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팽이 May 27. 2021

입김처럼 잠시 만났던 우리

영화 렛미인' 단상

뱀파이어가 나오는 영화에는 이상하게 공포가 아닌 끈질긴 외로움과 삶의 애환 같은 게 묻어나는 거 같다. 특히 '렛미인'에서는 스웨덴의 싸늘한 눈과 사람의 온기같은 것들이 대비가 되어 더 그런 감정들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소년은 뱀파이어 소녀가 떠난 후, 그녀를 처음 보았던 창밖으로 자신을 비춰본다. 거기에 금발머리에 하얀얼굴의 앙상한 소년이 보인다. 예전에 소년이 소녀에게 '넌 도대체 누구냐'고 묻자, 소녀는 '난 너' 라고 대답했었지. 소년이 창문에 손바닥을 갖다대자, 흐릿하게 손자국이 찍힌다. 손을 떼자 그 흔적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그 순간을 소년은 안타깝게 바라보다 얼굴을 갖다댄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뱀팡이어 소녀는 사랑이 한 순간 왔다가 사라지고야 마는 손자국 같은 것이라는 걸 아주 덤덤히 알고있지만, 이제 고작 12년을 견뎌온 소년은 그렇게 사라지는 손자국의 온기를 밤을 새서라도 잠시 붙잡아두려고 한다. 


영원을 사는 소녀와 당장 지금 숨쉬는 시간 자체가 벅찬 소년이 한 순간 만난다. 이아련한 입김처럼 '렛미인'의 사랑은 뭔가 묘하다. 무작정 아름답게 미화되지도 않았는데, 쓸쓸한 아픔을 준다. 그 입김이 순식간에 사라질 걸 알면서도 붙잡게 되는 마음이 너무나 덧없지만, 도저히 어쩔 수 없다고 완전히 백기를 든 그런 상태를 지켜보는 거 같다. 


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던 김혜리 기자는 '렛미인'의 사랑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아름답고 애달파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비루한 일인지를 보여주어서 그렇다는 말을 한다. "넌 니가 필요한 그 만큼만 날 사랑하지? " "원래 사랑이 그런거 아냐" 라는 대사에 담긴 관계의 핵심은 결국 우리가 신기루와 같은 사랑을 붙잡는 이유가 거창한 관념때문이 아니라 슬프게도 절실한 존재의 요구 때문이라는 거다. 그럴 수밖에 없는 내가 그 만큼만 사랑하는 데, 그게 도저히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사건 이라는 게 사랑의 숭고함이자 쓸쓸함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죽인 너를,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너를, 불가피하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영원의 삶을 그리는 이엘리는 사랑한다고 말하고, 12살 오스카는 이엘리가 잠시 앉았던 흔적을 만진다. 사랑의 온기는 손자국처럼 한순간 사그라들고 만다. 

지금 당장, 몇번이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빛 가스등 아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