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왔다.
안정적인 길을 따르기보다, 나다운 길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늘 더 컸다.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그 길이 곧 나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조직 안에서 얻는 보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 울타리가 나를 가두는 벽처럼 느껴졌다.
처음 프리랜서 강사로 강단에 섰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오래된 책상과 하얀 칠판, 반쯤은 호기심, 반쯤은 긴장으로 가득한 눈빛들. 교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첫 목소리를 내뱉는 순간조차 떨림이 묻어났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자리구나’ 하는 감각이 온몸에 퍼졌다.
첫 수업은 예상보다 더 빨리 지나갔다. 준비한 내용의 절반도 못 전한 것 같은데, 몇몇 수강생은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을 던져주었다. 그 순간은 잠시 안도감이 스쳤다. 그러나 빈 강의실에 홀로 남았을 때는 ‘다음에도 불러줄까’라는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스스로 점수를 매겨봤다. “오늘은 70점쯤?” 적어도 망치진 않았다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다음번엔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따라붙었다. 조직에 있을 때처럼 보장된 내일은 없었지만, 살아 있는 긴장감이 나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안정과 불안 사이, 그 날의 흔들림은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정규직 제안을 거절하고 계약직이나 기간제를 택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라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은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묶어두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내 선택들은 언제나 같은 목표를 향해 있었다. 내가 걸어온 경험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내 삶의 조각들이 다른 사람과 이어지기를 바랐다. 민원인을 마주하던 순간에도, 수강생과 대화하던 교실에서도, 일본어 단어 옆에 작은 그림을 그릴 때조차도 나는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기를 원했다.
내가 원하는 삶은 한 가지 길만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게 흐르는 삶이다. 새로운 길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 삶. 남들이 말하는 정답에서 벗어나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의미를 느낀다면 기꺼이 선택하는 삶이다.
지금은 한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오가며 배우고 경험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 글과 그림, 언어는 이미 내 삶의 중요한 힘이 되었으니, 앞으로도 나는 그것들을 통해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앞으로의 길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때로는 주저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얻은 자리도 흔들릴 때가 많았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틀이 아니라, 내가 의미를 두고 걸어가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불확실함은 여전히 크지만, 그 안에서 설렘을 찾는 법을 배웠다.
흔들려도, 나는 내 속도로 걸어갈 것이다. 비록 더디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