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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Feb 02. 2023

부러움의 뫼비우스

<엘리트 세습> 독후감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그들 나름의 갑론을박을 펼치는 상위권 학생들에게 부러움을 느꼈다. 내가 학교 공부라는 것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대학교 무렵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친구를 정말 부러워했다. 나는 어떤 배경도 없이 그저 지나친 정직함만 갖고 있었던 학생이었다. 친척의 지원까지 받아서 교환학생을 간다는 친구도 부러워했다. 그 당시 나에겐 그런 강렬한 욕망과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 뉴욕과 유럽의 멋진 사진들을 올리는 계정을 몇 개 팔로우해 두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저장해 종종 배경화면으로 활용할 생각으로 한 일이었다. 예쁘다, 멋있다는 느낌이 들고 사실 그러기 위한 용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거기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면서 현재 해외에 있거나 해외에 갈 기회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전에 멋진 도시에 사는 것도 일종의 특권이긴 하다.


  이런 이야기를 왜 쓰고 있냐면, 내가 <엘리트 세습>을 읽고 있어서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엘리트는 부자 부모의 어마어마한 투자를 받아 그 자신도 악착같이 노력해 경쟁에서 승리하며, 그런 과정을 통해 최상위 엘리트 교육 기관에서 대학원 이상의 학위를 받고 그 뒤 부모의 엘리트 지위를 잇기 위하여 또 자신을 깎아가는 자들이다. 나는 워라밸이 중요한 사람이라 그런 엘리트처럼 직업에 영혼까지 쏟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지만 사실 그러한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과정이 내게 가능하지 않았음을, 즉 엘리트의 삶에 도전할 만한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그럼 나는 또 부러워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대학원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러움, 부러움. 세상에는 부러워할 만한 타인의 모습들이 흘러넘친다. 인터넷은 이제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기록을 빙자한 자랑의 무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들은 가끔 내가 살짝 나약해져 있을 때 매우 효과적으로 나를 공격한다. 나는 내면이 튼튼하고 초연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도 분명한, 심지어 유구하기까지 한 약점이 있다. 그러면 나는 나를 압박하고 싶어 진다. 이제 새해도 됐어. 뭔가를 해야만 해. 저들은 저런 일들을 하고 있잖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이거, 저거. 욕망을 평생 억누르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으면 왜 행동하지 않아?


  이런 순간에, 나는 나의 약함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나의 인생은 끝없이 쓰이는 초안 같다. 내가 죽을 때까지 이어지면서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수정도 불가능한 초안이다. 그리고 내가 바깥에 조금씩 흘리는 이야기는 그 초안 중에서도 그런대로 괜찮은 문장들이다. 그렇게 초안이 검열되고 나면 남들처럼 나도 나의 '하이라이트'만을 꺼내게 된다. 사실은 어제 엄청 부끄러우면서 위험천만한 일이 있었는데,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서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게 원래 알고 있었지만 잠시 잊어버렸던 그 사실을 떠올리며 나는 나약한 동시에 조금 더 현명해지려 애써본다.


  누구나 자기만의 초안을 끌어안고 타인을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남들의 하이라이트는 너무 강렬하고 아름다워서, 그것을 내 초안 전체와 비교하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걸 쉽게 까먹게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조용히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 인간적인 뫼비우스 속에서 부러움은 절대적 우월성을 보장하지 않고, 오직 확실한 것은 각자가 모두 인간이라는 점뿐이다.   


  다행인 것은 누구도 나의 초안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모든 부분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언제든지 나를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을 내려놓을 수 있다. 일상의 귀중함을 깨달아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남들보다 그런 일이 쉬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또 한동안 부러움의 뫼비우스에서 내려와 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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