으로 버티던 끓여먹는 물을 포기했다.
뜨거운 물, 찬물만 나오는 기능이 최소화된 작은 크기로 선택했다.
신세계였다.
일단 물을 먹기가 너무 편했고 따뜻한 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내 지나친 노동을 요구하던 물병도 주전자도 없앨 수 있었고 냉장고에는 물병 놓던 자리만큼 여유공간이 생겼다.
물병을 꺼내기 위해 하루에 열 번 이상 여닫던 냉장고도 조용해졌고 외출할 때는 집에 있는 물병에 물을 담아가니 마트에서 따로 물을 사지 않아서 일회용 플라스틱도 줄일 수 있었다.
주전자 한 개와 물병 네 개와 나의 지나친 수고를 버리고 정수기 하나를 들였다.
삶이 훨씬 단순하고 풍요로워졌다.
사무실에 어른 키를 넘어서는 나무 두 개가 생겼다.
행사에 썼던 나무인데 버릴 수는 없어서 내가 물을 주겠다고 하며 내 옆자리에 두었다.
초록의 줄기가 나무 밑동까지 빽빽이 들어찬 싱싱한 나무였다. 일을 하다 고개를 돌려 나무를 보면 기분이 좋았고 다른 직원들도 좋아라 했다.
근데 어느 날부터 나뭇잎이 머리 감을 때 머리 빠지듯이 슬슬 떨어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물을 주고 떨어진 나뭇잎은 치우고 했는데도 나중에는 작은 가지가 뭉텅이로 떨어져 나갔다.
식물을 좋아해서 사무실 자리 뒤쪽을 거의 정원처럼 잘 가꾸고 있는 직원이 내 자리에 왔다가 그 나무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숨 막혀"
가지가 빽빽해서 나무가 숨을 못 쉬고 있다고 했다.
우리들 보기에는 좋았지만 나무는 아니었던 거다.
둘이서 가위로 가지치기를 했다.
나는 잘라내는 게 아깝기도 하고 나무한테 미안하기도 해서 멈칫거리며 잘랐지만 그녀는 썩둑썩둑 과감했다.
가지치기가 끝난 나무를 보고 그녀가 말했다.
"시원~하지"
성긴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과 바람이 오고 갔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며칠 후에 보니
나무 밑에 심겨져 있던 작은 산호수에서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다.
비워야 새것도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