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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Sep 01. 2023

공무원 조직은 왜 인수인계가 *판일까?

한 MZ세대가 짧게 느꼈던 공무원 인사 시스템의 아쉬움

공무원 일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경로로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인수인계가 개판이다'라는 말이었다(...) 한국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일반가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대충 하다 보면 알겠지, 혹은 같은 팀의 누군가가 가르쳐주겠지 하는 마음 등등으로 전임자가 휙 인사이동으로 떠나버리고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받지 못한 채 후임자는 덩그러니 새 발령지에 남는다는 이야기. 나는 공무원 생활을 길게 하진 않았지만 이 말이 완벽하게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신규 입사자 교육이 체계적이지 않다는 말에는 경험상 동의할 수 있다. 행정복지센터를 첫 발령지로 맞이했을 때 나는 권한 발급이 완료된 2일째부터 민원대 전선에서 온갖 서류들을 발급해 주었기 때문이다. '일단 해보면 알아!' 공무원이 하는 일을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는 없기에 이는 당연한 소리긴 하지만, 적어도 환경에 적응하고 멘탈을 준비할 여유 정도는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ㅠ


하지만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제대로 해주기 싫어서 도망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공무원 조직의 엉망진창 인수인계의 근본적인 원인은 종잡을 수 없는 인사 시스템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 말고 이전에 수많은 사람이 지적했을 문제일 텐데, 이상하게 공무원은 인사이동이 잦다. 내가 있던 A시에서는 크고 작게 매달 인사이동이 있었다. 한 근무지에서 1년 이상 일하면 많이 일한 거였다. 실무진들의 근무지가 이렇게 정신없이 바뀌니 어떻게 보면 다음 사람에게 알려줄 이야기 자체가 많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내 일을 완전히 다 파악하기도 전에 다른 일을 하라고 하는 걸. 


그런데 인수인계를 해주기 싫어서가 아닌 다른 이유로 전임자가 도망가서 물어볼 사람이 없어지는 경우는 있다(...) 내가 짧은 기간 동안 시청에 있을 때도 그런 일을 바로 옆자리에서 보았다. 전임자가 휴직한 사례이다. 공무원은 고용보험 가입 자체가 되지 않는, 그러니까 제도적으로도 퇴사를 고려하지 않는 직업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처럼 퇴사 후 재충전 기간을 가질 수 없는 만큼 여러 휴직 제도가 있다. 이렇게 휴직에 들어간 사람에겐 연락을 하는 게 껄끄럽다. 물론 가장 대표적인 건 자녀를 돌보기 위한 육아 휴직이지만 당사자에게 무슨 일이 있어 휴직 신청을 했는지는 쉽게 판별할 수 없는 것 같다. 그 사유가 질병 휴직인 경우 말할 것도 없다. 


그럼 왜 나의 전임자는 내가 내선 번호로 연락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접어들었을까? 나는 그 이유를 공무원 조직의 인사 시스템이 공평하지 않은 현실에서 찾고 싶다.


공무원 퇴사 글에서 밝혔지만 내가 처음으로 일하게 된 행정복지센터는 발령 나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니?'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격무가 심하다고 유명한 곳이었다. 또 특이한 점은 오래 휴직하고 복직한 사람, 혹은 타 시와의 인사 교류를 통해 새로 들어온 사람은 이상하게 내가 일하는 그 행정복지센터에 왔다. 조금 삐딱하게 보면 상벌이나 차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가는 사람들은 또 모두가 기피하는 격무부서, 예를 들어 복지나 교통 관련 부서로 옮겨갔다.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건 7급 승진과 함께 그곳에 온 선배의 사연이었다. 본인은 다른 게 아니라 그곳에 이미 와 있던 한 사람 때문에 여기만큼은 정말 오기 싫었다고 했다. 그 사람과 선배는 같이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어떤 식으로든 선배를 너무 힘들게 해서 마음의 병이 나게 만들 정도였다. 같은 사람을 계속 만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띠는 그 좁은 공무원 조직에서 그런 속사정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리라고는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선배의 과거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분은 병가를 냈고, 이후 인사고충을 쓰셨는지 꽤 빨리 그 행정복지센터를 떠났다. (참고로 나 역시 상태가 좋지 않을 때 팀장님과 나는 함께 인사고충을 썼으나 무시당했다.)


시간이 흘러 외국계 회사로 이직하면서 레퍼런스 레터가 필요하게 되었을 때 행정복지센터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에게 부탁을 드리게 되었다. 전화를 받으셨던 그 시점에서 그분이 일하는 곳은 또 다른 격무지 TOP 3였다(...) 역시 같은 곳에서 동고동락했던 언니도 거기 있단다. 웃기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솔직하게는 실업급여도 못 타게 하면서 사람 숨 돌릴 틈도 없이 격무지에서 격무지로 가게 하는구나, 숨 고르면서 살짝 돌아가고 싶을 땐 그냥 휴직이라도 쓰라는 건가 싶었다. 


한편으로 나는 근무하면서 인사 부서에는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이 들어간다거나 인맥과 관련된 이야기 등등을 들었었다. 대놓고 일을 안 하는 사람은 격무지에 보내지 못한다는 말도 들었다. 어차피 그런 사람은 일이 많은 곳에 가서도 제 몫을 하지 않기에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탓이겠지만, 묘하게 불공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심지어 그런 작자는 차라리 관리자로 빨리 승진시켜 버린다고도 했다. 어찌 됐든 게으르거나 무능한 실무진은 민원인을 불편하게 한다. 그럼 결국 고생하는 사람은 계속 고생하게 된다는 얘기다.


나는 소문의 뒤를 캐내는 일엔 관심이 없어 그런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의 진실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직간접적으로 겪은 일들을 조합해 보니 다 까닭이 있어서 나온 말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문득 나에게 레퍼런스 레터를 써주셨던 선배님 이름을 시청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았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만두거나 휴직하신 걸까. 내가 일하던 그 행정복지센터에 2번이나 오신 분이고, 안팎으로 정말 고생하시면서도 아랫사람을 챙겨주고 웃는 낯을 보이려고 애쓰시던 멋지고 고마운 분이었다. 그분이 지금 어디에 계시든 평화로우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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