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이 떨어지는 시간(11)

아빠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

by 제이엘

매주 토요일 새벽이면 남편이 KTX를 타고 내려왔다. 서울에서 일하고 주말만 친정으로 오는 생활이 벌써 세 달째였다. 나는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며 아기를 키웠고, 남편은 일주일에 이틀만 아빠가 되었다.


친정 아빠가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가셨다. 내가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서였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한 시간 후쯤 차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남편의 모습이 어색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일주일간의 피로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마치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손님 같았다.


"고생했어." 내가 말하면 남편은 고개만 끄덕였다. 일주일 동안 쌓인 이야기들이 있을 텐데도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면 뭘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아기는 남편을 기억할까 궁금했다. 세 달된 아기에게 일주일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사실 내가 보기에도 아기는 매주 달라져 있었다. 표정도 더 풍부해지고, 몸짓도 다양해졌다. 그런 변화들을 남편은 놓치고 있었다. 일주일 전 기억으로 아기를 만나니까 당황하는 것 같았다.


남편이 아기를 안으려고 하면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을 보듯이. 처음에는 단순히 예민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몇 주가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때마다 남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빠야, 아빠"라고 말해도 아기는 몰랐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매일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알아보는데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아빠는 낯선 사람이었다.


남편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생겨났다.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마음은 멀어졌다. 대화를 해도 벽에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했다. 결혼하고 나서 이렇게 어색한 적이 없었는데.


"일주일간 잘 지냈어?, 뭐 하고 지냈어?"


남편이 물었다.


"아기 보고, 밥 먹고, 그냥..."

"아기는 어때? 뭔가 달라진 거 있어?"

"그냥... 괜찮아. 잘 먹고 잘 자고."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사실 아기는 매일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어제는 뒤집기를 성공했다. 하지만 그런 걸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현장에서 봐야 아는 것들이었다. 말로 전달하면 재미없는 보고서 같았다.


이런 식의 대화가 전부였다. 서로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예전에는 그날 있었던 일들을 다 얘기했는데, 지금은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내 하루는 아기 중심으로 돌아갔고, 남편의 하루는 여전히 회사와 강아지 중심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남편이 아기를 돌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답답했다. 기저귀를 갈려고 하는데 서툴렀다. 테이프를 제대로 못 붙여서 기저귀가 흘러내렸다. 아기가 울면 어쩔 줄 몰라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기만 했다. 분유를 타도 농도를 맞추지 못해서 아기가 거부했다. 나는 옆에서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하며 지시했다. 남편은 점점 작아졌다.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결국 내가 나서면 남편은 한쪽으로 물러났다. 무력한 표정으로 바라만 봤다. 그런 모습을 보니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아기를 울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는 시간성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고 했다. 아버지라는 존재도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매일 함께 있어야 아빠가 되었다. 기저귀를 갈고, 밤에 깨서 달래고, 아기의 울음소리에 익숙해져야 했다. 아기의 패턴을 알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파악해야 했다. 일주일에 이틀로는 부족했다. 계속 처음부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친정 부모님도 그런 남편을 보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도와주려고도 하고, 그냥 두려고도 하고. 친정 아빠는 남편의 서툰 모습을 보며 "천천히 하면 돼"라고 말씀하셨지만, 내심 답답해하시는 것 같았다. 본인은 손자를 너무 자연스럽게 돌보시는데 사위는 자기 아이도 제대로 못 돌보니까.


주말 이틀 동안 남편은 최선을 다했다. 아기와 놀아주려고 하고, 산책도 시키고, 사진도 찍었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한 바퀴를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림은 예뻤다. 하지만 아기는 여전히 나만 찾았다. 금세 보채기 시작했다. 아기가 울면 결국 내가 안아야 했다. 남편은 옆에서 무력하게 바라봤다.


"내가 있어도 소용없네." 남편이 중얼거렸다.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정말 소용없는 걸까. 하지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거짓말로 위로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명확했다.


토요일 밤에도 밤중 수유는 내가 했다. 남편이 해보겠다고 나서지도 않았다. 그냥 옆에서 잠들어 있었다. 아기가 울어도 나만 일어났다. 남편은 깨는 듯 마는 듯 하다가 다시 잠들었다. 그럴 때마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주도적으로 아기를 돌보면 남편은 곁에서 거드는 정도였다. "뭐 도와줄까?" 하고 물어보긴 했지만, 내가 "괜찮아"라고 하면 금세 다른 데로 관심이 옮겨갔다. 아기와 함께 낮잠을 자거나 그런 적도 없었다. 아기가 자면 남편도 따로 쉬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건 남편이 간간이 아기의 존재를 잊은 채 TV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거나 예능을 보면서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아기가 옆에서 울어도 못 듣는 척하거나 정말 못 들었다. 나는 부엌에서 분유를 타고 있고, 아기는 거실에서 울고 있고, 남편은 TV만 보고 있는 그 상황이 견딜 수 없었다.


일요일 오후가 되면 남편은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가방을 싸는 뒷모습이 쓸쓸했다. 친정 아빠가 대신 기차역까지 배웅을 가셨다. 나는 집에서 아기와 함께 기다렸다. 한 시간 후 친정 아빠 혼자 돌아오시면 주말이 끝났다는 걸 알았다.


"조심히 가라고 했어." 아빠가 말씀하셨지만, 표정이 복잡하셨다. 사위가 안쓰러우신 것 같았다. 친정 엄마는 남편을 위로했다. "남자들은 원래 그래. 아이가 좀 더 크면 나아질 거야."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남편의 표정은 주차가 갈수록 더 어두워졌다. 자신이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기도, 나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실망시키고 있다는 걸.


여기서 몇 주가 지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기는 여전히 남편을 낯설어했다. 남편은 여전히 서툴렀다. 우리는 여전히 어색했다. 이게 정상인 걸까 싶었다. 다른 가족들도 이럴까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물어봐도 솔직하게 대답해줄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부부라는 건 뭘까 생각했다. 결혼할 때는 영원히 함께할 것 같았는데, 아이가 생기니 각자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되어갔고, 남편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같은 집에 있어도 다른 세계에 사는 기분이었다.


남편도 힘들어했다. 회사 동료들은 "애 아빠 되니까 어때?"라고 물어본다고 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좋다"고 말하기에는 현실이 다르고, "힘들다"고 말하기에는 무책임해 보일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남편은 매주 왔다. 힘들어도, 어색해도, 소용없는 것 같아도 왔다. 토요일 새벽 기차를 타고, 토요일 일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오후 다시 기차를 탔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아빠가 되는 것도 연습이 필요했다. 시간이 필요했다. 서툴러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았다.


가끔 아기가 웃을 때가 있었다. 남편을 보고 웃을 때가. 그럴 때 남편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를 알아보나?"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물었다. 아기는 대답할 수 없었지만, 그 웃음이 대답인 것 같았다. 그런 순간들이 남편을 버티게 하는 것 같았다.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아버지라는 존재는 시간성 속에서 형성되는 것 같았다. 일주일에 이틀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라도 아빠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조금씩 아빠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야 하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이 어색함도 추억이 될까 궁금했다. 아이가 커서 "아빠가 주말에만 와서 어색했다"고 말할까. 아니면 기억하지 못할까.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지금 이 순간도 우리 가족의 역사였다. 완벽하지 않은, 서툰, 하지만 진짜인 우리의 이야기였다.


주말 아빠. 그 어색함도, 서툶도, 모든 게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까. 아니면 이대로 계속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진짜 아빠가 될 거라고 믿고 싶었다. 매주 기차를 타고 오는 그 마음만으로도.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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