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주나 점, 타로 등을 보러 간 적이 한 번도 없다(유튜브에 떠 있는 타로 영상에서 재미로 해 본 적은 있긴 하다ㅎ).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내 인생에 대한 조언을 듣는다는 것이 유쾌하진 않다. 또, '무언가를 하지 마', '조심해' 따위의 조언에 의해 제약이 걸리는 것도 싫다. 무엇보다 내가 기독교이기 때문에(지금 교회를 나가고 있진 않지만), '사주팔자' 등의 개념을 금기시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했던 이유도 컸다.
그런데 이런 내가, 얼마 전부터 명리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은 명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순수한 관심 때문이었다. 명리학을 배우기 시작하면 '음양'이라는 개념부터 나오는데, 이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잘은 몰라도 분명 들어본 개념일 것이다. 나도 이 개념에 대해 알긴 했지만, 오해 때문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깊게 배울 기회도 없었고 말이다. 근데 약대 재학 시절, '한약제제학'이라는 강의에서 이런 개념들이 등장하는 거다! 그동안 서양철학에 입각한 공부만을 해왔으니,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이 등장하자 다른 동기들은 '사이비 같다'는 평을 내렸다. 이런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약간의 헛웃음을 치시며 가르쳐 주시는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나 또한 '음양대립제약', '음양호근호용', '음양동태평형' 등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의 향연에 약간은 넋이 나갔지만, 어쩐지 강한 호기심이 들었었다.
현대에 와서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용한 마케팅 때문에 인식이 변질된 측면은 있지만, 명리학은 엄연한 '학문'이다. 그것도 역사가 아주 오래된 학문 말이다. 예전부터 동양 철학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는 직감이 있었는데 명리학이 동양 철학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학문이니, 명리학을 배우면 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약제제학을 공부하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명리학 공부를 결심하게 되었다.
강의를 수강하고 '명리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배우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롭고 재밌었다. 게다가, 명리학에 대해 많이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째, 명리학은 운명결정론을 주장하는 학문이 아니었다(오히려 반대다). 또한, 명리학이 말하는 '음양'개념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었다. '남자는 양이요, 여자는 음이로다'하는 고리타분해 보이는 말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 음양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며, 역동적으로 운동하는 개념이었다. 강의에서 우주는 끊임없이 음과 양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음이 양으로 변하고, 양이 음으로 변화한다고 말한다. 이를 '양중음, 음중양'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부드러운 것이 결국은 단단해지고 단단해지면 결국은 또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시작이 있다고 하고, 남자의 성 안에는 여성성도 있고 여자의 성 안에는 남성성도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음양개념과 함께 마음에 들었던 것은, "우주에는 영원불멸한 것(고정된 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개념이었다(영원한 건 절대 없어~♬ by GD). 나는 역발상을 좋아한다. 고정되어 있는 관념을 조금 비틀어 생각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해결책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개념을 좋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 처했을 때 주로 이용한다. 그럼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성장하는 계기로 이용하기 쉬워진다. 쉽게 얘기하면, 몇 년 전 유행했던 '오히려 좋아' 정신이다. 이런 정신을 발휘하는 데에, 앞서 말한 명리학의 개념들이 도움이 된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이다. 바로 '역발상', '유연적 사고'에 대해서 말이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명리학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난 이런 사고의 수혜를 톡톡히 봤다. '새옹지마', '전화위복', 그리고 '위기가 기회로'된 경우들이 있었다. 먼저, 나는 20살 첫 대학 입시에서 목표하는 대학에 떨어져 절망스러웠었다. 안전 지원으로 넣은 대학에 가게 되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그곳에 입학했기 때문에 편하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고, 이공계 장학생 추천을 받아 등록금도 내지 않았으며, 그곳의 학풍이 나와 맞아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학점 또한 좀 더 쉽게 딸 수 있었다. 중요한 사실은 그때 한 경험들과, 학점을 기반으로 결국 약대 입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경험은 약사고시 준비 과정에서 있었다. 나는 그때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있었다. 다른 동기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늦은 때에 공부를 시작했으며,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어서 베이스도 없었다. 극한의 벼락치기였다. 그런데 유연적 사고를 통한 마인드 컨트롤로 끝까지 공부를 지속할 수 있었고, 합격까지 이루어냈다. 생각보다 많은 성취들이 '멘탈', 즉 '정신적 힘'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역발상 및 유연적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예시를 들자면, 바로 일에서였다. 우리에게 박혀 있는 고정관념, 옳다고 생각되는 관념은 무엇인가? 바로 '쉽게 포기하지 마라', '도망치지 마라'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감하게 첫 약국을 3일 만에 그만뒀다. 도망친 것이었다. 전문직이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비교적 쉽게 갈 수야 있었지만, 약국 경력이 전무해 좋은 곳에 취업하기는 어려웠던 상황이었어서 부담이 컸었다. 그리고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독립하자마자 벌인 일이라서 더 무서웠었다. 결과는? 생각지도 못하게 더 편하고, 돈도 많이 주는 곳을 운 좋게 발견해 지금까지 2년째 다니고 있다. 독립적 공간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이었고, 동기들도 모두 부러워했다. 그곳에 다니게 된 덕분에 체력이 약한 내가 시간도 많이 확보해서, 그 여유를 가지고 지금 이 글도 쓰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좋아' 정신으로 인생이 풀리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래서 나는 역발상을 하는 책들을 즐겨 읽는다. 그리고 그대로 이행하려고 한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선택이든 그 안에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다. 장점만 있는 선택, 단점만 있는 선택은 없다. 또 긍정적으로 보이는 것에 부정적인 면이 있고,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에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선택을 하기가 비교적 쉬워진다. 또 특정한 것에 대한 집착을 덜어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렇게 집착하는 그것에도 분명 단점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노선을 선택하는 데에도 이 사고가 도움이 된다. 지름길로 보이지만 막히는 길로 가는 것을 멈추고,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길로 우회하면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더 즐겁게, 더 쉽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다. 좋아하는 일, 마음이 시키는 일, 직관이 이끄는 일을 하려고 할 때 "그게 무슨 쓸모가 있어?", "건설적인 일을 해야지", "현실적으로 생각해" 하는 이야기를 따르지 말고 우회하라. 굉장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보이는 판단 기준에 따르는 것보다 결국 본인의 마음에 따른 선택과 집중이, 유동성이 높은 현대사회에서는 나중에 봤을 때 더 옳은 판단이 될 수도 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정해진 정답에 매몰되지 말고 역발상 및 유연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발전을 도모해 보자. 우리에게 주어진 제한을 풀고 자유를 주는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