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를 변하게 만드는 아주 사소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작
딸 아이가 편입하기 전에 다니던 중학교 담임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대안학교에 편입한지 3달이 넘어 중학교에 유예신청을 하러 학교에 들려야 한다는 용건이었다.
사실 이상하게 공교육 학교 선생님들 연락처가 핸드폰에 뜨거나, 연락해야될 일이 생기면 굉장히 부담이 된다. 일단 저절로 방어태세로 마음을 다잡고 통화를 준비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 (내가 좋은 교사들을 아직 많이 만나보지 못해서 그런건지, 그 전 담임 트라우마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다)
사실 이번에도 그런 뭔가 사무적인 태도로 전화를 받게 됐는데, 선생님이 용건을 다 끝내고 조심스레 건네주시는 말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딸이 다니는 대안학교를 가봤는데 선생님들이 모두 좋은분인것 같다는 말.
학교가 잘 안맞을 뿐이지 딸이 좋은 아이로 잘 크고 있다는 말.
요즘은 굳이 공교육 과정을 밟지 않아도 아이들이 적성을 발견해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간다는 말.
그리고 아이들은 확실히 자신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 눈빛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는, 이런 저런 작은 배려가 있던 말들.
사실 마지막 말을 들으며, 교사에 대한 내 선입견을 슬쩍 반성했더랬다. 예리한 진단이었다.
내가 그 즈음 딸 아이를 보며 느끼는 게 정말 그런 것들이었다.
대안학교가 뭐 그렇게 대단한 것들을 가르치겠나. 고작 세 달 동안 다니면서 느끼는 건, 아이가 별거아닌 모든 순간들을 통해 자신을 바라봐주는 어른들의 선량한 기대와 경청에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눈빛들이 쌓여서 꼬였던 마음과 눈빛에 세상을 향한 긍정이 깃드는 걸 조금씩 보게 된다.
아무리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있어도, 그 아이의 이야기를 어찌됐든 오랫동안 들어보려는 선생님들의 태도가 결국 그걸 지켜보는 다른 아이들의 뇌리에 뚜렸히 박히는 것 같다.
나를 어떤 어떤 애라고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
그리고, 한 사람을 향한 작은 기대와 희망을 놓치않고 바라보는 것.
어찌됐든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변할 수 있다는 걸, 요즘 직접 체감하는 중이다.
물론 사춘기를 통과하는 아이에겐 수만가지 흔들림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집에서는 사소한 말다툼이 이어진다.
하지만 잠시 바람이 잠잠해지는 날, 가끔 딸과 선입견 없이 맛집 데이트를 하며 이야기 하며 걷는 길,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는 게 감사하다.
'왜 이럴까' 라는 물음보다
'잘 가고 있다'는 어른들의 따뜻한 믿음이
아이를 키운다.
마음이 조급해 질 때쯤이면,
몇 번이고 내면에 다짐해 놓아야할 이야기다.
아이들은 잔소리가 아니라
어른들의 단단한 신뢰 안에서
조금씩 생의 마디 마디를 넘어간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