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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 나무 Aug 22. 2023

합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쉼표에 맞춰 잘 쉬는 것

벌써 6년이 지났다니...!

지난 기록을 뒤적여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내 인생에 다시없을 역사적인 날, 2017년 6월 어느 날의 기억.


요즘은 도통 시간 개념이 뒤죽박죽이라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일 같은데 어느새 훌쩍 시간이 지난 일인가 하면, 아주 오래전 일 같은데 고작 일이 년 전 일이라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시간은 상대적이라 그런지 그리운 시간은 추억할수록 바로 어제 같이 생생한데, 요 근래는 코로나 때문인지 모든 경험들이 압축된 느낌이다. 어쩌다 뒤적인 더 오래전 기록 속에 남은 사진과 메모로 오늘을 다시 기록해 보기로...

   



지난  토요일에 시민 오케스트라 창단연주가 있었다. 아직 1년도 채 못 되었는데 돌잔치도 하기 전에 무대에 선다니..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연습만 겨우 안 빠지고 가야지.. 하며 일주일에 두어 시간을 할애한 것이 전부인데 이런 날이 오다니..! 단원들도 연습 때보다 훨씬 집중해서 연주한 덕분에 무사히(?) 아니 기대 이상으로 공연은 만족스러웠다.



무대에 서기 전에 연주보다는 무대 뒤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하고 무대 위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느낌이 어떨지가 궁금했었다. 막상 연주를 마치고 나니 호기심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만큼 흥미로운 경험을 한 것 같다.


그리고.. 뿌듯했다.



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적인 에너지를 가져다준다면, 문화와 예술은 그 삶을 잘 유지하게 도와주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남들이 만든 창작품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내가 스스로 그런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즐기는 것 이상의 감동과 보람까지 느끼게 했던 것 같다. 학교 일 때문에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어렵게 시간을 쪼개서 일주일에 두 시간씩 연습하고 창단 무대를 만들었던 이 시간은 특별하고 뜻깊었다.


연습 때 지휘자님의 말은 또 다른 관점에서 인생을 생각하게 만들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중에서도 오케스트라 합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과 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여러분, 오케스트라 합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음... 글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 비브라토? 내심 이런저런 답을 떠올려 보았다. 평소 내가 연주하는 소리에 영 자신 없던 터라, 지휘자님의 질문 만으로도 살짝 기가 죽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잘 쉬는 것' 이예요."


 '어, 정말? 예쁜 소리도, 정확한 음도 아니고 잘 쉬는 것이라고?'

 

지휘자님이 덧붙인 설명은 이랬다. 연주할 때 음을 연주하고, 쉼표가 있을 때는 쉬어야 한다는 것. 다 함께 연주할 때 음이 조금 맞지 않으면 잘못한 것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남들이 쉬는 쉼표에서 쉬지 않고 연주를 하면 그야말로 틀린다는 것. 음정이 맞지 않아 불협화음이 생기면 연습해서 잘 고치면 되지만, 쉼표에서 쉬지 않고 혼자서만 연주하면 곡 전체의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늘 연습이 부족해서 틀릴까 봐 조마조마하고, 연주하는 악기 소리가 아름답게 나오지 않을까 봐 겨우 들릴락 말락 바람을 불어넣던 내게 그 말씀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악보의 음정을 조금 틀리게 연주 나도 모르게 틀린 음을 맞게 연주하려고 다시 불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혼자 연습할 때는 정확하게 연주하기 위해서 틀린 곳부터 다시 이어가곤 했는데, 합주할 때는 틀린 곳을 다시 연주하게 되면 오히려 전체 하모니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이라니... 연습은 내 박자와 리듬에 맞춰 반복해서 익히지만, 합주할 때는 함께 하는 호흡에 맞춰 조화롭게...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도 마찬가지겠다. 그저 열심히,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구나. 쉼표에서 잘 쉬고, 다음 연주할 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일할 때도 잘 쉬어야 다음 일을 위해 잘 준비할 수 있겠구나. 연주도 일도... 역시 길은 하나로 수렴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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